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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905
한자 河達弘
영어음역 Ha Hongdal
이칭/별칭 윤여(潤汝),월촌(月村)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병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09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877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종화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삼기촌
성격 유학자
성별
본관 진양(晉陽)

[정의]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윤여(潤汝), 호는 월촌(月村).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1377~1438]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하진희(河晉熙)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하의일(河義一)이며, 할아버지는 하덕광(河德廣)이다. 아버지는 하석흥(河錫興)이고, 어머니는 강주우(姜周祐)의 딸 진양 강씨(晉陽姜氏)이다. 전처는 윤택귀(尹宅龜)의 딸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며, 그 사이에 1남을 두었다. 후처는 권창하(權彰夏)의 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며, 그 사이에 3남 2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하달홍(河達弘)[1809~1877]은 하동군 옥종면 종화리 월봉 고택(月峯古宅)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진사 최중집(崔重集)에게 나아가 글을 배웠는데, 최중집이 그의 남다른 자질을 보고 크게 될 인물이라고 기대하였다. 아버지 하석흥은 돈을 아끼지 않고 책을 구하여 아들이 공부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2~13세 무렵에 진주목사가 덕천서원(德川書院)에서 백일장을 열었는데, 제출한 시가 탁월하여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하달홍은 주자의 저술에서 “일이 없을 때에는 마음을 전일하고 엄정하게 하여 자기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으며, 책을 읽을 적에는 마음을 비우고 이치를 완미하여 성현의 본래 의미를 궁구한다[無事則專一嚴正 以求自己之放心 讀書則虛心玩理 以究聖賢之本意]”라는 28글자를 취해 학문의 핵심으로 삼았다. 그리고 남명 조식, 퇴계 이황, 겸재 하홍도의 학문을 존숭하였다.

겸재 하홍도의 문집이 간행되지 못한 것을 안타까이 여겨 발간을 추진하였으며, 선조인 양정공의 묘소가 여러 차례 난리를 겪으면서 제대로 보존되지 못한 것을 탄식하여 묘소를 정비하고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1777~1861]의 묘갈명을 받아 비석을 세웠다. 진주목사 정현석(鄭顯奭)이 그를 존경하여 진주향교에서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행할 때 주빈으로 모셨으며, 백성들의 어려움이나 행정의 폐단이 있는지를 항상 자문하였다.

[학문과 저술]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6], 물재(勿齋) 노광리(盧光履), 남파(南坡) 이희석(李僖錫) 등과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맺어 함께 학문을 강론하고 산수를 찾아 시를 읊었다. 겸재의 강학 공간인 모한재(慕寒齋)에서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그들을 데리고 부근의 산에 오르곤 하였다. 이러한 삶의 모습에 대해 노사 기정진은 “문밖을 나가면 푸른 산을 바라보고, 문안에 들어오면 책을 펼치네[出門看靑山 入門開黃卷者]”라고 표현하였다. 병인양요로 나라가 어수선해지자 위정척사(爲政斥邪)에 입각하여 외국과 통상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저서로 문집 8권 5책 『월촌집(月村集)』이 있다. 약관(弱冠)의 나이 때부터 사마천(司馬遷)·한유(韓愈)·유종원(柳宗元)·구양수(歐陽脩)·소식(蘇軾)의 문장을 즐겨 탐독하였으며, 작문할 적에 고문(古文)을 흠모하여 추구하였다. 대한제국 말의 대문장가인 회봉(晦峰) 하겸진(河謙鎭)[1870~1946]은 그의 문장에 대해 “공이 지은 두류산·금산 관련 시와 진주향교 향음주례 서문과 경절사 상량문 등은 어찌 오늘날 보기 드문 문장이라고만 하겠는가. 마땅히 고문장가들에게서 이것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칭송하였다.

[묘소]

묘소는 하동군 옥종면 삼기촌(三歧村) 좌도동(左道洞)에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4.08 인명 오류 수정 요청 남파(南坡) 이위석(李偉錫) -> 남파(南坡) 이희석(李僖錫)
이용자 의견
박** 남파 이위석이 아니라 남파 이희석(李僖錫)임. 이희석은 기정진의 문인으로 장흥에서 활동하던 유학자임. <노사선생연원록> 및 관련 문집 참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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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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