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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김낙희의 문집. 김낙희(金洛熙)[1881~1960]의 자는 백경(伯敬), 호는 간암(艮菴)이다. 김낙희(金洛熙)의 아들 김성기(金性棋)가 부친의 유고를 모아, 부친이 죽은 이듬해인 1961년에 『간암유고(艮菴遺稿)』를 간행하였다. 서문은 권용현(權龍鉉)이 쓰고 발문은 정민용(鄭珉鎔)이 썼다. 4권 2책의 목활자본(木活字本)이며 표제(表題)와 판심제(版心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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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있는 고려 전기 장군 강민첨의 신도비. 강민첨(姜民瞻)[?~1021]의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진주 강씨 은열공파 1대조인 강민첨은 1018년(현종 9)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강감찬과 함께 출전하여 적군을 대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1019년 응양상장군 주국 우산기상시(鷹揚上將軍柱國右散騎常侍)에 올라, 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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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명호리에 있는 강상현(姜尙鉉)의 처 성성순(成聖順)의 효행을 기리는 비. 일제 강점기에 하동군 청암면 명호리에 거주하는 창녕 성씨 성성순은 16세에 강상현과 혼인하여 가난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다. 몸이 불편한 남편과 고령의 시할머니, 홀아비인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셨다. 효행을 현창하여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자, 성씨 부인의 시아버지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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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성옥(姜聖玉)의 본관은 진양(晉陽)이고, 자는 원찬(遠贊), 호는 매담(梅潭)이다. 1879년(고종 16) 경상남도 하동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의롭고 호탕하며 뜻이 강직하여 한일 합방을 당한 때로부터 망국의 한을 품고 늘 분하게 여겼다. 3·1 운동이 일어나자 솔선하여 동지들과 더불어 결사적으로 항거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6개월간 옥고를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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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김해 김씨와 하동 정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강성환(姜聖煥)의 처 김해 김씨는 남편이 병들어 백방으로 애썼지만 효험이 없자 입으로 종기를 빨아 치료하였다. 그 뒤 맹인이 되어 23년을 앞을 보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동 정씨는 김해 김씨의 아들 강진황(姜鎭璜)의 처이다. 시어머니가 맹인이 되자 언제나 시어머니와 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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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우석(姜佑錫)은 1901년(고종 38) 3월 9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 1286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연희전문학교에 재학 중 3·1 운동에 참가하여 정학 처분을 받았다. 그 해 9월 기독교 게통의 진주 광림학교(光林學校) 교사로 재직 중, 홍수원과 함께 국권 회복 운동을 위한 혈성단(血誠團)을 조직하여 항일 투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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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의 강인현이 소장하고 있는 일제 강점기 고문서. 망기(望記)는 그 직임에 합당한 사람을 적은 문서로, 발급자가 수급자에게 보내는 것은 그 직책을 맡아 달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강인현 소장 고문서는 망기(望記) 4점이다. 임오년(壬午年) 인곡서당(仁谷書堂)에서 강인현(姜麟鉉)을 경현사(景賢祠) 향례(享禮) 때 집례(執禮)의 직임에 추천하는 망기 1점, 정유년(丁酉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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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진양 정씨 은열공파의 재실. 경모재(敬慕齋)는 진양 정씨(晋陽鄭氏) 은열공파 중조 진향의 14세손 정희백(鄭希伯)과 15세손 정두찬(鄭斗燦), 정두형(鄭斗炯), 정두환(鄭斗煥), 16세손 통정대부 정국필(鄭國弼), 17세손 정세(鄭世), 18세손 정래진(鄭來晋)의 추정을 봉사(奉祀)하고 있는 재실이다. ‘경모(敬慕)’란 공경하고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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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진양 정씨 은열공파의 재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마을 회관에서 마을 안길을 따라 오르면 금양교회가 있다. 경본재(景本齋)는 금양교회 앞쪽에 위치한다. 경본재는 진양 정씨(晋陽鄭氏) 은열공파 중조 정진경(鄭晋卿)의 16세손 정국원(鄭國元)과 17세손 정태구(鄭泰龜) 2대의 시향(時享)을 봉사(奉祀)하고 있는 재실로서, 1918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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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정기룡(鄭起龍) 장군의 사당. 경충사(景忠祠)는 충의공 정기룡[1562~1622]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경충사가 위치한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는 임진왜란 때 수많은 전공을 세운 정기룡이 나고 자란 곳이다. 정기룡은 60여 차례나 왜군을 물리친 명장으로, “바다에는 충무공 이순신, 육지에는 충의공 정기룡”이라 일컬어질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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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풍천 노씨 문중의 재실. ‘경호(鏡湖)’라 이름 지은 이유는 재실이 하동 고소성(河東姑蘇城) 밑에 있어 내외의 모든 산이 연기와 구름 사이에 있으며, 동정호가 쪽빛처럼 푸르고 거울처럼 맑아서 무릇 호수의 경치가 다 재실에 비치었기 때문이다. 경호재(鏡湖齋)는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외둔마을 표지석에서 외둔길을 따라 약 300m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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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있는 구인정(九印亭)의 유허비. 조선 후기 형조참판 전주 최씨(全州崔氏) 최정(崔涏)이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두양마을에 살면서 심은 정자나무가 크게 자라 좋은 휴식처가 되었다. 훗날 관직에 나간 최정의 아들과 조카 9명이 이곳에 자주 모여 정자나무에 인끈을 걸어 놓고 어울려 휴식을 취한 사실이 후세에까지 전해 왔다. 그 아홉 명은 전주판관 최기연(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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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이일해의 문집. 이일해(李一海)[1905~1987]의 자는 여종(汝宗), 호는 굴천(屈川)이다. 하겸진(河謙鎭)의 문인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에 거주하였다. 1988년에 이일해의 아들 이재(李材)가 부친의 글을 모아 『굴천집(屈川集)』을 간행하였다. 서문(序文)은 없고 발문(跋文)은 이재가 썼다. 4권 2책[상·하]의 금속활자본(金屬活字本)이며,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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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낙현, 아버지는 만은 권계주이고, 동생은 역시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권대형(權大衡)이다. 권대섭(權大燮)은 1895년(고종 32)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궁항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4일 문암 장터 1차 독립만세 의거에서 동생 권대형이 일본 경찰에 구속되었다. 이에 권대섭은 다음 장날인 3월 29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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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정집, 호는 독수. 아버지는 만은 권계주이고 형은 역시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권대섭(權大燮)이다. 권대형(權大衡)은 1898년 8월 28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궁항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4일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장터에서 하일로, 권상숙(權尙淑), 권복대(權福大) 등과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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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복대(權福大)는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4일 옥종면에서는 안계리 출신 하일로(河一魯)의 주도로 안계 시장에서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때 권복대를 비롯한 최인우(崔寅愚), 정화영(鄭華永), 권대형(權大衡), 권상숙(權尙淑), 김중수(金重洙), 하계원(河啓遠) 등이 중심인물이 되어 인근 수곡면 일대 주민들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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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상숙(權尙淑)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에서 태어났다. 옥종면에서는 1919년 3월 24일 안계리 출신인 하일로(河一魯)의 주도로 안계 시장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했다. 이때 권상숙을 비롯한 최인우(崔寅愚), 정화영(鄭華永), 권대형(權大衡), 권복대, 김중수(金重洙), 하계원(河啓遠) 등이 중심인물이 되어 인근 수곡면 일대 주민들과 함께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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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7월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조직된 항일 여성 운동 단체. 근우회는 1927년 창립되어 1931년에 해산된 여성 항일 구국 및 여성 지위 향상 운동 단체이다. 1927년 신간회가 조직된 직후, 자매단체의 성격을 띠고 같은 해 5월 민족주의 여성 운동계의 김활란(金活蘭)·유영준(劉英俊)·유각경(兪珏卿)·최은희(崔恩喜)·현신덕(玄信德) 등과 사회주의 여성 운동계의 박원민(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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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전통 가옥.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는 금남면의 부자 마을로 유명하다. 하동군 금남면의 대치리 마을에는 진양 정씨(晉陽鄭氏) 은열공파가 오랫동안 세거해 왔다. 진양 정씨의 이 마을 종가이자 규모가 가장 큰 대표적인 전통 가옥이 금남면 대치리 정씨 고택이다. 하동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여 남해와 맞닿아 있는 금남면의 주산인 금오산(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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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김종련(金鍾鍊)[1861~1894]이고, 어머니는 정계언(鄭桂彦)이다. 아버지는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을 때 하동 지역에서 활동하다 붙잡혀 경상남도 감영에서 효수를 당하였고, 형인 김기완(金淇完)도 여러 방법으로 항일 투쟁을 한 인물이다. 부인은 조묵계로, 슬하에 4남 3녀를 두었다. 김기범(金淇範)은 1885년 9월 25일 지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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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군명(君明), 호는 이헌(梨軒). 안경공(安敬公) 김영정(金永貞)의 후손이다. 김석배(金碩培)는 1879년(고종 16)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정직하고 강개(慷慨)하여 남의 과오를 보면 즉시 고치도록 권하고, 남의 환난을 보면 즉시 마음을 다하여 구휼하였다.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도왔으며, 이익을 보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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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에 있는 김성행(金聖行)의 효행을 기리는 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에 살았던 효자 김성행은 부모를 극진히 섬기고, 나이 적은 계모 홍씨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효도를 다했다. 먼 곳의 농사일을 끝내고 밤중에 돌아올 때 호랑이가 길을 인도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1890년(고종 27) 고종이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제수하였다. 1925년 마을 주민들이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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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지례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김시복(金始復)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시복은 본관이 함창(咸昌)이며, 자는 성지(聲之), 호는 구정(龜亭)이다. 형조판서 김남중(金南重)의 후손이다. 1778년(정조 2)에 태어나 열 살에 『효경(孝經)』과 『논어(論語)』를 통달하였다. 타고난 성품이 순박하고 후하며 강직하고, 부모를 효로써 봉양하였다. 갑작스럽게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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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김주석(金周錫)은 1896년(고종 23) 2월 2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쌍계사 승려로서 학생인 정상근(鄭湘根)·양봉원(梁奉源)과 함께 4월 6일 화개리 시장의 시위를 주도하였다. 김주석은 미리 태극기를 만들어 장날인 4월 6일 수백 명의 군중이 모이자 태극기를 나눠 준 뒤 “대한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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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있는 김창휘(金昌輝)의 효행을 기리는 비. 조선 순조 때 효자 통정대부(通政大夫)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김창휘는 아버지의 변을 맛보며 병환을 8년 동안 살폈고, 아버지의 병세가 위급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흘려 넣어 병중의 아버지가 1년을 더 살도록 했다. 그의 효행이 알려지자 조정에서 벼슬을 내렸다. 1941년 고을 사람들과 후손들이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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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임진왜란의 공신인 김태백(金太白)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태백[1560~1592]은 용궁 김씨(龍宮金氏)로 자는 계선(繼仙), 호는 낭선재(浪仙齋)이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하인과 동네 장정 수백 명을 거느리고 진주성에 들어가 관군과 합세하여 싸움을 벌여 수차례 공을 세웠다. 그러나 화살과 힘이 다해 김태백은 결국 촉석루에서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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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의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경주(慶州).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학여(金學汝)이다. 남편은 본관이 김해(金海)인 김경수(金京秀)로, 모암(慕庵) 김극일(金克一)[1382~1456]의 13세손이다. 시아버지는 김국욱(金國旭)이다. 김학여의 딸 경주 김씨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얌전하고 정숙했으며, 효성과 우애가 지극해 집안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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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여성 운동가. 김한순은 근우회(謹友會) 하동지회 초대 위원장이다. 근우회는 1927년 5월 민족주의여성운동과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양 진영 합동으로 결성되어 1931년 사실상 해체될 때까지 4년간 한국여성운동의 중추부로 기능하였다. 3.1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정치 분위기를 타고 1920년대에 전국적으로 여성단체가 폭발적으로 생겨나 1923년까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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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고이리에 있는 김현주(金顯周) 부자의 효행을 기리는 비. 김해 김씨 후손으로 효행이 뛰어났던 귤은(橘隱) 김현주는, 생부 김성두(金星斗)의 명을 받아 숙부 김문두(金文斗)에게 입양되어, 양쪽 부모를 지성으로 받들어 섬겼다. 김현주는 생부 김성두가 귤을 좋아했기 때문에 뜰에 귤나무를 심어 아버지를 봉양하고, 아호를 ‘귤은’이라 했다. 김현주의 아들 김민배(金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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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도경(道卿), 호는 하우(何尤)·하우재(何尤齋). 아버지는 김제응(金濟應)이고 어머니는 김내동(金內東)이다. 아들로 김병성(金炳成), 김병홍(金炳洪), 김병인(金炳仁)을 두었다. 김홍권(金弘權)은 1892년(고종 29) 1월 25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115번지에서 태어났다. 주로 농업에 종사하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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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당시 경상남도 하동의 독립운동가들이 제작, 배포한 독립 선언서. 대한독립선언서는 일명 하동독립선언서라고도 불리는데, 하동 지역 인사 12명의 이름으로 작성되어 3·1 운동 당시 하동군 내에 배포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전해 오는 것은 한 장뿐인데, 독립운동가 박치화(朴致和)가 살던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 고택 처마 밑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3·1 운동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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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신촌마을에 있는 일제 강점기 서당. 덕원서당(德源書堂)은 석정(石亭) 정홍조(鄭弘祚)[1534~1590]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서당이다. 석정 정홍조는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1529~1590]의 제자로, 스승이 기축옥사(己丑獄事)에 연루되어 모함을 당하자 신원(伸寃)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였다. 정홍조의 자는 사응(士膺)이며, 본관은 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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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 상쌍마을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정자. 만산정(晩山亭)은 쌍계거사(雙溪居士) 정혼기(鄭渾基)가 만년에 장수(藏修)[학문을 할 때 조금도 변함없이 열심히 한다는 의미]하던 곳이다. 정승현(鄭承鉉)이 쓴 「만산정기(晩山亭記)」에 의하면, 정혼기는 가난한 집안 살림에도 불구하고 50여 년 동안 부모 봉양을 정성껏 하였는데, 후에 모친의 권유로 하동군 양보면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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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강성(江城). 호는 은파(隱坡). 할아버지는 문영국(文永國)이고, 아버지는 문욱동(文勗東)이며, 어머니는 강청등(姜淸登)이다. 부인은 벽진 이씨(碧珍李氏)이며, 자녀로 5남 1녀가 있다. 문공학(文孔學)은 1897년 9월 27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1212번지에서 문욱동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유학의 기본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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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영빈(文永彬)은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의 17세손이며, 직하재(稷下齋) 문헌상(文憲尙)의 6세손이다.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 한일 합방이 선포되자 독립 기구에 참여하고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상해 임시 정부의 전신인 배달학회(倍達學會)[주석 이시영]에서 총무부장직을 맡아 당시 외교부장이던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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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문익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문익점(文益漸)[1329~1398]은 고려 말기의 정치가이자, 창왕 때 좌사의(左司議)로서 왕 앞에서 강론을 한 뛰어난 학자이기도 하다. 호는 삼우당(三憂堂), 자는 일신(日新)이다. 강성현(江城縣)[현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문숙선(文淑宣)의 아들로 태어났다. 1360년(공민왕 9) 문과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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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있던 일제 강점기 박규석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만석군 지주 박규석(朴奎錫)은 평소 소작인들의 소작료를 줄여 받았고, 흉년이 들어 소작인들이 어려움을 겪자 소작료를 더욱 감해 주었다. 이에 감동한 청암면과 횡천면 소작인들이 뜻을 모아 1940년 4월 박규석의 선행을 기리는 시혜비를 세웠다. 주민들은 인심비(人心碑)라 부르기도 하였다. 박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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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밀양(密陽). 박중래(朴重來)로도 불린다. 아버지는 한의사로 활동한 박준형(朴準亨)이고 어머니는 신상남(申相南)이다. 부인은 영산 신씨(靈山 辛氏)로, 슬하에 딸 박기남을 두었으며 사위는 김금용이다. 외손자부는 전 환경부장관이자 연극배우인 손숙(孫淑)이다. 박내홍(朴來洪)은 1892년(고종 29) 10월 7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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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하동 3·1운동의 효시는 1919년 3월 13일 하동시장에서 전개된 독립만세 사건이다. 하동군 양보면 출신으로 양보일신학교 교사로 있던 정세기(鄭世基)[1984~1981]와 정성기(鄭成基), 정윤기(鄭潤基)의 주도로 시작된 이날의 시위는 군민들의 큰 관심과 호응을 얻어 하동군 각지에 자극을 주었다. 그 해 5월에도 하동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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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하동 3·1 운동의 효시는 1919년 3월 13일 하동시장에서 전개된 독립만세 사건이다. 하동군 양보면 출신으로 양보일신학교 교사로 있던 정세기(鄭世基)[1984~1981]와 정성기(鄭成基), 정윤기(鄭潤基)의 주도로 시작된 이날의 시위는 군민들의 큰 관심과 호응을 얻어 하동군 각지에 큰 자극을 주었다. 하동 지역에서는 그 해 5월에도 하동공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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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옥정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박필종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사과(司果) 벼슬을 지낸 박필종(朴弼鍾)은 소작인들로 하여금 농사를 짓게 하고 수확의 절반씩을 나누었는데, 세금은 자기가 모두 내어 소작인들의 부담을 덜어 주었다. 이에 소작인들이 고마움을 비석에 새겨 남기고자 1933년 5월 마을 앞 도로변에 시혜불망비를 세웠다. 박필종 시혜불망비(朴弼鍾施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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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안희제가 설립한 민족 기업. 백산상회(白山商會)는 1914년 의령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1885~1943]가 이유석(李有石), 추한식(秋翰植)과 함께 부산에서 설립한 회사이다. 1919년 5월 백산상회는 최준, 최태욱, 윤현태, 윤상태, 강복순 등 영남의 대지주를 주주로 하는 주식회사로 개편되었다. 이때 하동에서는 지주 정재완(鄭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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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으로 이주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백운룡(白雲龍)은 1925년 2월 28일 평안북도 신의주 신의주시 미륵동 151번지에서 태어났다. 1943년 일제의 징병령이 강화될 즈음 만주로 피신했다가 같은 해 11월 산동성 청도 지구의 적지구공작대(敵地區工作隊)에 입대하여 적지구 특파 공작대원으로 광복군의 징모(徵募) 공작을 전개하였다. 1944년 1월 광복군 소속인 윤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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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하동군 등에서 민족 해방과 계급 해방을 위해 전개되었던 민족 운동. 사회주의 운동은 노동자 중심의 사회 건설을 위한 계급 운동으로 출발하였지만, 식민지 민중에게는 민족 해방 운동으로서도 기능한 사회 변혁 운동이었다. 우리 사회에 사회주의 사상이 전래된 이후 민족 해방과 노동자 중심의 사회 건설을 위한 사회 변혁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1925년 조선공산당의 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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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1919년 3월 1일을 기해 경상남도 하동군을 포함하여 전국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 만세 운동.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제국주의 열강들의 힘이 약화되는 한편 러시아에서는 소비에트 혁명이 성공하면서 식민지 약소민족에게 민족 해방에 대한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지펴 주었다. 그리하여 전 세계 곳곳에서 민족 해방 운동의 열기가 고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제의 수탈에 반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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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남산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조공근(曺公根) 이하 4대를 모시기 위해 세운 재실. 하동군 횡천면의 창녕 조씨(昌寧曺氏)는 대부분 조선 초기에 평양감사와 이조판서를 지낸 충익공 조문택의 후예이다. 충익공의 후예인 조숙(曺淑)은 홍문관응교를 지낸 뒤 회양부사 등 다섯 고을을 거치면서 치적이 매우 높았으며, 조숙의 작은아들 조원우(曺元佑)가 하동의 입향조로서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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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었던 신간회의 하동 지회. 신간회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이 합작하여 결성된 전국적인 민족 운동 단체로서, 안재홍(安在鴻)·이상재(李尙載)·백관수(白寬洙)·신채호(申采浩)·신석우(申錫雨)·유억겸(兪億兼) 등 34인이 발기했다. 진주·하동 지역에서 많은 제자를 길러냈던 두 학자 하재화와 정태석 등이 발기인과 중앙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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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만중(愼萬重)은 1912년 3월 19일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 604번지에서 태어났다. 만 17세 되던 1929년 6월 김계영(金桂榮), 우용현(禹鎔鉉), 문태규(文泰奎), 김홍근(金洪根) 등이 1927년 8월 20일 발족시킨 하동청년동맹에 가입하여 집행위원으로 선출된 후 본격적으로 사회 운동에 투신하였다. 당시 전국적 조직인 신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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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전통 가옥. 영일 정씨(迎日鄭氏)가 하동에 들어온 것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둘째 아들인 11세손 정종본(鄭宗本)이 귀양 온 숙부를 따라 진주에 정착하고, 정종본의 후손인 18세손 정기(鄭山+夔)[1614~1672]가 하동에 입향(入鄕)하고 나서부터이다. 영일 정씨 종가인 양보면 장암리 정씨 고택(良甫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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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봉원(梁鳳源)은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의 장날에 쌍계사 승려 김주석(金周錫), 학생 정상근(鄭湘根) 등과 함께 화개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하기로 결의하였다. 4월 6일, 양봉원 등은 준비한 태극기를 장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화개면 주민과 전라도·충청도 상인 등 400여 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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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염삼섭(廉三燮)은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에서 태어났다. 하동공립보통학교 재학 중, 서울에서 3·1 운동이 일어나고 얼마 후인 3월 18일 하동읍에서 만세 사건이 일어나는 등 만세 운동의 기운이 고조되자 같은 학교 학생 박문화(朴汶和), 정점금(鄭点金), 전석순(全錫舜) 등과 함께 비밀 회합을 열고 의거를 협의하였다. 그들은 하동 지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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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용궁 김씨 우천공파 문중의 재실. 용궁 김씨(龍宮金氏) 선조 낭선공(浪仙公) 김태백(金太白)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이끌고 진주성을 지키다 순절하였다. 그의 아들인 율헌공(栗軒公) 김준걸(金俊傑)이 하동으로 이거하면서 용궁 김씨가 하동에 살기 시작하였다. 그 후 4세손에 이르러 오형제가 나뉘어져 5파(五派)가 되었고, 그 마지막이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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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최치원(崔致遠)을 기리는 사당. 운암영당(雲岩影堂)은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중심 소재지에서 고전면 고하리 고하마을로 넘어가는 궁단재의 지내마을에 위치한다. 고운(孤雲) 최치원[857~?]의 진영은 경주 서악서원(西岳書院)에 최초로 봉안된 뒤, 사본들이 태인의 무성서원(武城書院)과 하동의 옥천사(玉泉寺) 앞 학사대(學士臺)에 안치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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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의병장. 유명국(柳明國)의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1869년 3월 2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서 태어났다. 유진환(柳震煥)으로도 불렸다. 어려서 진주시 수곡면 창촌리로 이사 가서 성장했고, 다시 아버지를 따라 산청군 시천면 공전리로 옮겨 그곳의 의병진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제1차 의병 전쟁이 일어나자 가솔을 이끌고 노응규 진영에 가담하여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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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고당 김규태가 경상남도 하동군의 쌍계사와 불일폭포를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유불일폭기(遊佛日瀑記)」는 김규태(金奎泰)[1902~1966]의 『고당집(顧堂集)』 권11에 수록되어 있다. 김규태는 1928년 5월 10~5월 11일 양일간 쌍계사(雙磎寺)와 불일폭포 일대를 유람하고 그 감상을 「유불일폭기」로 기록하였다. 동행이었던 매봉(梅峰) 오정표(吳正杓)[1897~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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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매봉 오정표가 경상남도 하동군의 쌍계사와 불일폭포를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유불일폭기(遊佛日瀑記)」는 『매봉유고(梅峯遺稿)』 권3에 수록되어 있다. 오정표(吳正杓)[1897~1946]는 1928년 6월 7~6월 8일 양일간 하동군의 불일폭포를 유람하였다. 동행한 고당(顧堂) 김규태(金奎泰)[1902~1966]도 「유불일폭기」라는 유람록을 남기고 있다. 오정표의 자는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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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기종(李起淙)으로도 불리는 이강률(李康律)은 1902년(고종 39) 1월 6일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 111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하동군 화개면 장날, 쌍계사 승려 김주석(金周錫)과 학생 정상근(鄭湘根)·양봉원(梁奉源) 등의 주도로 전개된 만세 시위에 이정수(李汀秀)·이정철(李正哲)·임만규(林萬圭) 등과 함께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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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경호(李璟鎬)[혹은 李敬鎬로도 씀]는 1890년(고종 27) 6월 17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291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했던 이경호는 1910년 경술국치의 비보를 듣고 3일간 식음을 전폐하였다. 그리고 붉은 글씨로 ‘항일 투쟁’, ‘일본 타도’를 써서 벽에 붙여두고 항일 투쟁의 의지를 다졌다. 이후 성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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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범호(李範鎬)는 1883년(고종 20) 2월 10일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에서 태어난 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555번지로 이주하여 살았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던 중 1919년 3월 정낙영(鄭洛榮)·정재운(鄭在雲)·정희근(鄭禧根) 등과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3월 18일 하동읍 장날 운집한 군중 앞에서 「대한독립선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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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 경남 학도 연합 군사 대연습 이세기(李世基)는 1923년 10월 23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 1265번지에서 태어났다. 이세기가 부산제2상업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0년 11월 21일, 일본군 배속장교 겸 부산 병참 기지 사령관 노다이의 총지휘 아래 ‘경남 학도 연합 군사 대연습’이 있었다. 부산과 마산의 중학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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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지례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효자 이원주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원주(李元周)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명을 어기는 일이 없던 효자였다. 부모님이 중병에 걸려 여러 달 동안 낫지 않자 죽어 가는 부모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살려 냈다. 마을 사람들이 그의 효행을 기리고 후세의 귀감을 삼기 위해 1928년에 비를 세웠다. 이원주 효행비(李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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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원태(李源泰)는 1894년(고종 31) 8월 1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덕천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9일, 이홍식(李弘植)·정재백(鄭在伯)·정재운(鄭在雲) 등과 하동군 진교면 장날 군중 1천여 명에게 태극기를 나눠 주고 선두에서 군중을 이끌며 진교의 경찰관 주재소까지 진출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에 분노한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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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재기(李載基)는 1874년(고종 11) 5월 2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던 이재기는 청년 시절 일본을 다녀온 후 일본의 침략을 예견하고 스스로 심신을 단련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19년 3월, 같은 동리의 문공학(文孔學)·문영빈(文永彬) 등과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3월 21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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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정수(李汀秀)는 1888년(고종 25) 9월 3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하동군 화개면 장날, 쌍계사 승려 김주석(金周錫), 학생 정상근(鄭湘根)·양봉원(梁奉源) 등의 주도로 전개된 만세 시위에 이정수는 이강률(李康律)·이정철(李正哲)·임만규(林萬圭) 등과 함께 참가하였다. 이날 화개면 주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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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이종의(李宗義)는 박영묵(朴永默)·이종인(李宗仁)·정상정(鄭相正)·정의용(鄭宜鎔)·추홍순(秋鴻順) 등과 동지 33명을 규합하여 ‘일신단(一身團)’이란 비밀 결사를 조직하고 생사를 함께하기로 맹약하였다. 그 해 4월 6일 하동군 고전면 주교리 장날, 일신단이 단상으로 올라가 의거의 취지를 설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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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종인(李宗仁)은 1869년(고종 6) 6월 15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906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이종인은 박영묵(朴永默)·정상정(鄭相正)·정의용(鄭宜鎔)·추홍순(秋鴻順) 등과 동지 33명을 규합하여 일신단(一身團)이란 비밀 결사를 조직하고 생사를 함께하기로 맹약하였다. 1919년 4월 6일 하동군 고전면 주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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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병천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효열부 은진 송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연로한 시부모를 모신 은진 송씨(恩津宋氏)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 이현유 처 송씨 행적비(李鉉宥妻宋氏行蹟碑)는 하동군 옥종면 병천리 116번지 원해마을 지방도 사거리 옆에 있다. 비석의 전체는 화강암이며, 팔각지붕의 덮개와 받침대가 있다. 비석의 크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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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홍식(李弘植)은 1896년(고종 33) 3월 28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9일, 이원태(李源泰)·정재백(鄭在伯)·정재운(鄭在雲) 등과 하동군 진교면 장날 군중 1천여 명에게 태극기를 나눠 주고는 선두에서 군중을 이끌며 진교의 경찰관주재소까지 진출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에 분노한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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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던 독립운동 단체. 일신단(一身團)은 오직 한 뜻, 한 가지, 한 몸처럼 뜻을 모아 투쟁한다는 의미의 비밀 항일 운동 조직으로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출신 독립지사들이 뜻을 모아 3·1 운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민족 대표 33인을 본받아 금남면민과 고전면민 33명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일신단은 1919년 4월 6일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주교리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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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경상남도 하동 지역의 역사.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정책은 사회·경제적 수탈뿐만 아니라 한국 민족 말살을 강행하는 악랄한 정책을 집행하였다. 1919년 3·1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하동 지역에서도 항일 독립 운동은 완강하고 줄기차게 전개되었다. 반일 민족 운동이나 소년 운동, 청년 운동 등과 같은 반봉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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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봉규(林奉圭)로도 불리던 임만규(林萬圭)의 본관은 나주(羅州)로, 1893년(고종 30) 1월 1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하동군 화개면 장날, 쌍계사 승려 김주석(金周錫), 학생 정상근(鄭湘根)·양봉원(梁奉源) 등의 주도로 전개된 1차 만세 시위에 임만규는 이강률(李康律)·이정수(李汀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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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석순(全錫舜)은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4일, 하동공립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 학우 박문화(朴汶和)·염삼섭(廉三燮)·정점금(鄭點金) 등과 하동 지역에서 일어났던 만세 운동을 목도하고 “우리 학생들도 궐기하여 의거를 결행하자!”고 결의하였다. 이에 수차례 비밀 회합을 가진 후, 기숙사에서 3~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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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낙영(鄭洛榮)은 1879년(고종 16) 3월 22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666번지에서 태어났다. 인재를 기르는 것이 국권 회복의 첩경이라 생각하여 1909년 4월 19일 현산학교(懸山學校)를 설립하고, 이후 약 8년간 교사·교감·교장을 역임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양력 과세와 단발 등 주민 계몽에도 앞장섰다. 또한 충의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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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남시(鄭南時)의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1885년(고종 22) 9월 19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궁항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던 정남시는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궁항리 밭에서 대성통곡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누가 죽었기에 그리 통곡하는가?” 하고 물으니, “조선 천지가 모두 죽었다.”고 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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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몽석(鄭夢錫)은 1896년 4월 16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508번지에서 태어났다. 기독교 계통인 진주 광림학교[현 봉래초등학교]에 입학하여 4년간 신학문을 배웠다. 1919년 2월 고종 황제의 인산에 참여하러 상경하였다가 3·1 운동을 직접 목도하고, 「독립선언문」과 격문을 지니고 진주로 귀향하였다. 이후 정몽석은 강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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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상근(丁湘根)은 1919년 4월 6일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장날에 쌍계사 승려 김주석(金周錫), 학생 양봉원(梁奉源) 등과 함께 화개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날 화개면 주민과 전라도·충청도 상인 등 400여 명도 합세하여 밤늦도록 시위를 전개하다 경찰의 발포로 해산하였다. 그리고 다음 장날인 4월 11일, 이강률(李康律)·이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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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상정(鄭相正)의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선중(善中), 호는 석정(石亭)이다. 1878년(고종 15) 10월 1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1103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던 정상정은 지리산에서 의병 활동을 하던 중 의병대장 유명국(柳明國)의 명으로 노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귀향하였다. 1919년 3월 박영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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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에 있는 일제 강점기 애국지사 정상정의 묘소. 정상정은 영일 정씨로 1878년(고종 15) 10월 고전면 성천리에서 출생하였다. 고전면 지역의 독립운동 단체인 일신단을 주도하며 1919년 4월 6일 고전면 고하리, 배더리 장날 이종인, 박영묵, 정의용 등과 함께 1,000여 명의 장꾼을 모아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튿날 일본 헌병 20여 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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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 정섬기(鄭暹基)[1895~1954]는 영일 정씨로 아버지는 정환칠(鄭煥七), 어머니는 김관동(金冠東)이다. 정섬기는 1895년 12월 26일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 600번지에서 태어나 1919년 하동읍 만세운동 등 독립운동을 하다가 1954년 7월 24일 별세하였다. 부인은 정양남이며, 그 사이에 2남을 두었다. 정섬기는 선조인 정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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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성기(鄭成基)는 1886년 4월 23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에서 태어났다. 재종인 정섬기, 정섬기의 자형인 이경호와 함께 일가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1943년 6월 11일에 작고하였다. 정성기는 1919년 3월 하동군 양보면 일신학교 교원 정섬기(鄭暹基)의 발의로 정세기(鄭世基)·이경호(李璟鎬)·정이백(鄭伊伯) 등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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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양(晉陽). 이름은 정순종(鄭舜鍾), 자는 재백(再伯)이다. 자를 ‘ 재백(在伯)’으로 잘못 기록한 곳도 있다. 정순종이라는 본명 보다 자인 정재백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독립운동사』 3권에도 정재백으로 쓰여있다. 정순종은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9일 진교장날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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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효자 정원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정원철(鄭源喆)은 본관이 진양(晉陽)이며, 자는 응원(應元)이고, 호는 모헌(慕軒)이다. 충장공(忠莊公) 정분(鄭苯)의 후손이다. 정원철 효행비(鄭源喆孝行碑)는 정원철의 효행을 기릴 뿐 아니라 인륜이 무너지는 세태에 그의 행적을 보여 줌으로써 효도가 백행(百行)의 근본임을 알리기 위해 19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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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독립 운동의 불길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자, 이에 부응하여 4월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에서는 박영묵(朴永默)의 주도 아래 일신단(一身團)을 중심으로 만세 운동에 동참하려는 준비가 진행되었다. 정윤용(鄭潤鎔)은 이때 일신단의 일원으로 만세 운동을 준비하고 주도했던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당시 같은 마을에 사는 이종인(李宗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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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1일 기미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하동군에서도 하동읍·고전면·북천면·옥종면·청암면·화개면 등지에서 만세 운동이 다발적으로 전개되었다.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 출신의 정이백(鄭移伯)은 동료 이경호(李璟鎬)와 함께 하동장날에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에 700여 명의 군중을 동원하여 참가하였다. 이날의 만세 시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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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덕천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정재권(鄭在權)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정재권[1796~1877]은 진양 정씨(晉陽鄭氏)로 행용양위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이었다. 어려서부터 지극히 효성스러워 진귀한 음식을 얻으면 매번 반드시 집에 가지고 돌아가 어머니께 드렸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비둘기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정재권이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기도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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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의 배다리장터에서 열린 만세 운동에는 인근 양보·진교·금남 주민 1천여 명이 동참하여 하동군 내 어느 지역보다 규모가 컸다. 이들이 만세 운동을 진행했던 배다리장터에는 현재 장은 서지 않고 그 터만 남아 있으며, 만세 운동을 기념해 하동군 고전면민 만세 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배다리장터는 ‘배더리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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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정재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정재기(鄭在淇)[1906~1983]는 본관이 진주(晉州)이고, 호는 해당(海堂)이다. 지금의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서 태어났으며, 학문이 높아 수사(秀士)라는 호칭을 받았다. 일제 치하에서 일본 경찰의 요시찰 인물로 지목받을 만큼 민족의식이 강하였고, 불교계의 중추적 인물인 다솔사 주지 최범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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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재옥(鄭在玉)[1893~1944]은 1893년 2월 21일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338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인이 최선이이며, 그 사이에 4남 2녀를 두었다. 어려서 한학(漢學)을 통해 충의(忠義) 사상을 갖춘 데다, 일본의 만행을 직접 보며 자라 항일 의식이 투철하였다. 1919년 4월 7일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정신교(鄭信敎)의 집에서 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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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재완(鄭在涴)의 호는 물헌(勿軒))이다. 정재완은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서 태어났다. 근검절약하여 재산을 모아 만석 거부(萬石巨富)가 되었는데, 일제 강점기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를 통해 상해 임시 정부에 자금 지원을 하였다. 또한 부산 동래에 산해관(山海館)을 건립하여 독립지사의 연락 및 은신처로 제공하였다. 정재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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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재운(鄭在雲)의 본관은 진양(晉陽)으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정기룡(鄭起龍)의 후손이다. 1895년 5월 4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628번지에서 태어났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던 금양국민학교의 전신인 현산학교에 들어가 신학문을 배우고 어려서부터 집 안에서 한학을 배웠다. 1919년 3월 29일 진교장날 정재운은 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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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전국적으로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하동군에서도 하동읍·고전면·북천면·옥종면·청암면·화개면 등지에서 만세 운동이 다발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만세 운동 중 하동보통학교 학생 160여 명이 하동시장에 모여 만세를 부른 운동이 있었다. 1919년 4월 7일 하동보통학교 학생들이 광평 송림으로 소풍을 가는 날, 학생들은 박문화(朴汶和) 등 4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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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중기(鄭仲基)의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선명(宣明), 호는 제천(齊川)이다. 성질이 곧고 두뇌가 명석하며 정직했다. 경술국치 이후 비분강개하여 항상 망국의 한을 품고 있다가, 기미독립운동 때 동지를 규합하여 하동 장날인 1919년 3월 13일 시위행진을 하다가 체포되어 5개월간 징역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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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사평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정형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정형시 시혜불망비(鄭炯時施惠不忘碑)는 일제 강점기 진주 정씨(晋州鄭氏) 전 의관 정형시가 흉년에 소작 농민들에게 소작료를 감면해 주자, 이에 은혜를 입은 지역 소작 농민들이 뜻을 모아 정형시의 공덕을 기리고자 1918년 2월 마을 앞에 세웠다. 하동군 북천면 사평리 525-6번지 사평마을 어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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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화영(鄭華永)은 1919년 전국적으로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서도 만세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미리 하일로(河一魯)·권대형(權大衡)·권상숙(權尙淑)·권복대·하계원(河啓遠)·최인우(崔寅愚)·김중수(金重洙) 등과 공모하여 인근에 연락을 취하는 등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정화영 등은 3월 24일 안계리 장날이 되자 장터에 운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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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에 있는 효열부 밀양 손씨의 정려비. 개항기인 1878년(고종 15) 무렵 정환탁(鄭煥倬)의 처 밀양 손씨는 곤궁한 가운데 남편이 병이 깊어 몸져눕자, 삯바느질과 품팔이로 집안을 꾸리며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 어느 날 병이 깊어진 남편이 하루를 넘기지 못할 듯하자 손씨 부인은 남편과 죽음을 함께 하겠다며 음독 자결로 목숨을 버렸는데 나이 2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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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희근(鄭禧根)은 1881년(고종 18)경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0일 정낙영, 이범호 등과 함께 남면사무소의 등사판을 이용해 「대한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각 마을에 배부하고 군중 동원을 마친 뒤, 대치리에 있는 금양면사무소 앞에서 「대한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정희근 등은 오전 11시부터 “대한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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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무준(趙武駿)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1918년 4월 28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81번지에 태어났다. 1941년 일본 규슈[九州]에서 규슈의학전문학교[九州醫學專門學校] 3년생으로 재학 중 일본 유학생들에게 민족 독립 의식을 계몽하고 동지를 규합하였다. 그 해 9월 신입생 환영식 등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멸망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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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결성되었던 노동 단체의 하나인 조선노동공제회의 하동 지역 지회. 조선노동공제회는 일제 치하에서 생존권을 위협받던 노동자·농민들이 권리 신장과 함께 일제 지배에 거부하는 투쟁을 전개한 민족 운동 단체로서의 성격을 지닌 노동 단체이다. 1920년 4월 서울에서 박중화(朴重華) 등에 의해 창립되었으며 조선 노동 사회의 지식 계발, 저축의 장려, 품성의 향상, 위생 향상,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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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정래(趙正來)는 1914년 8월 16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77번지에서 태어났다. 1931년 2월 27일 경상남도 진주에 있는 진주공립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 동맹 휴교를 감행하여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같은 해 10월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동경전기학교(東京電氣學校)에 입학하여 일본반제동맹 동경지방위원회 전기학교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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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학제(趙鶴濟)는 1904년 8월 13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297번지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재학 중이던 1925년 6월 조선청년동맹 동경지부 조직책으로 항일 운동을 하였다. 잠시 귀국하여 국내 독립운동 단체와 여운형(呂運亨)을 통해 상해 임시 정부의 밀명을 받고 일본에 잠입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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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인천(仁川). 남편은 이보형(李輔衡)으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1919년 4월 7일 하동 읍내에서 박문화(朴汶和), 정점금(鄭點金), 전석순(全錫舜) 등 하동보통학교 학생 160여 명이 만세를 불렀는데, 채소정(蔡小丁)도 여학생으로서 참가하였다. 이후 채소정은 1925년 하동청년회관 신축 기성회에 참여하였고, 신간회의 자매단체인 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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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진양 정씨 문중의 재실. 진양 정씨(晉陽鄭氏) 입향조인 오봉공 정대수의 현손인 정국형(鄭國亨)은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은거하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였는데, 이러한 법도를 세 아들인 정서구, 정순구, 정우구에게 물려주었다. 후손들은 처사(處士) 정국형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925년 첨모재(瞻慕齋)를 산소 곁에 건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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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인우(崔寅愚)의 본관은 삭녕(朔寧)으로,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옥종면 안계리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주도한 것은 하일로(河一魯)였다. 최인우는 하일로·권대형(權大衡)·권상숙(權尙淑)·권복대·하계원(河啓遠)·정화영(鄭華永)·김중수(金重洙) 등과 미리 인근에 연락을 취하는 등 계획을 세운 후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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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흥(咸興).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구원군에 소속되어 장수로 활약한 추수경(秋水鏡)[1530~1600]의 9세손이다. 부인은 평산 신씨(平山申氏)이며, 그 사이에 아들은 없고 딸만 둘을 두어 양자를 들였다. 추홍순(秋鴻順)[1894~1959]은 1894년 3월 12일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 232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9일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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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경주 김씨 문중의 사당. 금남사(錦南祠)는 1904년(고종 41) 경천묘(敬天廟)를 조성한 이후 1918년 지방 유림들이 발의하여 고려조의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영정과 위패, 양촌(陽村) 권근(權近)[1352~1409]의 위패,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경천묘 경내에 건립한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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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전통 가옥. 하동에서 가장 명성 있는 고장을 들자면 악양을 꼽을 수 있는데, 나당 연합군의 당나라 장군 소정방(蘇定方)[592~667]이 중국의 악양과 그 모습이 같다 하여 이름 붙였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과 같이 악양팔경이 존재한다. 하동군 악양은 전체 면의 구성이 지리산[1,915m] 자락에서 내려온 구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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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는 천주교 마산교구 소속 성당. 하동 지역의 초기 천주교 신자들은 경상남도 진주 인근인 옥종면, 북천면, 양보면 일원에 교우촌을 형성하여 살았는데 당시 천주교 부산교구[1893년 설립]의 진주성당[1899년 설립]과 문산성당[1905년 설립]을 중심으로 여러 공소가 생성되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1916년 문산성당의 관할 아래 30여 명의 신자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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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산촌마을에 있는 일제 강점기 서원. 하동 북방리 수정당(河東北芳里守正堂)은 옥산을 중심으로 동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옥동서원(玉東書院)이라고도 불렸다. 지역 유생들이 모여 공부를 하던 강학 공간이었으며, 사당인 존덕사(尊德祠)에는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1529~1590]과 석정(石亭) 정홍조(鄭弘祚)[1534~1590]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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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었던 청년 조직. 하동청년동맹은 풍속 교정, 덕성 함양, 문자 보급, 지식 계발, 애국 계몽 등을 위해 설립되었다. 1927년 8월 20일 창설되었다. 『동아일보』 1927년 8월 24일자에 의하면 하동청년동맹이 8월 20일 발회식을 거행하였고 대표 임원들은 김익원, 김계영, 우용현, 문태규라고 밝혔다. 회원들은 대부분 하동 지역의 유지급 청년들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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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었던 청년 회관. 하동청년회관은 일제 강점기 사회 변혁과 민족 독립을 염원하는 하동 지역 청년들이 조직을 결성하여 운동을 전개하던 대표적인 장소였다. 3·1 정신을 계승하여 민중 계몽, 독립 정신 함양 등의 국민 교양 강좌를 위해 1926년 하동 청년들이 앞장서고 독지가의 출연을 받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 441-1번지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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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던 청년 단체. 하동청년회는 3·1 운동 후 민족 운동의 영향이 전국에 널리 퍼져 도시와 농촌, 사상과 종교, 계층을 떠나 점점 확대되자 하동 지역 청년들에게 새로운 사상과 이념을 배우게 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하동청년회는 1920년에 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초대 회장은 김익원(金翊源)이었다. 1921년 4월 10일에 있었던 정기 총회에서 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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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었던 형평사의 하동 지역 분회. 형평사 하동분회는 계급을 타파하고 백정(白丁)에 대한 모욕적인 칭호를 폐지하며 교육을 장려하여 백정도 참다운 인간이 되도록 하기 위한 사회 운동 단체이다. 1923년 4월 24일 경상남도 진주의 사회 운동가들과 백정들이 진주청년회관에서 형평사를 창립하고 발기 총회를 열었다. 이후 전국 각지에 지사와 분사가 설치되었고 하동에서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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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순남(洪順南)은 1902년(고종 39)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광주 3·1 운동은 김강·김철·최병준·최한영과 숭일학교·수피아여학교·농업학교 교사들이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오후 3시경 부동교(不動橋) 아래의 작은 장터에서 학생 및 일반 주민 1,500여 명이 모여 독립 만세를 외쳤는데, 당시 18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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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아리랑 민요. 「화개 아리랑」은 하동군 화개면에서 부른 아리랑으로 뒷소리에 ‘아리랑’이 따라 붙은 가창 유희요이다. 아리랑은 남한·북한 각지와 만주 지방까지 퍼져 있는 한민족의 대표적인 민요이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아리랑으로는 「정선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밀양 아리랑」, 「진도 아리랑」 등이 있다. 「화개 아리랑」은 개화기 이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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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에 있는 화개장터에서 일어난 3·1 운동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화개장터는 하동군의 3·1 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난 현장이다. 1919년 4월 6일 쌍계사 승려와 학생 김주석(金周錫)·양봉원(梁鳳源)·정상근(鄭相根:丁湘根) 등이 앞장서고 애국 청년 이강률(李康律)·이정수(李汀秀)·임만규(林萬圭)·이정철(李正哲) 등이 동참하여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장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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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진양 정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진양 정씨(晉陽鄭氏)는 정성기(鄭聖基)의 딸로 황창주(黃昌周)와 결혼하였다. 시부모를 정성껏 모셨는데, 시부모가 일찍 세상을 뜬 뒤 노망 든 시할머니도 극진히 모셨다. 돌아가신 뒤 상례와 제례를 예법에 맞게 하였다. 이 같은 진양 정씨의 지극한 효행을 기리기 위해 1928년에 효행비를 세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