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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254
한자 河南縣
영어의미역 Hanam-hyeon Administrative District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해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1414년연표보기
폐지 시기/일시 1415년연표보기

[정의]

1414~1415년 경상남도 하동군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 말 왜구의 침입으로 남해나 거제 같은 곳은 주민이 살 수가 없어 본거지를 떠나 살게 되면서 고을로서의 면모를 유지할 수 없었다. 당시 남해 주민들은 진주의 대야천부곡(大也川部曲)에 깃들어 살게 되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남해가 피폐해지자 태종 대에 일시적으로 하동과 남해를 하나의 현으로 통합하여 고을 이름을 하남현(河南縣)으로 고쳤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곤남군(昆南郡)조에 “남해현은 본디 바다 가운데에 있는 섬인데 …… 공민왕 무술년에 왜적으로 땅을 잃고 진주 임내의 대야천 부곡에 깃들어 살았다. 본조 태종 갑오년에 하동과 합하여 하남현으로 일컫다가, 을미년에 다시 하동현을 설치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하동현 연혁조에 “[하동현은] 본래 신라 다사군(多沙郡)인데 경덕왕이 지금 명칭으로 고쳤다. 고려 현종이 진주에 예속시켰고 명종이 감무를 두었다. 본조 태종 때에 남해현을 합쳐서 하남현이라 부르고, 현령을 두었다가 뒤에 다시 나누어 현감으로 만들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변천]

하동현현종조에 진주의 속현으로 있다가 명종조에 감무가 파견되어 다스리는 고을로 발전하였고, 태종조에 남해의 주민이 본거지를 떠나 진주 임내의 대야천부곡에 살게 되면서 남해현과 합쳐져 하남현으로 일컬어졌다. 그러나 하동과 남해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각기 연혁을 달리하는 고을로 발전하였으므로 남해가 점차 복구되면서 하남현은 설치된 지 1년 뒤에 분리되었다.

이후 하동과 남해는 이전의 고을 명칭을 회복하여 각각 독자적인 고을로 발전하였다. 이때 남해현은 진주 임내의 금양부곡(金陽部曲)남해에 붙이면서 한때 해양현(海陽縣)으로 일컬어지기도 하였으나, 이후 금양이 원래대로 진주로 이속되면서 다시 남해현이라는 원래의 고을 이름을 되찾았다.

[의의와 평가]

고려 말 왜구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남해안 일대의 여러 고을은 피해가 혹심하였다. 특히 남해나 거제 같은 곳은 사람이 살 수 없어 정부가 주민을 인근 고을로 이주시켜 생활하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하였다. 이 같은 배경 속에서 고려조 이래 진주의 속현이던 하동과 현령이 다스리는 고을이던 남해를 합쳐 하나의 고을로 통합하여 하남현으로 불렀던 시기가 일시적으로 존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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