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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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문익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문익점(文益漸)[1329~1398]은 고려 말기의 정치가이자, 창왕 때 좌사의(左司議)로서 왕 앞에서 강론을 한 뛰어난 학자이기도 하다. 호는 삼우당(三憂堂), 자는 일신(日新)이다. 강성현(江城縣)[현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문숙선(文淑宣)의 아들로 태어났다. 1360년(공민왕 9) 문과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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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문익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문익점(文益漸)[1329~1398]은 고려 말기의 정치가이자, 창왕 때 좌사의(左司議)로서 왕 앞에서 강론을 한 뛰어난 학자이기도 하다. 호는 삼우당(三憂堂), 자는 일신(日新)이다. 강성현(江城縣)[현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문숙선(文淑宣)의 아들로 태어났다. 1360년(공민왕 9) 문과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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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자빈(子彬). 문헌공(文獻公) 박연(朴堧)[1378~1458]의 후손이다. 박연은 조선 전기 세종 대의 음악 이론가로 1411년(태종 11) 진사에 등과했으며, 그 뒤 사간원 정언과 봉상판관 겸 악학별좌, 예문관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세종을 도와서 음악을 정비하는 데 많은 공헌을 했으며, 특히 율관 제작을 통한 편경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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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하동군에 두었던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수단과 시설. 봉수(烽燧)는 횃불[烽]과 연기[燧]로 변방의 위급한 상황을 본읍(本邑)과 중앙에 전달하던 군사적 목적의 통신 수단과 시설로서 고대부터 1894년까지 사용되었다. 봉수제는 중국에서 유래했으며, 우리나라에도 이미 삼국 시대에 도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확실한 기록은 12세기 초기에 보인다. 1123년(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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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나 사적(事蹟)을 기념하기 위해서 돌·금속·도기·나무 등에 글을 새겨 세워놓은 경상남도 하동군의 여러 기념물. 비는 재료에 따라 석비(石碑)·목비(木碑)·철비(鐵碑) 등으로 분류된다. 비는 흔히 비석이라고 하듯이 현존하는 기념물 형태의 비는 거의 모두 석비이다. 석비는 형태에 따라 비(碑)[위가 네모난 형태]와 갈(碣)[위가 둥근 형태]로 나눌 수 있으나 총칭하여 비갈(碑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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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흙이나 돌로 축조한 방어 시설. 성은 집단의 공동 목적과 더불어 소수의 수비군이 다수의 침략군을 효과적으로 격퇴하거나 침공 속도를 늦추어 후방이 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얻기 위한 방어용 건축물이다. 따라서 성은 인류 역사에서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발생하고, 국가가 성립하면서 나타나는 환호(環濠)와 목책과 같은 방어 시설, 습지에서 발달한 환호취락(環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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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유를 시조로 하고 이구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성주 이씨의 시조는 신라 말의 명재상 이순유(李純由)이다. 성주 이씨는 고려 말에 크게 번성하였다. 시조 이순유로부터 12세인 농서군공 이장경(李長庚)은 이득희(李得禧)의 아들로 슬하에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다섯째 이조년(李兆年)[1269~1343]의 증손인 이제(李濟)[?~1398]가 하동 지역의 입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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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집안에 모신 여러 신령에게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 안택은 정초에 가택신(家宅神)에게 고사를 지내 가정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가신 신앙 행위이다. 하동 지역에서는 무당이나 경문쟁이를 불러 「안택경(安宅經)」을 읽으며 터주신을 비롯하여 조상신(祖上神)·동신(洞神) 등에게 제사를 지낸다. 경객을 ‘화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문쟁이를 부르지 않고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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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증조할아버지는 정을귀(鄭乙貴)이며, 할아버지는 석성현감을 지낸 정흥인(鄭興仁)이다. 아버지는 하동부원군(河東府院君) 정인지(鄭麟趾)이며, 어머니는 이휴(李携)의 딸이다. 전처는 세종의 아들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의 딸이며, 후처는 이계손(李繼孫)의 딸이다. 정경조(鄭敬祖)는 1485년(성종 16) 문과에 2등으로 급제하여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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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의신(義臣). 정양(鄭穰)의 9세손이다. 정양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423년(세종 5) 문과에 급제하여 좌사간(左司諫)을 지냈다. 경시서 주부를 역임할 때에 세종의 명을 받아 예문관 대제학 유사눌(柳思訥), 집현전 대제학 정인지(鄭麟趾), 봉상 판관(奉常判官) 박연(朴堧) 등과 함께 구악(舊樂)을 정리하였다.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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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경부(敬夫), 시호는 문절(文節). 아버지는 감찰을 지낸 정제(鄭提)이며, 어머니는 관찰사를 지낸 김약채(金若采)의 딸 광주 김씨(光州 金氏)이다. 정수충(鄭守忠)은 경사(經史)에 두루 통달하였으며, 재능과 행실이 뛰어났다. 처음에는 환관(宦官)을 교육하는 일을 담당하였으며, 뒤에는 세종의 명으로 영응대군(永膺大君) 이염(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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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백저(伯雎), 호는 학역재(學易齋).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정지연(鄭芝衍)의 5세손이다. 아버지는 석성현감(石城縣監) 증영의정부사(贈領議政府事) 정흥인(鄭興仁)이며, 어머니는 진천의(陳千義)의 딸이다. 아들은 정현조(鄭顯祖)·정숭조(鄭崇祖)·정경조(鄭敬祖)·정상조(鄭尙祖)이다. 정현조는 세조의 딸인 의숙 공주(懿淑公主)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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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열지(悅之), 시호는 문경(文景). 아버지는 사헌집의(司憲執義)를 지낸 정희(鄭熙)이다. 정심(鄭深)과 정황(鄭況) 두 아들이 있다. 정초(鄭招)는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하고 1407년(태종 7) 중시(重試)에 합격하여 사헌집의와 판군자감(判軍資監), 승문원사(承文院事)를 차례로 역임하며 경연시강관(經筵侍講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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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공진·하진·하성 등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흔히 진양 하씨가 익숙하지만 근래에 들어 진주 하씨(晉州河氏)로 칭하는 경우가 많다. 진주의 토성이자 명문인 진양 하씨는 서로 간의 세계가 밝혀지지 않은 하공진(河拱辰)·하진(河珍)·하성(河誠) 세 계열이 이어져 오고 있다. 고려 초·중기 이전의 선계가 확인되고 있지 않다. 물론 진양 하씨가 시조를 달리한다는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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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연안 차씨 문중의 재실. 차운암 별묘(車雲巖別廟)의 주인공인 차운암(車雲巖)[1320~1398]의 이름은 차원부(車原頫)이고 자는 사평(思平)이며, 운암(雲巖)은 호이다.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해 공민왕 때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올랐으며, 이색(李穡)[1328~1396], 정몽주(鄭夢周)[1337~1392] 등과 교유하던 성리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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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관인(官人) 본관은 진양(晉陽). 아버지는 하승해(河承海)이고, 형은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1377~1438]이다. 하경리(河敬履)는 북방 수호에 헌신하는 형을 대신하여 진주를 중심으로 지곤남군사(知昆南郡事), 지사천현사(知泗川懸事) 등 아홉 고을의 수령직을 역임하면서 노모를 극진히 봉양하고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세종은 하경리 형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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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신흥리에 있는 자연 치유 마을. 하늘 땅번지 마을은 2012년 전국 최초로 자연 치유 마을로 지정되었다. 지리산 서남쪽 해발 900m의 칠성봉 중턱에 위치하여 주변의 자연 경관이 뛰어나고, 물·공기가 오염되지 않아 그 자체만으로도 치유·휴양의 적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늘 땅번지 마을이 위치한 하동군 악양면 신흥리에 있는 봉수제는 가야 시대부터 시작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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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월횡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진양 하씨 문중의 사당. 경현사(景賢祠)에는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1377~1438], 참의공(參議公) 하경리(河敬履), 강장공(剛莊公) 하한(河漢)[?~1460], 경절공(敬節公) 하숙보(河叔溥)[?~1501] 등 4명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양정공 하경복은 조선 초기 태종과 세종 양 대에 걸쳐 여진을 토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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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월횡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진양 하씨 문중의 사당. 경현사(景賢祠)에는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1377~1438], 참의공(參議公) 하경리(河敬履), 강장공(剛莊公) 하한(河漢)[?~1460], 경절공(敬節公) 하숙보(河叔溥)[?~1501] 등 4명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양정공 하경복은 조선 초기 태종과 세종 양 대에 걸쳐 여진을 토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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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 고하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읍성. 하동은 조선 후기 숙종 때까지는 현이라는 조그만 고을이었고, 관아가 있는 읍치(邑治)는 고현면[현재의 고전면] 고하리에 있었다. 현재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를 둘러싸고 있는 양경산(陽慶山)의 정상부를 따라 축조된 성곽이 하동읍성(河東邑城)으로, 주변의 산석을 이용하여 쌓아 올렸다. 조선 시대 태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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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무신. 하한(河漢)은 무용(武勇)이 뛰어나 조선 전기 세종부터 세조까지 네 임금을 섬기며 남방의 왜구와 북방의 여진을 토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433년(세종 15) 2월에 왕이 경회루에 회동하여 상호군(上護軍) 홍사석(洪師錫) 등 30여 명에게 대오를 갈라 과녁을 쏘도록 명하였다. 이때 하한이 화살을 제일 많이 맞혀 활을 하사 받았을 만큼 활솜씨도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