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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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김종련(金鍾鍊)[1861~1894]이고, 어머니는 정계언(鄭桂彦)이다. 아버지는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을 때 하동 지역에서 활동하다 붙잡혀 경상남도 감영에서 효수를 당하였고, 형인 김기완(金淇完)도 여러 방법으로 항일 투쟁을 한 인물이다. 부인은 조묵계로, 슬하에 4남 3녀를 두었다. 김기범(金淇範)은 1885년 9월 25일 지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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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강성(江城). 호는 은파(隱坡). 할아버지는 문영국(文永國)이고, 아버지는 문욱동(文勗東)이며, 어머니는 강청등(姜淸登)이다. 부인은 벽진 이씨(碧珍李氏)이며, 자녀로 5남 1녀가 있다. 문공학(文孔學)은 1897년 9월 27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1212번지에서 문욱동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유학의 기본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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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기종(李起淙)으로도 불리는 이강률(李康律)은 1902년(고종 39) 1월 6일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 111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하동군 화개면 장날, 쌍계사 승려 김주석(金周錫)과 학생 정상근(鄭湘根)·양봉원(梁奉源) 등의 주도로 전개된 만세 시위에 이정수(李汀秀)·이정철(李正哲)·임만규(林萬圭) 등과 함께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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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경호(李璟鎬)[혹은 李敬鎬로도 씀]는 1890년(고종 27) 6월 17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291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했던 이경호는 1910년 경술국치의 비보를 듣고 3일간 식음을 전폐하였다. 그리고 붉은 글씨로 ‘항일 투쟁’, ‘일본 타도’를 써서 벽에 붙여두고 항일 투쟁의 의지를 다졌다. 이후 성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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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범호(李範鎬)는 1883년(고종 20) 2월 10일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에서 태어난 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555번지로 이주하여 살았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던 중 1919년 3월 정낙영(鄭洛榮)·정재운(鄭在雲)·정희근(鄭禧根) 등과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3월 18일 하동읍 장날 운집한 군중 앞에서 「대한독립선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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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원태(李源泰)는 1894년(고종 31) 8월 1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덕천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9일, 이홍식(李弘植)·정재백(鄭在伯)·정재운(鄭在雲) 등과 하동군 진교면 장날 군중 1천여 명에게 태극기를 나눠 주고 선두에서 군중을 이끌며 진교의 경찰관 주재소까지 진출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에 분노한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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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정수(李汀秀)는 1888년(고종 25) 9월 3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하동군 화개면 장날, 쌍계사 승려 김주석(金周錫), 학생 정상근(鄭湘根)·양봉원(梁奉源) 등의 주도로 전개된 만세 시위에 이정수는 이강률(李康律)·이정철(李正哲)·임만규(林萬圭) 등과 함께 참가하였다. 이날 화개면 주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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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봉규(林奉圭)로도 불리던 임만규(林萬圭)의 본관은 나주(羅州)로, 1893년(고종 30) 1월 1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하동군 화개면 장날, 쌍계사 승려 김주석(金周錫), 학생 정상근(鄭湘根)·양봉원(梁奉源) 등의 주도로 전개된 1차 만세 시위에 임만규는 이강률(李康律)·이정수(李汀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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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봉규(林奉圭)로도 불리던 임만규(林萬圭)의 본관은 나주(羅州)로, 1893년(고종 30) 1월 1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하동군 화개면 장날, 쌍계사 승려 김주석(金周錫), 학생 정상근(鄭湘根)·양봉원(梁奉源) 등의 주도로 전개된 1차 만세 시위에 임만규는 이강률(李康律)·이정수(李汀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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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낙영(鄭洛榮)은 1879년(고종 16) 3월 22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666번지에서 태어났다. 인재를 기르는 것이 국권 회복의 첩경이라 생각하여 1909년 4월 19일 현산학교(懸山學校)를 설립하고, 이후 약 8년간 교사·교감·교장을 역임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양력 과세와 단발 등 주민 계몽에도 앞장섰다. 또한 충의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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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남시(鄭南時)의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1885년(고종 22) 9월 19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궁항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던 정남시는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궁항리 밭에서 대성통곡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누가 죽었기에 그리 통곡하는가?” 하고 물으니, “조선 천지가 모두 죽었다.”고 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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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에 있는 일제 강점기 애국지사 정상정의 묘소. 정상정은 영일 정씨로 1878년(고종 15) 10월 고전면 성천리에서 출생하였다. 고전면 지역의 독립운동 단체인 일신단을 주도하며 1919년 4월 6일 고전면 고하리, 배더리 장날 이종인, 박영묵, 정의용 등과 함께 1,000여 명의 장꾼을 모아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튿날 일본 헌병 20여 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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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성기(鄭成基)는 1886년 4월 23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에서 태어났다. 재종인 정섬기, 정섬기의 자형인 이경호와 함께 일가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1943년 6월 11일에 작고하였다. 정성기는 1919년 3월 하동군 양보면 일신학교 교원 정섬기(鄭暹基)의 발의로 정세기(鄭世基)·이경호(李璟鎬)·정이백(鄭伊伯) 등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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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독립 운동의 불길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자, 이에 부응하여 4월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에서는 박영묵(朴永默)의 주도 아래 일신단(一身團)을 중심으로 만세 운동에 동참하려는 준비가 진행되었다. 정윤용(鄭潤鎔)은 이때 일신단의 일원으로 만세 운동을 준비하고 주도했던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당시 같은 마을에 사는 이종인(李宗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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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의 배다리장터에서 열린 만세 운동에는 인근 양보·진교·금남 주민 1천여 명이 동참하여 하동군 내 어느 지역보다 규모가 컸다. 이들이 만세 운동을 진행했던 배다리장터에는 현재 장은 서지 않고 그 터만 남아 있으며, 만세 운동을 기념해 하동군 고전면민 만세 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배다리장터는 ‘배더리장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