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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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학수(學叟), 호는 옥촌(玉邨)·두산(斗山). 남명(南冥) 조식(曺植)에게 수학한 만송(晩松) 강렴(姜濂)[1544~1606)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중은(重隱) 강석좌(姜錫佐)[1777~1853]이며, 아버지는 죽헌(竹軒) 강지준(姜之濬)이다. 어머니는 하시원(河始元)의 딸 진양 하씨(晉陽河氏)이고, 부인은 정충환(鄭忠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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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하홍도의 문집.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중원(重遠), 호는 겸재(謙齋)이다. 인조반정 이후 남명학파(南冥學派)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인조반정 이후 벼슬에 추천을 받았으나 사퇴하고 깊은 산속에 머물며 정자를 지어 영귀대(詠歸臺)라 하고 학문에 힘썼다. 남명(南冥) 조식(曺植) 사후에 남명학파가 약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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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안계리에 걸쳐 있는 산. 본디 이름은 가사산(佳士山)인데, 산의 형상이 아름다운 선비의 모습을 닮았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출신으로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학풍을 이어받은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가 이 산기슭에 모한재(慕寒齋)를 지어 제자들을 가르친 이후 사림산(士林山)이라고 불렀다. 사림산[573.8m]~흰덤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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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음력 12월 30일에 전해 내려오는 풍습. ‘섣달’은 한 해를 다 보내면서 새해의 설날을 맞이하기 위한 ‘서웃달’의 준말이며, ‘그믐’은 만월의 보름달이 날마다 줄어들어 눈썹같이 가늘게 되다가 이윽고 모두 소진하여 없어진다는 순 우리말 ‘그믈다’의 명사형이다. 따라서 섣달그믐은 한 해를 다 보내는 마지막 달의 마지막 날을 가리키는 것이다. 섣달그믐을 세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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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안계리(安溪里)라는 명칭은 안계마을에서 유래되었다. 예전에 안계(安鷄)라고 불렀는데, 풍수지리상 닭이 알[마을 앞 똥뫼]을 품고 있는 형국이므로 일컬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뒤에 안계(安溪)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종화면 안계동(安溪洞)이 가종면 안계리가 되었고, 1929년 옥종면 안계리로 통합·개편되었다. 서쪽으로 사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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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가종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에서 삼국 시대에 이르는 유물 산포지.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는 안계마을과 가종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이다.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원래 마을 이름을 ‘안계(安鷄)’라 하였는데, 후대에 ‘안계(安溪)’로 변하였다고 한다.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마을 안쪽에는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30호로 지정된 모한재(慕寒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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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안계마을에 있는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유물 산포지.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는 안계마을과 가종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이다.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원래 마을 이름을 ‘안계(安鷄)’라 하였는데, 후대에 ‘안계(安溪)’로 변하였다고 한다.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마을 안쪽에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30호로 지정된 모한재(慕寒齋)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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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 있는 수령 약 400년의 보호수. 은행나무는 흔히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중국이 원산지이며, 중국에서 불교와 유교가 전해져 올 때 함께 들어 왔다고 전해진다. 은행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암수 딴 몸이다. 높이 20~30m에 이르며, 5월경에 지름 3㎜ 내외의 아주 작은 꽃이 피므로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수꽃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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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지역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1. 16세기 하동군의 유학자를 출생 시기별로 살펴보면 우선 가장 앞선 시기의 인물로 지족당(知足堂) 조지서(趙之瑞)[1454~1504]를 들 수 있다. 조지서는 연산군(燕山君)이 세자로 있을 때 스승의 직책을 맡아 엄격하게 지도하다가 미움을 사게 되어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조지서는 연산군이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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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하동군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재령(載寧). 고조할아버지는 주화헌(輳龢軒) 이정모(李廷模)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소파(蘇坡) 이희곤(李熙坤)이며, 할아버지는 매당(梅堂) 이수안(李壽安)이다. 아버지는 정산(晶山) 이현덕(李鉉德)이며, 어머니는 하한철(河漢徹)의 딸인 진양 하씨(晉陽河氏)이다. 전처는 정석기(鄭奭基)의 딸인 진양 정씨(晉陽鄭氏)이며, 그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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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국장(國章), 호는 해사(海史). 고려조 통례문지후(通禮門祗侯) 정신(鄭侁)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정간(鄭幹)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의 문인인 허재(虛齋) 정지탁(鄭志倬)이고, 할아버지는 화헌(化軒) 정주윤(鄭周贇)이다. 친아버지는 반와(盤窩) 정택시(鄭宅蓍)이며, 친어머니는 성준(成準)의 딸인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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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주범(周範), 호는 간취당(澗翠堂). ‘간취당(澗翠堂)’이라는 당호는 오대(五代) 말 북송 초의 학자인 범질(范質)[911~964]이 지은 시에서 “더디게 자라는 시냇가의 소나무, 늦게까지 푸르른 빛 머금고 있네[遲遲澗畔松 鬱鬱含晩翠]”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오래도록 절개를 변치 않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9대조 낙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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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경상남도 하동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아직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규모가 작은 속읍(屬邑)이 적지 않게 존재하였다. 태종 대에는 이런 고을들을 두세 개씩 통합하여 수령을 파견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동현과 남해현은 이미 수령이 파견되어 있는 고을이었지만, 1414년(태종 14) 8월 두 고을을 합쳐 하남현(河南縣)으로 개칭하였다가 이듬해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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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종화리에 있던 조선 후기의 서원. 종천서원(宗川書院)은 본래 하동군 옥종면 종화리에 있었는데, 훼철된 후에 안계리 안계마을에 있는 모한재(慕寒齋)에 서원의 현판이 옮겨져 걸려 있다. 매년 음력 3월 10일 모한재에서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석채례(釋菜禮)를 지내며, 목판을 비롯하여 미수(眉叟) 허목(許穆)과 남구만(南九萬)의 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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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공진·하진·하성 등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흔히 진양 하씨가 익숙하지만 근래에 들어 진주 하씨(晉州河氏)로 칭하는 경우가 많다. 진주의 토성이자 명문인 진양 하씨는 서로 간의 세계가 밝혀지지 않은 하공진(河拱辰)·하진(河珍)·하성(河誠) 세 계열이 이어져 오고 있다. 고려 초·중기 이전의 선계가 확인되고 있지 않다. 물론 진양 하씨가 시조를 달리한다는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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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윤여(潤汝), 호는 월촌(月村).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1377~1438]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하진희(河晉熙)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하의일(河義一)이며, 할아버지는 하덕광(河德廣)이다. 아버지는 하석흥(河錫興)이고, 어머니는 강주우(姜周祐)의 딸 진양 강씨(晉陽姜氏)이다. 전처는 윤택귀(尹宅龜)의 딸 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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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하홍도(河弘度)를 기리는 사당. 모한재(慕寒齋)는 겸재(謙齋) 하홍도[1593~1666]가 학문을 갈고 닦으며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며,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을 비롯한 당대의 유학자들과 교류하던 곳이기도 하다. 겸재 하홍도는 벼슬을 단념하고 재야에서 공부하며 실천하였던 당대의 대표적인 유학자 중 한 사람이며,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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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진주에서 이름난 마을을 꼽을 때 “첫 번째가 안계(安溪)요, 두 번째가 원당(元堂)이요, 세 번째가 사월(沙月)이다.”라고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지금의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안계마을이 진주목(晉州牧)에 속했기 때문에 진주의 으뜸가는 명촌(名村)으로 일컬어졌던 것이다. 안계마을이 그런 명성을 얻은 것은 풍경이 수려하고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된 곳이기 때문이다. 『옥종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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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와 학맥에 관해 서술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간적 범위를 어디까지로 제한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유학자의 정의를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가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므로 위의 두 가지 범위와 기준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하동의 유학자를 규정하였다. 첫째, 시간적 범위는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은 조선의 건국으로부터 그 운명이 다하는 시점인 개항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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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자도(子導). 호는 담헌(澹軒). 낙와(樂窩) 하홍달(河弘達)[1603~1651]과 설창(雪牕) 하철(河澈)[1635~1704]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하재원(河在源)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하상호(河相灝)이며, 할아버지는 니곡(尼谷) 하응로(河應魯)[1848~1916]이다. 아버지는 사와(士窩) 하재도(河載圖)[1869~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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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학부(學夫), 호는 니곡(尼谷), 초명은 하성로(河性魯). 하홍도(河弘度)의 동생인 하홍달(河弘達)의 8세손이다. 고조할아버지 하달성(河達聖)은 호가 국헌(菊軒)인데, 성품이 강개하고 절개가 있어 종천서원의 치욕을 설욕했다. 증조할아버지는 하석봉(河錫鳳)이고, 할아버지는 하재원(河在源)이다. 아버지는 하상호(河相灝)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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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희문(羲文), 호는 사와(士窩). 사직(司直)을 지낸 하진(河珍)의 후손이다.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동생 낙와(樂窩) 하홍달(河弘達)[1603~1651]의 9세손이며, 설창(雪牕) 하철(河澈)[1635~1704]의 8세손이다. 5대조 국헌(菊軒) 하달성(河達聖)[1734~1791]은 ‘종천서원 원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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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학자. 하홍도(河弘度)의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중원(重遠), 호는 겸재(謙齋)로 진양 하씨이다. 진양 하씨의 시조는 고려 시대 사직(司直)을 지낸 하진(河珍)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9세를 내려와 하즙(河楫)이 현달하여 진주부원군에 봉해졌는데, 시호는 원정(元正)이다. 11대조는 하윤원(河允源)으로 역시 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10대조는 하자종(河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