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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588
한자 斗芳影堂
영어의미역 Dubangyeongdang Shrin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100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동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77년연표보기
훼철|철거 시기/일시 1868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889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927년 8월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1001 지도보기
성격 사당
양식 겹처마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1.5칸
소유자 진주 강씨 은열공파 대종회
관리자 진주 강씨 은열공파 대종회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두방재(斗芳齋) 경내에 있는 강민첨(姜民瞻)의 진영 봉안소.

[개설]

두방영당(斗芳影堂)은 진주 강씨(晉州姜氏) 은열공파(殷烈公派) 1대인 고려 병부상서 태자태사(兵部尙書太子太師) 은열공 강민첨[?~1021]의 진영과 신위를 봉안한 곳이다. 강민첨은 진주에서 출생하여 목종 때 급제한 뒤, 현종 때 거란의 10만 대군이 침입하자 강감찬(姜邯贊)[948~1031]과 함께 귀주대첩(龜州大捷)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러한 공으로 공신이 되고 재상으로 승진하였다. 사후 태자태부(太子太傅)에 추증되고 문종 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공신각에 들어가게 되었다.

[변천]

강민첨은 진주 고을의 서편 우방산에 세사(世祠)를 세워 선대의 진영을 봉안하고 글을 읽었다. 1021년(현종 12) 강민첨이 사망하자 평소 독서를 하던 우방산에 영당을 창건해 강민첨의 상을 봉안하고 위전(位田)을 두었다. 1352년(공민왕 1) 9세손 충정공(忠貞公) 사공(司空)이 예를 좋아하여 우방사(牛芳祠)를 중수하고 이어 세사(歲祀)를 지냈다.

조선 태종두방산우방산 두 산의 땅을 사패지(賜牌地)로 내려 주었으며, 1777년(정조 1) 4월 우방사에 있던 영정을 두방산으로 옮겨 두방영당을 건립하였다. 이때 재사(齋舍)를 두방재(斗芳齋)라 하였으며 문은 택류문(澤流門)이라 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89년(고종 26) 두방영당두방산의 옛터에 다시 세웠다. 1927년 8월 다시 중수하였는데, 설악 강수환이 영당 상량문을 지었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의 겹처마지붕 건물이다. 기단 위에 원형의 높은 주춧돌을 놓고 둥근 기둥을 세운 3량가(樑架) 2익공(翼工)의 집이다.

[현황]

2011년 현재 두방영당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진주 강씨 은열공파 대종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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