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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 영당 고운 선생 영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748
한자 雲岩影堂孤雲先生影幀
영어의미역 Portrait of Master Goun in Unamyeongdang Shrin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912-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용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9년 12월 29일연표보기
현 소장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912-1 지도보기
원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 지도보기
성격 초상화
소유자 경주 최씨 문중
관리자 경주 최씨 문중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187호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운암영당에 있는 최치원의 초상화.

[개설]

최치원(崔致遠)[857~?]은 통일신라 후기의 학자이자 문장가였다. 6두품 출신의 지식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868년(경문왕 8) 당나라에 유학하여 당의 빈공과에 급제하였으며, 황소(黃巢)의 난 때 「토황소격문」을 지어 문장으로 크게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그러나 귀국 후 신라의 현실에 좌절한 나머지 해인사에 은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운암 영당 고운 선생 영정」은 처음에 쌍계사에서 보존하다가 1825년(순조 25) 화개의 금천사(琴川祠)로 옮겼고,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하동향교로 옮겨 한동안 보존하였다. 그 후 광천영당을 거쳐 1924년 운암영당으로 옮겨서 보존하고 있다. 1979년 12월 29일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187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운암 영당 고운 선생 영정」은 주인공이 검은 사모에 관복을 입고 두 손을 맞잡은 채 높고 긴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 좌상이다. 주인공은 풍만하게 표현되었으며, 가로 77.5㎝, 세로 108㎝ 크기이다. 가슴에 있는 흉배는 화려하게 표현한 반면 허리띠의 문양은 단순하다. 비단 바탕에 화려한 채색을 하였으며, 화폭 윗부분에 구름과 대나무를 배경으로 하고, 아래쪽 배경에는 탁자 위로 문방구를 표현해 놓았다. 이는 사대부의 엄숙함과 유학자의 풍모를 드러내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특징]

「운암 영당 고운 선생 영정」은 사찰에서 조성한 문신상(文臣像)을 그려 넣은 것인데, 비단 바탕에 당채(唐彩)로 되어 있다. 그림의 책상 문방과 구름에 둘러싸인 대나무가 그려져 있으며, 보존 상태가 좋다.

[의의와 평가]

최치원을 일러 문창후(文昌候)라고 하듯이 여말선초 이후 유자(儒者)들의 최치원에 대한 존경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최치원의 초상화로 알려져 있는 「운암 영당 고운 선생 영정」은 지역의 유자들에게 존경의 대상물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역사 인물의 초상화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경주 최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