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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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에 있는 용궁 김씨 문중의 재실. 관어재(觀魚齋)는 용궁 김씨(龍宮金氏) 퇴장암(退藏庵) 김중원(金重源)을 추모하는 사당인 경의사(景義祠)의 경내에 있다. 김중원은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일등 공신에 책록되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1891년(고종 28)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증직되었으며, 조정으로부터 하사받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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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에 있는 용궁 김씨 문중의 재실. 관어재(觀魚齋)는 용궁 김씨(龍宮金氏) 퇴장암(退藏庵) 김중원(金重源)을 추모하는 사당인 경의사(景義祠)의 경내에 있다. 김중원은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일등 공신에 책록되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1891년(고종 28)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증직되었으며, 조정으로부터 하사받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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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용궁(龍宮). 임진왜란 때 수문장으로 진주성에서 순절하여 창렬사(彰烈祠)에 향사된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김준걸(金俊傑)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여생(金麗生)이며, 할아버지는 김명립(金明立)이다. 아버지는 청천재(淸川齋) 김상침(金尙琛)이며, 어머니는 윤효일(尹孝一)의 딸인 파평 윤씨(坡平 尹氏)이다. 정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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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에 있는 항일 투사 김홍권(金弘權)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하우(何尤) 김홍권[1892~1937]은 1908년 하동보통학교[하동향교 내 설치]에 재학 중이던 1909년 안희제, 이원식, 남형우와 함께 비밀 결사대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해 지하공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1 운동을 목도하고 자극을 받아 메이지 대학생 유경환과 함께 중국 상하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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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이경(而卿). 정평공(貞平公) 서균형(徐鈞衡)[?~1391)의 후손이다. 서균형은 고려 후기의 관리로 우정언(右正言)과 정당문학(政堂文學) 등을 거쳐 1390년(공양왕 2) 예문관대제학으로서 조준(趙浚)·이지(李至) 등과 함께 공양왕의 세자 왕석(王奭)의 사부로 활동했다. 1391년(공양왕 3) 사망하였다. 숙종 말년 소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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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행정 구역. 서양곡면(西良谷面)의 ‘양’자와 외횡보면(外橫甫面)의 ‘보’자를 따서 양보면(良甫面)이라 하였다. 통일 신라 시대 신문왕이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정비하였을 때 청주(菁州)[오늘의 진주]의 한다사군(韓多沙郡)에 속한 외횡보면·서양곡면 지역이었고, 경덕왕이 한다사군을 하동군으로 개칭함에 따라 하동군 외횡보면·서양곡면 지역이 되었다. 조선 말까지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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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존중을 시조로 하고 김태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용궁 김씨의 시조인 경숙공(景肅公) 김존중(金存中)은 고려조에 좌승선 태자소보(左丞宣太子小保)를 역임한 후 용궁군(龍宮君)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용궁(龍宮)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루었다.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1560~1593]은 1593년 진주성 싸움에서 수성장으로서 순절하여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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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운산촌(雲山村), 지내촌(池內村), 상명석촌(上鳴石村), 진암촌(陣岩村)이 양보면 운암리로 통합·개편되었다. 이때 상명석촌은 수척(水尺)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높이 140m 정도의 성지봉[일명 굴뫼]이 장암리와 운암리 경계를 이루고, 와우산이 통정리와 박달리 경계를 이루며, 서남단으로는 고전면 명교리 성평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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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인좌(李麟佐) 등의 소론을 중심으로 일어난 정권 탈취 사건. 경상남도 하동군의 여러 관리가 진압 공신으로 등재되었다. 조선 경종(景宗) 연간에 소론은 왕위 계승을 둘러싼 노론과의 대립에서 일단 승리하였으나, 노론이 지지한 영조(英祖)가 즉위하자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소론의 과격파들은 영조가 숙종(肅宗)의 아들이 아니며 경종의 죽음에 관계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영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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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 우성에 있는 용궁 김씨 동성 마을. 본디 우동(愚洞)이라 하였다가 주민들이 ‘어리석을 우(愚)’자를 꺼려 우동(牛洞)으로 고쳤고, ‘소 우(牛)’자 때문에 소가 사는 동네로 지칭되자 다시 우동(于洞)으로 고쳤다. 1988년 행정 구역상 시(市)의 동(洞)과 농어촌 마을의 동이 혼동되므로 농어촌 마을의 ‘동’을 모두 고치라는 지침에 따라 우성(牛城)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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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관어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중원(金重元)의 유물. 퇴장암(退藏庵) 김중원[1680~1750]은 임진왜란 때 수문장으로서 진주성에서 순절하여 창렬사(彰烈祠)에 향사된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의 후손이다. 1728년(영조 4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일등공신에 책록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는 않았다. 1891년(고종 28) 가선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