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594
한자 河東景賢堂
영어의미역 Gyeongheondang Shrine in Seowhang-ri, Hadong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 954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성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6년 4월 6일연표보기 - 하동 경현당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95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하동 경현당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건립 시기/일시 1903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960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7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 954 지도보기
성격 서원
양식 한옥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1.5칸
소유자 전주 최씨 죽당공파 문중[최경병, 최제종, 최형문]
관리자 최규필|최낙일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 인천서원(仁川書院) 내에 있는 강학 공간.

[위치]

하동 경현당(河東景賢堂)하동군 북천면 서황리 중촌마을에 위치한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하여 주변 경관이 매우 좋으며, 뒤편에는 대나무 밭이 조성되어 있다.

[변천]

1719년(숙종 45) 하동군 북천면의 남포동에 죽당(竹塘) 최탁(崔濯)[1598~1645]을 기리기 위해 주담(珠潭) 김성운(金聖運)을 중심으로 인천서원(仁川書院)을 건립하였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죽당 최탁의 9세손이며 조선 말의 서부 경상남도 일대의 유명한 한학자인 수당(修堂) 최경병(崔瓊秉)모산(茅山) 최기필(崔琦弼)의 후손 및 후학자들이 경현당유계를 조직하여 1903년(고종 40) 하동 경현당을 건립하고[崇禎五癸卯春三月上十日乙未卯時上樑], 인천서원 현판을 옮겨 걸었다.

하동 경현당은 최탁이 태어난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에 건립되었으며, 유생들의 강학소로 운영하여 최초 당장을 수당 최경병으로 선정하였다. 하동 경현당을 통해 교육활동을 계속하던 인천서원은 광복 후 복원되어 1960년 사당인 경인사를 새로 지었다. 죽당 최탁의 선조와 삼촌, 제자를 모셔야 한다는 유림 및 후손들의 결의로 정재(靜齋) 최득경(崔得涇), 모산 최기필, 죽당 최탁, 주담 김성운 등 4위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2006년 7월 10일 홍수 피해로 하동 경현당의 좌측 부섭지붕이 붕괴되어, 그해 9월부터 피해 복구에 들어가 이듬해에 해체 보수하였다.

[형태]

인천서원(仁川書院)은 4채로 이루어졌으며,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서원 구성을 취하고 있다. 전면에 3칸의 문간채와 강학 공간인 경현당이 있고, 직선 축의 후면에는 3칸의 내삼문(內三門)과 사당인 경인사가 후묘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경현당은 정면 5칸, 측면 1.5칸 규모의 건물로서, 정면 양측에 퇴가 있다. 구성상 5칸 맞배집의 양 옆에 전면 반 칸씩의 공간을 증축하여 전면과 좌우측 툇집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 좌우측의 퇴에는 부섭지붕이 구성되어 있다. 평면은 전면에 퇴를 두고 중앙 칸과 그 동측의 칸으로 2칸의 마루를 마련하였고, 양측에 각 2칸씩의 온돌방을 두었다. 가구는 소로수장한 주두집에 3량 구조로 구성하였고, 마루 중앙의 월간보 위에는 복원반형의 대공을 두었다.

경인사는 전면에 퇴를 두고 후면에 3칸 1실의 사당을 둔 묘우로서, 맞배집 양측 면에 박공 풍판이 달려 있다. 공포는 이익공(二翼工)에 봉두(鳳頭)를 얹은 화려한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연화머리초의 모루단청을 하였다.

[현황]

하동 경현당은 2011년 현재 전주 최씨 문중[최경병, 최제종, 최형문] 소유로, 최규필과 최낙일이 관리하고 있다. 2006년 4월 6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9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매년 음력 3월 21일에 향사를 지낸다.

하동 경현당에는 교지 3건 및 분재기 1건, 죽당 최탁의 실기 및 목판 일부, 주담 김성운의 문집인 『주담집(珠潭集)』이 있다. 교지는 죽당 최탁의 무과 급제 및 광양현감 임명,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소현세자봉림대군을 모시고 갈 때 받은 임명 교지이다. 분재기는 후손에게 재산을 분배한 문서로, 조선 후기의 상속 관행 등 생활 문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의의와 평가]

하동 경현당은 형태면에서 대청이 중앙 정면에 있지 않고, 지붕도 일반적인 팔작지붕 형태가 아니라 맞배지붕의 측면에 부섭지붕을 달아 변형된 지붕 형태를 이루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근대 한옥의 특성을 보여 주는 것으로서, 하동 경현당을 통하여 평면의 비대칭 구성 및 구부재의 재사용 등과 함께 서원의 시대적 특성의 한 면을 엿볼 수 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