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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279
한자 河東金鰲山烽燧臺
영어의미역 Beacon Mound in Geumosan Mountain, Had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 산100-3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정의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3년 1월 8일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 100-3 지도보기
성격 봉수대
양식 석축
크기(높이, 길이, 둘레) 200m[둘레]
면적 992㎡[300평]
소유자 사유
관리자 하동군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122호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봉수대.

[건립 경위]

건립과 관련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고려 시대인 1149년(의종 3)에 외적의 방어를 위하여 축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왜적의 침입이 잦았던 고려 말에 특히 큰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연대 봉수대에서 올리는 봉화를 정안봉 봉수를 거쳐 지리산[1,915m]에 있는 봉수대까지 전달한 것으로 추정한다. 『만기요람(萬機要覽)』 봉수 편에 의하면, 하동 금오산 봉수대(河東金鰲山烽燧臺)에 오장 2명과 군졸 10명이 2교대 하며 봉수대 부근에 거주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위치]

높이 849m의 금오산 8부 능선에 위치한다. 금오산은 남해안 한려 수도가 정면에 보이는 전략상 군사 요충지이다. 전라도의 순천 방답진 백야곶이 충청도를 거쳐 양주 화개산에 이르는 봉수대에 속하는 것으로 우측에는 여수, 좌측에는 통영이 바라보이는 중간 지점에 자리한다.

[형태]

992㎡[300평]에 달하는 하동 금오산 봉수대는 산성의 축성 형태가 양호하게 남아 있는 편이다. 둘레 200m 정도의 석축이 남아 있고, 봉수대가 있었던 곳에는 봉수군이 머물던 곳으로 보이는 석굴이 있다. 석굴은 높이 3m, 가로 3m, 둘레 2m로 그 위를 큰 돌로 막은 듯하다. 남아 있는 봉돈은 길이 2m, 폭 1.5m의 타원형으로 봉수대의 아래쪽에서 봉화할 수 있도록 하였다.

[현황]

2011년 현재 하동 금오산 봉수대는 개인 소유로 하동군이 관리하고 있다. 1993년 1월 8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주변에는 봉수군이 쓰던 맷돌이 있는데 옆 부분에 ‘순치 17년(1660)’이라는 음각이 새겨져 있다. 봉수군이 휴식하였던 곳으로 추정되는 석굴 등은 있으나, 석축한 봉수대는 붕괴되어 원래의 규모와 형태를 추정하기는 어렵다. 석굴은 현재 부처를 모신 불당으로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봉수대는 고려 시대에서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군사적 통신 수단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하동 금오산 봉수대의 역할은 남해안의 왜구 감시와 침입 상황 등을 조정에 보고하는 일이었으므로, 훼손된 봉수대를 복원하여 고려와 조선 시대의 통신 수단을 체험하고 교육하는 중심지로 만들 필요성이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