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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공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077
한자 鄭孔采
영어음역 Jeong Gongcha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영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34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57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63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79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81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연표보기연표보기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89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2000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2008년연표보기
추모 시기/일시 2008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 지도보기
성격 현대 시인
성별
본관 하동
대표 경력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출신의 현대 시인.

[개설]

1963년 장편 서사시 「미 8군의 차」로 필화 사건을 경험한 정공채(鄭孔采)는 첫 시집 『정공채 시집 있습니까』를 펴내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격변기 한국 문단의 발전은 물론 고향 하동에 대한 남다른 사랑으로 후배 문인들의 등불이 되었다.

[활동 사항]

정공채는 1934년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이던 1957년 시인 박두진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종이 운다」, 「여진」, 「하늘과 아들」 등 세 편의 시로 등단하였다. 1963년 장편 서사시 「미 8군의 차」를 『현대문학』에 게재하였으나, 이 장시가 이듬해 일본의 『문학』지에 게재됨으로서 반공법 내지 ‘반미주의자’라는 혐의를 받아 당시의 중앙정보부로 연행되는 등 필화를 겪었다.

이 필화 사건으로 고통을 겪은 정공채는 잠시 ‘멈칫’거리던 시간을 벗어나 활발한 창작 활동과 사회 활동을 병행하게 된다. 당시의 진보계 신문이던 『민족일보』 기자와 『부산일보』 기자로 활동하다 MBC 프로듀서로 입사, 당시의 인기극이었던 「전설 따라 삼천리」를 집필, 청취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는다. 1979년에는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앞에 둔 첫 시집 『정공채 시집 있습니까』를 펴낸다. 이는 장시 「미 8군의 차」를 『현대문학』에 게재한 1963년에서 15년여의 시간이 흐른 후이니, 필화의 고통을 짐작하게 하는 세월이기도 하다.

이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면서 1981년 제2시집 『해점』에서부터 2000년 『새로운 우수』까지 문학사를 빛낼 작품들을 연이어 세상에 내놓게 된다. 그러나 말년의 쓸쓸함이 병으로 와 「고별사」란 짧은 종시를 남기고는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니, 그 해가 2008년 봄의 끝자락이었다.

[저술 및 작품]

1957년 『현대문학』에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등단작은 「종이 운다」 외 2편이다. 1979년 첫 시집 『정공채 시집 있습니까』를 펴내고, 1981년 『초한지』 3부작과 제2시집 『해점』을 출판하였다. 1986년 제3시집 『아리랑』, 수필집 『비에 젖읍시다』·『전혜린 평전』·『이솝 이야기』를 출간하였다. 1989년 제4시집 『사람 소리』, 1990년 제5시집 『땅에 글을 쓰다』, 2000년 『새로운 우수』를 펴냈다.

[상훈과 추모]

1959년 제5회 현대문학상, 1979년 제4회 시문학상, 1981년 제1회 한국문학협회상, 1998년 제8회 편운문학상, 2004년 제41회 한국문인협회 한국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한국현대시인협회장으로 장례식이 거행되었으며, 정선과 하동 등지에서 문학비를 세워 그를 추모하고 있다. 2008년 추모 시집 『정공채 시 전집』을 제3의문학사에서 발간하였다. 하동공원의 ‘시의 언덕’에 그의 시 「찬불이하동가」가 오가는 이의 시선을 끌고 있다. 그는 말년의 투병과 쓸쓸함을 그의 종시에 이렇게 적고 있다.

“세상 떠나면서 운다/ 그때 태어날 때와 지금 운다/ 눈물 소리 못 내고 한두 방울/ 이 빗방울에 말도 없이 고별사 안긴다/ 잘 있거라 내 사랑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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