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 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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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에 있는 개항기 정기(鄭夔)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실. 귀후재(歸厚齋)는 이 고장에 처음으로 입향한 정기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지었다. 정기의 자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율리(栗里)이다. 영일 정씨(迎日鄭氏)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예이며, 젊어서부터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문하에서 배웠다. 겸재가 왕에게 사은소(謝恩疏)를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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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에 있는 개항기 정기(鄭夔)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실. 귀후재(歸厚齋)는 이 고장에 처음으로 입향한 정기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지었다. 정기의 자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율리(栗里)이다. 영일 정씨(迎日鄭氏)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예이며, 젊어서부터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문하에서 배웠다. 겸재가 왕에게 사은소(謝恩疏)를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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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전주 전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시부모에게 효성을 다하고 남편의 병에 정성을 다한 용궁 김씨(龍宮金氏) 김병희(金炳希)의 처 전주 전씨(全州全氏)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고을 사람들이 비를 세웠다. 김병희 처 전주 전씨 열행비(金炳希妻全州全氏烈行碑)는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 919-4번지 서촌마을 어귀 농로 변 새마을 창고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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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전주 전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시부모에게 효성을 다하고 남편의 병에 정성을 다한 용궁 김씨(龍宮金氏) 김병희(金炳希)의 처 전주 전씨(全州全氏)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고을 사람들이 비를 세웠다. 김병희 처 전주 전씨 열행비(金炳希妻全州全氏烈行碑)는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 919-4번지 서촌마을 어귀 농로 변 새마을 창고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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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상성에 있는 영일 정씨 동성 마을. 상성은 성천리에서 가장 윗동네이므로 붙인 이름이다. 성천리는 본디 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외부로 통하는 여섯 개의 고개가 있어, 고개 안의 마을이라는 뜻에서 재내[峙內] 또는 잔내라 하였는데 일제 강점기에 한자로 표기할 때 행정 공무원이 재내에 해당하는 한자를 고른 끝에 ‘재 성(城)’자와 ‘내 천(川)’자를 써서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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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전통 가옥. 영일 정씨(迎日鄭氏)가 하동에 들어온 것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둘째 아들인 11세손 정종본(鄭宗本)이 귀양 온 숙부를 따라 진주에 정착하고, 정종본의 후손인 18세손 정기(鄭山+夔)[1614~1672]가 하동에 입향(入鄕)하고 나서부터이다. 영일 정씨 종가인 양보면 장암리 정씨 고택(良甫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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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전통 가옥. 영일 정씨(迎日鄭氏)가 하동에 들어온 것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둘째 아들인 11세손 정종본(鄭宗本)이 귀양 온 숙부를 따라 진주에 정착하고, 정종본의 후손인 18세손 정기(鄭山+夔)[1614~1672]가 하동에 입향(入鄕)하고 나서부터이다. 영일 정씨 종가인 양보면 장암리 정씨 고택(良甫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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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경을 시조로 하고 정보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연일 정씨(延日鄭氏)는 영일 정씨(迎日鄭氏), 또는 오천 정씨(烏川鄭氏)라고도 한다. 영일과 연일 및 오천은 오늘날 경상북도 포항시의 일부 지명에 해당한다. 연일 정씨는 후손 정의경(鄭宜卿)이 영일호장(迎日戶長)을 지낸 후 영일현백(迎日縣伯)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본관을 영일로 하였다. 조선 시대 하동 지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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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경을 시조로 하고 정보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연일 정씨(延日鄭氏)는 영일 정씨(迎日鄭氏), 또는 오천 정씨(烏川鄭氏)라고도 한다. 영일과 연일 및 오천은 오늘날 경상북도 포항시의 일부 지명에 해당한다. 연일 정씨는 후손 정의경(鄭宜卿)이 영일호장(迎日戶長)을 지낸 후 영일현백(迎日縣伯)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본관을 영일로 하였다. 조선 시대 하동 지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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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지내에 있는 경주 최씨 동성 마을. 마을 앞에 있는 오래된 못 안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므로 못안이라 하였다가 일제 강점기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못 지(池)’자와 ‘안 내(內)’자를 써서 지내라 하였다. 조선 중기 효자로 이름을 떨친 최윤추(崔允樞)의 아들 가선대부 최상순(崔相淳)이 곤양에서 옮겨 와 정착한 뒤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경주 최씨 집성촌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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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하동군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재령(載寧). 고조할아버지는 주화헌(輳龢軒) 이정모(李廷模)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소파(蘇坡) 이희곤(李熙坤)이며, 할아버지는 매당(梅堂) 이수안(李壽安)이다. 아버지는 정산(晶山) 이현덕(李鉉德)이며, 어머니는 하한철(河漢徹)의 딸인 진양 하씨(晉陽河氏)이다. 전처는 정석기(鄭奭基)의 딸인 진양 정씨(晉陽鄭氏)이며, 그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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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1. 지리적 위치 하동군은 북위 35° 19′에서 34° 55′, 동경 127° 56′에서 127° 35′에 걸쳐있으며, 경상남도에서 가장 서남쪽에 위치한다. 면적은 675.5㎢로서 경상남도의 6.4%를 차지하고 있다. 동서 간 28㎞, 남북 간 44㎞이다. 지리적 입지는, 북쪽으로 백두대간의 종점인 지리산을 등지고, 남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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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에 있는 일제 강점기 애국지사 정상정의 묘소. 정상정은 영일 정씨로 1878년(고종 15) 10월 고전면 성천리에서 출생하였다. 고전면 지역의 독립운동 단체인 일신단을 주도하며 1919년 4월 6일 고전면 고하리, 배더리 장날 이종인, 박영묵, 정의용 등과 함께 1,000여 명의 장꾼을 모아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튿날 일본 헌병 20여 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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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정수리의 명칭은 정수마을에서 유래하였다. 옥산(玉山)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바르게 온다고 하여 정수리(正水里)라고 하였다. 조선 말 정수면 정수동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옥동면 정수리가 되었고, 1929년 옥종면 정수리로 통합·개편되었다. 서북쪽으로 지리산에서 갈라져 나온 재산에서 이어진 옥산[614m]을 등지고, 북방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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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청수에 있는 영일 정씨 동성 마을. 마을 서쪽 북천면과 경계를 이루는 옥산(玉山)에서 발원하여 마을 앞으로 흐르는 물이 맑아 청수(淸水)라 하였다. 마을 앞의 하천이 곧게 흐른다는 뜻에서 정수(正水)로 고쳤다가 1995년 다시 청수로 고쳤다. 청수 주변에서 발굴된 민무늬 토기, 지석묘, 석기 조각 등의 유물로 미루어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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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 모여 사는 촌락. 집성촌은 성(姓)과 본(本)이 같은 부계의 혈족들이 모여 살고 있는 마을이다. 이를 ‘동성마을’, ‘동족촌(同族村)’이라고도 한다. 즉 집성촌은 특정 성씨가 함께 모여 촌락을 이룬 경우를 말한다. 동족 마을은 조상을 같이 함으로써 비롯된 혈연관계의 주민들이 특정 지역에 한 마을을 이루어 집단으로 거주하는 형태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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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영당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하동군 옥종면은 본래 진주 땅이었으나 1906년 하동에 소속되었다. 옥종면 정수리 영당마을은 영일 정씨(迎日鄭氏)의 세거지로, 1715년(숙종 41) 시조(始祖)인 형양공(滎陽公) 정습명(鄭襲明),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정몽주의 손자이자 세조 때 사육신(死六臣)의 무죄를 주장하다 죽은 설곡(雪谷) 정보(鄭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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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에 있는 하동 정씨 네 열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하동 정씨(河東鄭氏) 집안의 네 열부인 정한종(鄭翰宗)의 처 연안 차씨(延安車氏), 정한종의 질부 김해 김씨(金海金氏), 정한종의 재종질부 파주 염씨(坡州廉氏), 정한종의 손부 진양 강씨(晉陽姜氏)의 열행이 세상에 드러나지 못하고 묻혀 버리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하동 정씨 문중에서 196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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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에 있는 하동 정씨 네 열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하동 정씨(河東鄭氏) 집안의 네 열부인 정한종(鄭翰宗)의 처 연안 차씨(延安車氏), 정한종의 질부 김해 김씨(金海金氏), 정한종의 재종질부 파주 염씨(坡州廉氏), 정한종의 손부 진양 강씨(晉陽姜氏)의 열행이 세상에 드러나지 못하고 묻혀 버리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하동 정씨 문중에서 196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