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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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증조할아버지는 봉산군수를 역임한 백암(白巖) 김대명(金大鳴)[1536~1603]이며, 할아버지는 김용익(金龍翼)이다. 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을 지낸 김충립(金忠立)이며, 어머니는 예조참판을 역임한 지족당(知足堂) 박명부(朴明榑)[1571~1639]의 딸인 밀양 박씨(密陽朴氏)다.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처는 익찬(翊贊)을 지낸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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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등촌리라는 명칭은 1914년에 등촌동(登村洞)에서 바뀐 이름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등촌동(等村洞)이 등촌리가 되었다. 등촌리의 청학골은 인접하는 매계리와 함께 조선시대에 청학동으로 지칭되던 곳이었다. 청학골에 거주하는 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밀양 박씨와 함양 박씨가 300-400년 전부터 취락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등촌리의 애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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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박영석·박영창·박첩동 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밀양 박씨는 박혁거세를 원조(元祖)로 하고, 경명왕(景明王)[917~924]의 첫째 아들 박언침(朴彦忱)[밀성대군]을 시조로 한 우리나라 고유한 성씨이다. 밀양 박씨는 고려 중기 이후 크고 작은 분파(分派)를 이루고 번성하여 많은 지파(支派)가 존재한다. 하동 지역의 밀양 박씨는 규정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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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여러 대(代)에 걸쳐 계속해서 살아오고 있는 성씨. 성씨의 연원은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다음 전국의 군·현의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 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이전 고대 국가에서 성씨는 왕족과 극히 일부 중앙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후삼국 시대 성주, 장군, 촌주 등의 신분을 지니면서 지방 세력을 대표하던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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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지내에 있는 경주 최씨 동성 마을. 마을 앞에 있는 오래된 못 안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므로 못안이라 하였다가 일제 강점기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못 지(池)’자와 ‘안 내(內)’자를 써서 지내라 하였다. 조선 중기 효자로 이름을 떨친 최윤추(崔允樞)의 아들 가선대부 최상순(崔相淳)이 곤양에서 옮겨 와 정착한 뒤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경주 최씨 집성촌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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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 있는 각각의 종중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세운 건물. 재실(齋室)은 종중(宗中)에서 조상의 묘제(墓祭)나 망제(望祭)를 지내기 위해서 세운 건물이다. 이를 재각(齋閣), 재궁(齋宮)이라고도 한다. 재실은 종중, 또는 문중의 공유 재산이며, 선산(先山)·종산(宗山)·위토(位土)·사당 근처에 위치한다. 재실은 묘제에 참석하는 후손들의 숙식과 제례 음식 등을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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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성능(性能), 호는 죽포(竹圃). 애일당(愛日堂) 정분(鄭苯)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정경모(鄭敬模)이고, 어머니는 밀양 박씨(密陽 朴氏)이다. 부인은 문종길(文宗吉)의 딸 남평 문씨(南平 文氏)이다. 정응권(鄭應權)은 1824년(순조 24) 3월에 태어났다. 어머니의 병환에 대소변의 맛을 보아 병의 차도를 확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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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 마을인 직전마을에서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북면 계산동(鷄山洞)·직전동(稷田洞)이 통합되어 북천면 직전리가 되었다. 옥산과 백마산에서 이어진 천황봉을 중심으로 분기한 나지막한 지맥들을 등지고, 앞으로는 계명산(鷄鳴山)·봉명산·이명산으로 둘러싸인 북천면 분지의 이명산 남동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봉명산과 이명산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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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에 속하는 법정리. 예전에 마을에 있는 용소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흥룡(興龍) 또는 흑룡(黑龍)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호암동(虎岩洞)·흥룡동·묵점동(墨店洞)이 통합되어 하동면 흥룡리가 되었고, 1938년 하동면이 하동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하동읍 흥룡리가 되었다. 먹점·흥룡·호암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다. 먹점은 임진왜란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