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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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있는 개항기 최숙민(崔琡民)을 기리는 재실. 계남정(溪南亭)은 계남(溪南) 최숙민[1837~1905]의 재실이다. 계남 최숙민은 절의를 숭상하던 영남 남인 가문 출신의 학자이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晉州城)에서 순국한 모산(茅山) 최기필(崔琦弼)[?~1593]의 8세손으로, 용모가 비범하고 재주가 뛰어나 어려서부터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에 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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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있는 구인정(九印亭)의 유허비. 조선 후기 형조참판 전주 최씨(全州崔氏) 최정(崔涏)이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두양마을에 살면서 심은 정자나무가 크게 자라 좋은 휴식처가 되었다. 훗날 관직에 나간 최정의 아들과 조카 9명이 이곳에 자주 모여 정자나무에 인끈을 걸어 놓고 어울려 휴식을 취한 사실이 후세에까지 전해 왔다. 그 아홉 명은 전주판관 최기연(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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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있는 구인정(九印亭)의 유허비. 조선 후기 형조참판 전주 최씨(全州崔氏) 최정(崔涏)이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두양마을에 살면서 심은 정자나무가 크게 자라 좋은 휴식처가 되었다. 훗날 관직에 나간 최정의 아들과 조카 9명이 이곳에 자주 모여 정자나무에 인끈을 걸어 놓고 어울려 휴식을 취한 사실이 후세에까지 전해 왔다. 그 아홉 명은 전주판관 최기연(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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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용궁(龍宮). 임진왜란 때 수문장으로 진주성에서 순절하여 창렬사(彰烈祠)에 향사된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김준걸(金俊傑)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여생(金麗生)이며, 할아버지는 김명립(金明立)이다. 아버지는 청천재(淸川齋) 김상침(金尙琛)이며, 어머니는 윤효일(尹孝一)의 딸인 파평 윤씨(坡平 尹氏)이다. 정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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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무신.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인선(仁善), 호는 농산(聾山). 임진왜란 때 수문장으로서 진주성에서 순절하여 창렬사(彰烈祠)에 향사된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의 후손이다. 김태권(金泰權)은 1880년(고종 17) 무과에 등제하여 선략장군 행 용양위부사과(宣略將軍行龍驤衛副司果), 내금위 효력부위 수문장((內禁衛效力副尉守門將) 등을 역임하였다. 본래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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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용궁(龍宮), 호는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은 어릴 적부터 성품이 강하고 굳세며 반듯하고 정직하였으며, 지기(志氣)가 총명하고 민첩하며 용기가 있었다. 학문을 익힐 적에는 선생이 감독하지 않아도 날마다 부지런히 공부하였고, 경전과 역사에 통달하여 대의(大義)를 분별할 수 있어 약관의 나이에 문무(文武)를 겸비하였다는 평을 들었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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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용궁(龍宮), 호는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은 어릴 적부터 성품이 강하고 굳세며 반듯하고 정직하였으며, 지기(志氣)가 총명하고 민첩하며 용기가 있었다. 학문을 익힐 적에는 선생이 감독하지 않아도 날마다 부지런히 공부하였고, 경전과 역사에 통달하여 대의(大義)를 분별할 수 있어 약관의 나이에 문무(文武)를 겸비하였다는 평을 들었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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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임진왜란의 공신인 김태백(金太白)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태백[1560~1592]은 용궁 김씨(龍宮金氏)로 자는 계선(繼仙), 호는 낭선재(浪仙齋)이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하인과 동네 장정 수백 명을 거느리고 진주성에 들어가 관군과 합세하여 싸움을 벌여 수차례 공을 세웠다. 그러나 화살과 힘이 다해 김태백은 결국 촉석루에서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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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임진왜란의 공신인 김태백(金太白)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태백[1560~1592]은 용궁 김씨(龍宮金氏)로 자는 계선(繼仙), 호는 낭선재(浪仙齋)이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하인과 동네 장정 수백 명을 거느리고 진주성에 들어가 관군과 합세하여 싸움을 벌여 수차례 공을 세웠다. 그러나 화살과 힘이 다해 김태백은 결국 촉석루에서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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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최기필의 문집. 최기필(崔琦弼)[1562~1593]의 자는 규중(圭仲), 호는 모산(茅山)이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순절하였으며, 조정에서 병조참의직을 추증하였다. 그의 사적(史蹟)은 국승(國乘)과 야사(野史)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를 제향하는 진주 창렬사(彰烈司)는 사액되었다. 최기필의 5세손 최주국(崔柱國)이 집안에 내려오는 유적(遺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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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이 배출한 역사적 위인 중 한 명인 매헌(梅軒) 정기룡(鄭起龍)은 1562년(명종 17) 당시의 곤양현(昆陽縣) 중평(仲坪), 곧 지금의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서 태어나 1622년(광해군 14) 삼군통제사로서 통영의 진중에서 죽었다. 정기룡이 임진왜란 당시 세운 전공에 대해서는 흔히 해전의 이순신(李舜臣)에 견주어 ‘육상의 이순신’이었다고 일컬어질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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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지역은 남해와 섬진강을 끼고 있어 해상 교통이 편리할 뿐 아니라 경상도와 전라도의 접경지대로 오랜 옛날부터 지리적 요충지로서 주목 받았다. 이 때문에 일찍부터 도로와 시장이 발달하고 물산이 풍부했던 반면에 침략을 받기도 쉬운 이중적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고려 후기에는 왜구의 잦은 침략을, 조선 시대에는 임진왜란을 겪었다. 그러나 정유(鄭愈)나 정기룡(鄭起龍) 같은 이들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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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 영계마을에 있던 조선 전기의 서원. 문헌공(文獻公)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관향(貫鄕)이 하동(河東)이므로, 하동에 서원을 창건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발의하여 지역 유림과 하동 정씨(河東鄭氏) 후손들이 건립을 추진하였다. 그때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1538~1593]이 순찰사(巡察使)로 부임하여 적극적으로 서원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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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용궁 김씨 우천공파 문중의 재실. 용궁 김씨(龍宮金氏) 선조 낭선공(浪仙公) 김태백(金太白)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이끌고 진주성을 지키다 순절하였다. 그의 아들인 율헌공(栗軒公) 김준걸(金俊傑)이 하동으로 이거하면서 용궁 김씨가 하동에 살기 시작하였다. 그 후 4세손에 이르러 오형제가 나뉘어져 5파(五派)가 되었고, 그 마지막이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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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존중을 시조로 하고 김태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용궁 김씨의 시조인 경숙공(景肅公) 김존중(金存中)은 고려조에 좌승선 태자소보(左丞宣太子小保)를 역임한 후 용궁군(龍宮君)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용궁(龍宮)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루었다.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1560~1593]은 1593년 진주성 싸움에서 수성장으로서 순절하여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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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열녀. 조소사(曺召史)는 사노(私奴)였던 이노미(李奴未)의 아내로서,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 중에 왜적을 만나자 죽음으로 절의를 지켰다. 이 해 일본군은 1592년(선조 25)의 진주성 패배[진주대첩]를 만회하고자 10여만 명의 병사를 동원해 9일간 진주성을 함락하기 위해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결국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여 명의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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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에 있는 개항기 때 정려각. 이번 처 절부려(李蕃妻節婦閭)는 이번(李蕃)의 처 장수 황씨(長水黃氏)의 절의를 기리는 정려각이다. 1593년(선조 26) 7월, 진주성(晉州城)을 함락한 왜군이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쪽으로 쳐들어왔는데, 이때 왜적을 피해 숲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장수 황씨는 왜적에게 잡히고 말았다. 왜적이 칼을 목에 대고 위협하자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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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경상남도 하동군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왜적이 수십만이라는 많은 군사력으로 부산에 침입하여 이후 7년간 벌어진 전쟁으로, 여기에는 조선군 이외에 명나라 군대도 동원되어 동아시아의 국제적인 전쟁으로 전개되었다. 1. 진주성 싸움 1592년 4월 왜적은 수십만이라는 많은 군사력으로 부산에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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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서 정기룡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정기룡 장군의 탄생과 명마」는, 임진왜란 때의 명장 정기룡(鄭起龍)[1562~1622] 장군이 사망한 모부인의 태중에서 이틀을 지낸 후 태어났다는 영웅탄생담이다. 또한 정기룡 장군이 왜적을 물리치는 데 도움을 준 말을 둘째 부인 권씨가 키웠다는 명마획득담이다. 2004년 하동군 각지에서 채록·수집한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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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서 정기룡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정기룡 장군의 탄생과 명마」는, 임진왜란 때의 명장 정기룡(鄭起龍)[1562~1622] 장군이 사망한 모부인의 태중에서 이틀을 지낸 후 태어났다는 영웅탄생담이다. 또한 정기룡 장군이 왜적을 물리치는 데 도움을 준 말을 둘째 부인 권씨가 키웠다는 명마획득담이다. 2004년 하동군 각지에서 채록·수집한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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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초명은 정효기(鄭孝基), 자는 응선(應善). 호는 수재(守齋). 처음에는 호를 회계(晦溪)라 하였다가, 만년에 『논어(論語)』의 “목숨을 걸고 지키며 도를 선하게 한다[守死善道]”라는 구절에서 취하여 수재라 하였다. 고조할아버지는 송죽헌(松竹軒) 정도관(鄭道貫)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청계(淸溪) 정국제(鄭國濟)이며, 할아버지는 통덕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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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열녀. 조언세(曺彦世)의 처인 하소사(河召史)는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 중에 왜적을 만나 위급해지자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였다. 이 해 일본군은 1592년(선조 25)의 진주성 패배[진주대첩]를 만회하고자 10여만 명의 병사를 동원해 9일간 진주성을 함락하기 위해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결국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여 명의 군사와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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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하동 출신의 의사(義士).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규중(圭仲), 호는 모산(茅山). 아버지는 최정(崔涏)이다. 최기필(崔琦弼)은 1562년(명종 17)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어질고 품행이 반듯하여 지방관의 추천을 받아 참봉이 되었으며, 사옹원봉사·진주목판관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벼슬을 그만두고 진주 서쪽 백운동(白雲洞)에 초당(草堂)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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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처음의 자는 원칙(元則)이었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면서 치장(穉章)이라 했으나 처음의 자가 널리 알려져 그대로 썼다. 호는 계남(溪南), 초명은 최유민(崔有民). 전주 최씨는 최아(崔阿)를 시조로 삼는데, 그의 아들 최용생(崔龍生)이 경상도안찰사로서 원나라 사신에게 미움을 받아 사천(泗川)에 거주하면서부터 경상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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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 구청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석성. 통정리 산성(桶井里山城)의 건립 경위를 알 수 있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만약 축성 시기를 조선 전기로 본다면, 고려 말 왜구의 활동과 관련하여 축조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혹은 임진왜란 때 축성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사전에 계획적으로 성을 쌓았다면 어느 정도 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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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관어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중원(金重元)의 유물. 퇴장암(退藏庵) 김중원[1680~1750]은 임진왜란 때 수문장으로서 진주성에서 순절하여 창렬사(彰烈祠)에 향사된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의 후손이다. 1728년(영조 4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일등공신에 책록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는 않았다. 1891년(고종 28) 가선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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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에 있는 김성일(金誠一)의 유허지. 학봉(鶴峰) 김성일[1538~1593]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1592년 4월 11일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임명되었다. 전쟁이 터지자 초유사(招諭使)가 되어 흩어진 관병을 수습하고 경상도 일대의 의병을 일으키는 데 진력하였다. 이어 경상우도관찰사로 임명되자, 왜군의 호남 진출로가 되는 진주성 방어 전략을 지휘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