조선 중기 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하홍도의 문집.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중원(重遠), 호는 겸재(謙齋)이다. 인조반정 이후 남명학파(南冥學派)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인조반정 이후 벼슬에 추천을 받았으나 사퇴하고 깊은 산속에 머물며 정자를 지어 영귀대(詠歸臺)라 하고 학문에 힘썼다. 남명(南冥) 조식(曺植) 사후에 남명학파가 약 50...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진숙(晉叔), 호는 한계(寒溪). 사직(司直)을 지낸 하진(河珍)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낙와(樂窩) 하홍달(河弘達)[1603~1651]이고, 하홍달은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아우이다. 할아버지는 설창(雪牕) 하철(河澈)[1635~1704]이며, 아버지는 사헌부지평에 증직된 양정재(養正齋) 하...
옛날부터 진주에서 이름난 마을을 꼽을 때 “첫 번째가 안계(安溪)요, 두 번째가 원당(元堂)이요, 세 번째가 사월(沙月)이다.”라고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지금의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안계마을이 진주목(晉州牧)에 속했기 때문에 진주의 으뜸가는 명촌(名村)으로 일컬어졌던 것이다. 안계마을이 그런 명성을 얻은 것은 풍경이 수려하고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된 곳이기 때문이다. 『옥종면지...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와 학맥에 관해 서술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간적 범위를 어디까지로 제한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유학자의 정의를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가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므로 위의 두 가지 범위와 기준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하동의 유학자를 규정하였다. 첫째, 시간적 범위는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은 조선의 건국으로부터 그 운명이 다하는 시점인 개항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