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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593
한자 河東北芳里守正堂
영어의미역 Sujeongdang Shrine in Bukbang-ri, Hadong
이칭/별칭 옥동서원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산촌마을 57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성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17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문화재 지정 일시 2007년 6월 28일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571 지도보기
성격 서원
양식 홑처마 팔작지붕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1.5칸
소유자 진양 정씨 문중
관리자 정태기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23호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산촌마을에 있는 일제 강점기 서원.

[개설]

하동 북방리 수정당(河東北芳里守正堂)옥산을 중심으로 동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옥동서원(玉東書院)이라고도 불렸다. 지역 유생들이 모여 공부를 하던 강학 공간이었으며, 사당인 존덕사(尊德祠)에는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1529~1590]과 석정(石亭) 정홍조(鄭弘祚)[1534~1590]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1910년(순조 4) 덕원서당(德源書堂)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과 수우당 최영경의 복향론이 거론될 때, 석정 정홍조가 최영경의 신원(伸寃)에 기여하였기에 함께 봉안하여야 한다는 진양 정씨(晉陽鄭氏) 문중의 의견을 사림에서 받아들인 결과이다.

최영경와 정홍조는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1546~1589]의 역모 사건에 연루된 기축옥사 관련 인물이다. 최영경남명 조식의 제자로서 옥중에서 “학문은 경의를 으뜸으로 하였고, 기상은 직방을 키우도다. 덕을 높이고 바른 것을 지켰으니, 백세가 되도록 더욱 빛나리로다[學宗敬義機養直方尊德守正百世彌彰]”라는 상향문(常享文)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임종하였다. 정홍조도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까지 절조(節操)와 강단(剛斷)으로 불의에 항거하였다.

[변천]

하동 북방리 수정당은 1917년 건립되어 지역 유생들의 강학 공간으로 이용되었다. 1970년대에 대문채인 유도문(由道門)을 보수하였으며, 1986년 4월 29일부터 9월 8일까지 경내 건축물인 수정당(守正堂), 존덕사, 유도문, 담장, 협문, 안내판 등을 보수하였다. 2007년 이후 강당인 수정당을 해체 보수하였다.

[형태]

서원의 일반적인 배치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를 보인다. 유도문, 수정당, 내삼문(內三門), 존덕사로 구성되어 있다. 담장은 보수하여 방형으로 정돈되어 있고, 대문채 앞으로 좁게 담을 쌓았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5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온돌방 2칸, 마루 2칸, 온돌방 1칸으로 구성된 비대칭형의 평면으로, 전면에 모두 퇴를 두었다. 구조는 3량의 소로수장 주두집으로 칠은 하지 않았다. 전면 창호의 하부는 머름을 낮게 하고 세로로 긴 창호로 구성된 조선 후기 남부 지방의 전형을 취하고 있다. 마루 중앙의 대공만 원형 대공으로 차별하고, 나머지는 판대공이다.

내삼문은 전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 민도리 구성으로, 약식의 머리초 단청을 칠하였고, 각 문 사이에 간벽을 심벽(心壁)으로 막았다. 존덕사는 높은 기단 위에 전면 3칸, 측면 1.5칸 규모로, 겹처마에 풍판이 있는 맞배집이다. 3량의 소로수장 주두집으로, 머리초 단청을 칠하였다. 퇴의 전면만 원형 초석에 원주로 구성하였다. 마당에 비하여 측면과 후면의 공간을 좁게 구성하고, 높은 담장을 둘렀다.

대문채인 유도문은 전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집으로, 남측면의 기둥은 장초석이다. 수정당 경내에는 진양 정씨 문중에서 관리하는 덕원서당과 경의문도 있다.

[현황]

2011년 현재 하동 북방리 수정당진양 정씨 문중 소유로 정태기가 관리하고 있다. 2007년 6월 28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23호로 지정되었으며, 매년 음력 3월 중정일(中丁日)에 향사를 지낸다.

[의의와 평가]

하동 북방리 수정당은 일제 강점기의 혼란 중에도 민족정신의 고취와 자주적 정신문화의 계승을 위해 건립된 근대적 전통 건축물이다. 수우당 최영경과 석정 정홍조의 위패를 배향하고 있어 불의에 항거한 선비상을 본받을 수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