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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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백일·김기옥·김성율 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시조는 김알지(金閼智)이나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대에 이르러 세계를 이루기 시작한다. 경주 김씨는 경순왕의 셋째 아들 김명종(金鳴種)과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說)을 각각 영분공파와 은열공파의 파시조로 떠받들고 있다. 하동 지역의 경주 김씨는 경순왕의 넷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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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에 있는 김성행(金聖行)의 효행을 기리는 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에 살았던 효자 김성행은 부모를 극진히 섬기고, 나이 적은 계모 홍씨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효도를 다했다. 먼 곳의 농사일을 끝내고 밤중에 돌아올 때 호랑이가 길을 인도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1890년(고종 27) 고종이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제수하였다. 1925년 마을 주민들이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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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에 있는 임진왜란의 공신인 김언량(金彦良)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언량은 전라남도 고흥 출신으로 자는 국간(國幹)이고, 호는 모의재(慕義齋)이다. 1564년(명종 19) 무과에 급제한 무인(武人)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생 김언공과 함께 경상북도 영천 전투에 참가하였고, 정유재란 때는 이순신(李舜臣) 휘하에서 호남 의병을 이끌고 진주, 하동 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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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에 있는 임진왜란의 공신인 김언량(金彦良)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언량은 전라남도 고흥 출신으로 자는 국간(國幹)이고, 호는 모의재(慕義齋)이다. 1564년(명종 19) 무과에 급제한 무인(武人)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생 김언공과 함께 경상북도 영천 전투에 참가하였고, 정유재란 때는 이순신(李舜臣) 휘하에서 호남 의병을 이끌고 진주, 하동 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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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의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경주(慶州).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학여(金學汝)이다. 남편은 본관이 김해(金海)인 김경수(金京秀)로, 모암(慕庵) 김극일(金克一)[1382~1456]의 13세손이다. 시아버지는 김국욱(金國旭)이다. 김학여의 딸 경주 김씨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얌전하고 정숙했으며, 효성과 우애가 지극해 집안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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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고절리 고석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난파(蘭坡) 정공(鄭公) 부부의 효행비. 난파 정공 부부 효행비(蘭坡鄭公夫婦孝行碑)는 조선 후기 영조 때 효자인 통정대부(通政大夫) 난파 정공과 부인인 숙부인(淑夫人)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국도 19호선이 지나는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고절리 고석마을과 강선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비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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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고절리 고석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난파(蘭坡) 정공(鄭公) 부부의 효행비. 난파 정공 부부 효행비(蘭坡鄭公夫婦孝行碑)는 조선 후기 영조 때 효자인 통정대부(通政大夫) 난파 정공과 부인인 숙부인(淑夫人)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국도 19호선이 지나는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고절리 고석마을과 강선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비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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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 있는 조상의 신주를 모셔 놓은 집. 사당(祠堂)은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건물을 말한다. 민간의 사당은 가묘(家廟)라고도 하며, 왕실의 것은 종묘(宗廟)라고 부른다. 사당은 사우(祠宇)·사(祠)·사묘(祠廟) 등으로 대체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드물게 각(閣)이라 하여 격조를 높이려는 예도 있으며, 신주 대신 영정을 모시고 있을 경우 영당(影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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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 있는 조상의 신주를 모셔 놓은 집. 사당(祠堂)은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건물을 말한다. 민간의 사당은 가묘(家廟)라고도 하며, 왕실의 것은 종묘(宗廟)라고 부른다. 사당은 사우(祠宇)·사(祠)·사묘(祠廟) 등으로 대체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드물게 각(閣)이라 하여 격조를 높이려는 예도 있으며, 신주 대신 영정을 모시고 있을 경우 영당(影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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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여러 대(代)에 걸쳐 계속해서 살아오고 있는 성씨. 성씨의 연원은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다음 전국의 군·현의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 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이전 고대 국가에서 성씨는 왕족과 극히 일부 중앙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후삼국 시대 성주, 장군, 촌주 등의 신분을 지니면서 지방 세력을 대표하던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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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해 지극한 정성을 다한 부녀자. 홍근호가 지은 『열부정려기(烈婦旌閭記)』에 “부인의 행실은 죽음으로써 열(烈)을 나타내니, 타고난 천성(天性)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자로 ‘열(烈)’의 뜻은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열녀란 ‘세차고 사납고 굳세며 정열을 지키기 위하여 욕망을 불태워 없애고, 빛나고 밝고 아름다운 큰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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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 우성에 있는 용궁 김씨 동성 마을. 본디 우동(愚洞)이라 하였다가 주민들이 ‘어리석을 우(愚)’자를 꺼려 우동(牛洞)으로 고쳤고, ‘소 우(牛)’자 때문에 소가 사는 동네로 지칭되자 다시 우동(于洞)으로 고쳤다. 1988년 행정 구역상 시(市)의 동(洞)과 농어촌 마을의 동이 혼동되므로 농어촌 마을의 ‘동’을 모두 고치라는 지침에 따라 우성(牛城)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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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종여(宗汝). 5대조 정사석(鄭思錫)이 진주에서 하동으로 이거하였다. 고조할아버지는 정언장(鄭彦章)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정영(鄭榮)인데 모두 증직되었다. 할아버지는 정홍린(鄭弘麟)이다. 아버지는 정사옥(鄭賜玉)이며, 어머니는 김서량(金瑞良)의 딸인 경주 김씨(慶州 金氏)이다. 부인은 심상윤(沈尙胤)의 딸인 청송 심씨(靑松 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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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열녀이자 효부. 본관은 경주(慶州). 남편은 정인우(鄭仁佑)로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정인우 처 경주 김씨는 규수(閨秀)로서의 범절을 잘 지키며 다른 집에 살면서도 시부모에 대한 혼정신성(昏定晨省)을 다하였고, 특별한 음식을 얻으면 반드시 시부모에게 올렸다. 무엇보다 시부모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며느리였다. 남편이 25세에 병을 얻어 일어나지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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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있는 개항기 때 사당. 경천묘(敬天廟)는 1902년(고종 3) 지방 유림과 후손들이 발의하여 경순왕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원래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 검남산 아래 신기마을[새터]에 위치하였는데, 하동·사천 지구 농업용수 개발 사업을 위해 하동호를 건설하게 되면서 수몰 지역이 되어 1988년 11월 20일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대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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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있는 개항기 때 사당. 경천묘(敬天廟)는 1902년(고종 3) 지방 유림과 후손들이 발의하여 경순왕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원래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 검남산 아래 신기마을[새터]에 위치하였는데, 하동·사천 지구 농업용수 개발 사업을 위해 하동호를 건설하게 되면서 수몰 지역이 되어 1988년 11월 20일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대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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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경주 김씨 문중의 사당. 금남사(錦南祠)는 1904년(고종 41) 경천묘(敬天廟)를 조성한 이후 1918년 지방 유림들이 발의하여 고려조의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영정과 위패, 양촌(陽村) 권근(權近)[1352~1409]의 위패,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경천묘 경내에 건립한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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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에 있는 수령 약 700년의 보호수. 느티나무는 느릅나뭇과의 낙엽활엽교목으로 규목(槻木) 또는 귀목나무라고도하며, 야생에서는 산기슭이나 계곡 또는 민가 인근에 흙이 깊은 진흙땅에서 잘 자란다. 암수한그루로 4~5월에 꽃이 핀다. 암꽃은 새 가지 위쪽에 1~3개씩, 수꽃은 새 가지의 아래쪽에 모여 달리며 4~6개의 수술이 있다. 잎은 타원형으로 폭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