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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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양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령 이씨의 재실. 경모재(景茅齋)는 대장사(大壯祠) 옆에 있다. 대장사에는 군자감주부 신산공(新山公) 이홍훈(李弘勳)을 정위에 주벽으로 모시고, 차위에 의금부도사 남계공(南溪公) 이번(李蕃)을, 말위에 군자감봉사 인풍헌(仁風軒) 이분(李賁)을 봉안해 놓았다. 이 세 명은 임진왜란 때 백의종군하던 이순신(李舜臣)[1545~1598]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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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양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령 이씨의 재실. 경모재(景茅齋)는 대장사(大壯祠) 옆에 있다. 대장사에는 군자감주부 신산공(新山公) 이홍훈(李弘勳)을 정위에 주벽으로 모시고, 차위에 의금부도사 남계공(南溪公) 이번(李蕃)을, 말위에 군자감봉사 인풍헌(仁風軒) 이분(李賁)을 봉안해 놓았다. 이 세 명은 임진왜란 때 백의종군하던 이순신(李舜臣)[1545~1598]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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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정기룡(鄭起龍) 장군의 사당. 경충사(景忠祠)는 충의공 정기룡[1562~1622]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경충사가 위치한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는 임진왜란 때 수많은 전공을 세운 정기룡이 나고 자란 곳이다. 정기룡은 60여 차례나 왜군을 물리친 명장으로, “바다에는 충무공 이순신, 육지에는 충의공 정기룡”이라 일컬어질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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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에 있는 임진왜란의 공신인 김언량(金彦良)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언량은 전라남도 고흥 출신으로 자는 국간(國幹)이고, 호는 모의재(慕義齋)이다. 1564년(명종 19) 무과에 급제한 무인(武人)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생 김언공과 함께 경상북도 영천 전투에 참가하였고, 정유재란 때는 이순신(李舜臣) 휘하에서 호남 의병을 이끌고 진주, 하동 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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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에 있는 임진왜란의 공신인 김언량(金彦良)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언량은 전라남도 고흥 출신으로 자는 국간(國幹)이고, 호는 모의재(慕義齋)이다. 1564년(명종 19) 무과에 급제한 무인(武人)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생 김언공과 함께 경상북도 영천 전투에 참가하였고, 정유재란 때는 이순신(李舜臣) 휘하에서 호남 의병을 이끌고 진주, 하동 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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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남쪽에 있는 바다. 섬이 많아 다도해를 이루며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들이 해안 가까이 뻗어 있어 크고 작은 만과 섬이 많고 해안 지형이 매우 복잡하다. 암석 해안이 발달한 곳도 있으나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해안은 이른바 리아스식 해안이 잘 나타나고 좋은 항구가 발달하였다. 해안선 길이는 섬을 제외하고도 2,251㎞에 이른다. 주요 섬으로는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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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와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를 잇는 다리. 경상남도 내륙과 남해도를 잇는 연육교라는 점에서 ‘남해대교(南海大橋)’로 명명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이며, 길이 660m, 총폭 9.6m, 유효폭 7.2m, 높이 32.3m이다. 경간수 3, 최대 경간폭은 404.m이다. 상부 구조는 현수교, 하부 구조는 라멘식 교각이다. 육지와 남해도를 연결하여 남해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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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와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를 잇는 다리. 경상남도 내륙과 남해도를 잇는 연육교라는 점에서 ‘남해대교(南海大橋)’로 명명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이며, 길이 660m, 총폭 9.6m, 유효폭 7.2m, 높이 32.3m이다. 경간수 3, 최대 경간폭은 404.m이다. 상부 구조는 현수교, 하부 구조는 라멘식 교각이다. 육지와 남해도를 연결하여 남해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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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쪽으로 이웃한 남해군 설천면과의 사이에 좁은 통로 모양의 바다 목이 있어 노들 또는 노량(露梁)이라 하였다. 『해동지도(海東地圖)』에 노량진(露梁津),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노량촌(露梁村),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노량동(露梁洞)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 곤양군(昆陽郡) 금양면(金陽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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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도리 대도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 제사를 지낼 때에 치는 굿. 대도마을 당산굿은 대도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무탈하게 1년을 보낼 수 있게 마을 지킴이에게 올리는 의례 때에 풍물놀이를 하며 노는 굿이다. 대도마을은 하동군 금남면 대도리에 있는 섬마을로 ‘띠섬’이라 불렸으며, 근래에 와서는 ‘큰섬’이라 불리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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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이 배출한 역사적 위인 중 한 명인 매헌(梅軒) 정기룡(鄭起龍)은 1562년(명종 17) 당시의 곤양현(昆陽縣) 중평(仲坪), 곧 지금의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서 태어나 1622년(광해군 14) 삼군통제사로서 통영의 진중에서 죽었다. 정기룡이 임진왜란 당시 세운 전공에 대해서는 흔히 해전의 이순신(李舜臣)에 견주어 ‘육상의 이순신’이었다고 일컬어질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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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 있는 조상의 신주를 모셔 놓은 집. 사당(祠堂)은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건물을 말한다. 민간의 사당은 가묘(家廟)라고도 하며, 왕실의 것은 종묘(宗廟)라고 부른다. 사당은 사우(祠宇)·사(祠)·사묘(祠廟) 등으로 대체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드물게 각(閣)이라 하여 격조를 높이려는 예도 있으며, 신주 대신 영정을 모시고 있을 경우 영당(影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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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 있는 조상의 신주를 모셔 놓은 집. 사당(祠堂)은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건물을 말한다. 민간의 사당은 가묘(家廟)라고도 하며, 왕실의 것은 종묘(宗廟)라고 부른다. 사당은 사우(祠宇)·사(祠)·사묘(祠廟) 등으로 대체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드물게 각(閣)이라 하여 격조를 높이려는 예도 있으며, 신주 대신 영정을 모시고 있을 경우 영당(影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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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고려 후기 한유한이 은거하였던 바위. 삽암(鈒巖)은 섬진강 가에 솟아 있는 하나의 바위이다. 우리말로 ‘꽂힌 바위’라 부르는데, 하동군 악양면 사람들은 ‘섯바구’ 또는 ‘선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예로부터 남해와 섬진강의 어선들이 정박하였고, 영호남을 연결하는 나룻배가 다니던 곳이었다. 삽암은 고려 말의 은자인 한유한(韓惟漢)이 난세를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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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대한불교 천태종 소속의 사찰. 금오산 너덜겅에 돌을 쌓아 만든 사찰로, 일명 ‘돌절’이라고 불리는 암자이다. 석굴암에서 내려다보면 한려수도(閑麗水道)의 아름다운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려 말 1149년(의종 3)에 하동 금오산 봉수대를 축조할 때 그 당시 봉화군(烽火軍)이 기거하는 곳으로 축성되었다고 전해진다. 이곳 봉수대는 충무공 이순신이 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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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서 섯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섯바위 이야기」는 한유한(韓惟漢)이 신선이 된 자리이며, 이순신(李舜臣)[1545~1598]이 백의종군(白衣從軍)하기 위해 임지로 가며 지나간 자리이고,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해 죽은 청춘 남녀의 사랑이 맺힌 바위이며, 왜구가 침입했을 때 바위를 굴려 적을 물리친 자리라는 지명유래담이다. ‘삽암(鍤巖)’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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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창녕 성씨(昌寧 成氏)의 하동 입향조 및 의사(義士). 성익(成翼)의 자는 운장(雲長)이다. 본래 함양(咸陽)에서 살다가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명석촌으로 옮겨 와서 하동에 세거하는 창녕 성씨 입향조가 되었다. 이후 후손들은 진암(陣巖)으로 옮겨 거주하였다. 통훈대부로서 훈련첨정의 관직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집안의 노비 수백 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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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지역은 남해와 섬진강을 끼고 있어 해상 교통이 편리할 뿐 아니라 경상도와 전라도의 접경지대로 오랜 옛날부터 지리적 요충지로서 주목 받았다. 이 때문에 일찍부터 도로와 시장이 발달하고 물산이 풍부했던 반면에 침략을 받기도 쉬운 이중적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고려 후기에는 왜구의 잦은 침략을, 조선 시대에는 임진왜란을 겪었다. 그러나 정유(鄭愈)나 정기룡(鄭起龍) 같은 이들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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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석성. 안계리 성지(安溪里城址)의 건립 경위를 알 수 있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임진왜란 때 축조하였다고 전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1596년(선조 29) 무렵으로 추정된다. 1596년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1547~1634]이 진주목사 나언정(羅彦廷)에게 정개산 정상부에 방책을 만들고 토성을 쌓도록 하였던 사실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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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양포리에 설치된 역참. 양포역(良浦驛)은 1462년(세조 8) 역로 정비 때 소촌도(召村道) 역승이 관할하는 16곳의 역 가운데 하나였다. 양포역은 곤양군에서 남해현까지 효율적인 교통과 통신망의 구축을 목적으로 지금의 하동군 진교면 양포리에 설치된 역참이었다. 『세조실록(世祖實錄)』에 따르면 1462년 8월 5일 병조의 건의로 각 도의 역참을 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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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유허지. 하동읍 해량촌에 오룡정(五龍亭)이라는 정자 터가 있다. 오룡정은 생원 손시(孫時)가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손시의 부친은 8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생원과 진사가 되어 당시 사람들이 팔룡(八龍)이라 불렀다. 그 후 팔룡의 한 사람인 손약의 다섯 아들이 또 생원과 진시가 되었기에 이를 기리어 오룡정이라 부르게 되었다. 오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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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무신.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상서(祥瑞)·서백(瑞伯), 호는 석계(石溪). 공산부원군(公山府院君) 문무공(文武公) 이천일(李天一)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공필(李公弼)로 통정대부 철산부사(通政大夫鐵山府使)를 지냈으며, 할아버지는 이교(李嶠)로 맹산· 익산· 화순 현감을 지내고 호조참의(戶曹參議)를 지냈다. 아버지는 이시준(李時俊)으로 통정대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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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李舜臣)[1545~1598]의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이다. 과거에 급제한 뒤 여러 번 승진하여 1591년(선조 24)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 사천포, 당포, 당항포, 한산도, 안골포, 부산포 등의 해전에서 연전연승을 거두고, 1593년(선조 26)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그러나 1597년(선조 30) 조정에서는 ‘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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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경상남도 하동군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왜적이 수십만이라는 많은 군사력으로 부산에 침입하여 이후 7년간 벌어진 전쟁으로, 여기에는 조선군 이외에 명나라 군대도 동원되어 동아시아의 국제적인 전쟁으로 전개되었다. 1. 진주성 싸움 1592년 4월 왜적은 수십만이라는 많은 군사력으로 부산에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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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와 종화리에 걸쳐 있는 산. 정개산(鼎蓋山)은 산마루 모양이 솥뚜껑[鼎蓋] 같아 붙인 이름으로 여겨진다. 우방산에서 양보역(良甫驛)까지 남북 방향으로 사장암질 암석이 분포하고 있으며, 이 암석 분포대를 따라 북서쪽으로 두방산·소두방산이, 남쪽으로 사림산·월봉산·옥산 등이 이어져 있다. 이들 산줄기들은 다양한 방향의 구조선에 의해 곡지(谷地)가 발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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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종화리에 있는 조선 후기 토성. 정개산성(鼎蓋山城)은 1596년(선조 29) 체찰사(体察使) 이원익(李元翼)[1547~1634]의 명으로, 진주목사 나정언(羅廷彦)이 왜구들의 침입을 감시하고 방지하기 위하여 정개산[520m] 꼭대기에 방책을 만들고 돌과 흙을 섞어서 쌓은 토성이다. 주위의 산세가 험준하여 요새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었으나, 완성되기 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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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1894년까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정수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정수역(正守驛)은 고려 시대 산남도(山南道) 관할의 28개 역 가운데 하나로 설치되었다. 설치 목적은 중앙과 진주목(晉州牧)[하동군] 간의 효율적인 관계망의 구축을 위해서 요로(要路)인 지금의 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영당마을에 두었던 교통과 통신을 위한 시설이었다. 『고려사(高麗史)』 권82, 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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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 중촌에 있는 재령 이씨 동성 마을. 청룡리의 중심 마을이므로 중촌이라 하였고, 산등성이인 청룡등(靑龍嶝) 안에 터를 잡았으므로 청룡안 또는 청양(靑陽)이라고도 하였다. 청룡리에는 구름몰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훗날 한자로 지명을 고칠 때 운곡(雲谷)이라 하였고, 조선 시대 마을 가운데로 굴천(堀川)이 흘러 굴촌이라고도 하였다. 또 구름을 타고 용이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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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 중촌에 있는 재령 이씨 동성 마을. 청룡리의 중심 마을이므로 중촌이라 하였고, 산등성이인 청룡등(靑龍嶝) 안에 터를 잡았으므로 청룡안 또는 청양(靑陽)이라고도 하였다. 청룡리에는 구름몰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훗날 한자로 지명을 고칠 때 운곡(雲谷)이라 하였고, 조선 시대 마을 가운데로 굴천(堀川)이 흘러 굴촌이라고도 하였다. 또 구름을 타고 용이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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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정기룡(鄭起龍)의 유품. 정기룡[1562~1622]은 곤양에서 태어났으며, 초명은 정무수(鄭茂壽)였으나 1586년(선조 19) 무과에 급제한 뒤 왕명에 따라 이름을 정기룡으로 바꾸었다. 임진왜란 때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정기룡’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육전에서 큰 전공을 세웠고, 임진왜란 후 1601년(선조 34)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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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포구 80리’는 그 명칭이 어디에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하동포구 80리를 하동포구의 문학적[시적]·정서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동포구 80리라는 명칭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오르내리게 된 것은 1930년대 발표된 문학 작품의 영향이 크고, 이후 1970년대에 인기를 얻었던 몇몇 대중가요가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하동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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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마을은 하동군의 유일한 유인도로서 행정 구역으로는 하동군 금남면 대도리에 속해 있다. 조선 시대에는 곤양군(昆陽郡) 서면(西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통폐합 때 대도동(大島洞)을 대도리라 해서 하동군 남면에 속하게 하였다. 1933년 남면이 금양면을 편입하여 금남면으로 되면서 금남면 대도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도마을 부근 바다에서는 가두리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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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예부터 한 지방의 명승, 곧 아름다운 경치를 묶어서 ‘팔경’(八景) 또는 ‘십경(十景)’이라 부르는 전통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경치가 좋다고 해도 단번에 ‘팔경’이니 ‘십경’이니 하는 명칭이 붙지는 않는다. 이는 오랜 세월 문화적 평가가 누적되고 사람들이 그 의미에 공감하면서 자연스레 붙여지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팔경이란 명칭은 원래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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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남해군·사천시·통영시·거제시, 전라남도 여수시 등지에 걸쳐 있는 해상 및 도서 국립공원. 한려해상국립공원은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도에서 전라남도 여수시에 이르는 한려 수도를 중심으로 하는 수역과 이에 남해도, 거제도 등의 남부 해안 일부를 추가하여 지정한 국립공원이다. 경상남도 거제시 지심도에서 전라남도 여수시 오동도에 이르는 해안 및 도서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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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던 하동도호부의 삼문인 해산루의 기문(記文). 1744년(영조 20) 하동부사로 부임한 전천상(田天祥)[1705~1751]은 자가 경문(景文),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1726년(영조 2) 무과에 급제하였다. 전천상이 하동으로 부임해 왔을 때, 하동도호부는 제대로 된 청사(廳舍)를 갖추지 못해 장소를 옮겨가며 공무를 집행하고 있었으며, 관리들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