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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584
한자 敬天廟
영어의미역 Gyeongcheonmyo Tomb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686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성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02년연표보기
이전 시기/일시 1988년 11월 20일연표보기
문화재 지정 일시 1985년 11월 14일연표보기
원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 신기마을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686 지도보기
성격 사당
양식 팔작지붕 한옥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경주 김씨 문중
관리자 김우용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33호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있는 개항기 때 사당.

[변천]

경천묘(敬天廟)는 1902년(고종 3) 지방 유림과 후손들이 발의하여 경순왕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원래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 검남산 아래 신기마을[새터]에 위치하였는데, 하동·사천 지구 농업용수 개발 사업을 위해 하동호를 건설하게 되면서 수몰 지역이 되어 1988년 11월 20일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대유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과 수은 김충한, 양촌(陽村) 권근(權近)[1352~1409]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금남사(錦南祠)는, 원주 용화산 고자암 경천묘에서 성심으로 경순왕의 어진을 모신 이색과 권근의 성의에 보답하고 그 큰 뜻을 받들고자 1918년 지역 유림이 논의하여 건립하였다. 김충한은 고려 말엽의 충신으로, 조선 개국에 불복하고 두문동에 들어간 절의에 감복하여 배향하게 되었다.

[형태]

경천묘「하동 경천묘 경순왕 어진(河東敬天廟敬順王御眞)」이 봉안된 경모당(景慕堂)과 이색, 김충한, 권근의 위패가 봉안된 금남사, 그리고 관리사 및 출입문인 읍양문(揖讓門)과 홍살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천묘는 내삼문(內三門) 안쪽 담장으로 구획되어 있어 별도의 묘우 영역을 가진다. 경천묘를 묘우 영역만으로 지칭할 수도 있으나, 넓은 의미로는 전체를 가리킨다.

경천묘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한옥이다. 겹처마로 활주를 설치하였으며, 내·외부는 단청이 되어 있다. 일반 사가의 사당과 다르게 경순왕의 어진을 봉안한 사당으로 격식을 높였으며, 대들보의 용머리 장식과 봉황, 연꽃 장식 등이 위용을 보인다. 용은 지기(地氣)와 호법신의 상징이며, 또한 왕의 상징이기도 하다. 내부 어진을 봉안한 감실을 별도로 설치하였으며, 감실 장식에도 거북이, 연꽃 봉오리 등을 썼다. 영각 주변에는 경주 숭혜전(崇惠殿)에서 어진을 이곳으로 옮길 때 사용되었던 악기와 기물들이 보관되어 있다.

[현황]

2011년 현재 경천묘경주 김씨(慶州金氏) 문중 소유로 김우용이 관리하고 있다. 1985년 11월 14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33호로 지정되었다. 매년 경주 김씨 후손과 지방 유림에서 음력 2월 중정일(中丁日)과 8월 중정일에 향사를 받들었는데, 2000년대부터는 음력 2월 중정일에만 향사를 지내고 있다. 「하동 경천묘 경순왕 어진」은 현재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474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천묘 뒤편은 대나무밭으로 조성되어 아늑한 분위기이며, 경천묘 앞으로 하동호에서 내려오는 수로가 형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경천묘는 원래 쌍계사(雙磎寺)에 있던 경순왕 어진을 나라에 품신하여 받들고자 하였던 유학자들의 정성과 숨결이 담긴 곳이다. 당시 어려운 여건으로 경주 숭혜전으로 잠시 옮길 수밖에 없던 상항이었으나, 남도의 유생들이 함께 힘을 모아 지리산[1,915m] 기슭에 묘우를 세우고 나라에 건의함으로써 경순왕 어진을 경천묘에 봉안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