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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531
한자 智異山雙磎寺
영어의미역 Ssanggyesa Temple in Jirisan Mountain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운수리 208]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무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724년연표보기
중수|중창 시기/일시 1466년연표보기
중수|중창 시기/일시 1506년연표보기
중수|중창 시기/일시 1543년연표보기
중수|중창 시기/일시 1549년연표보기
중수|중창 시기/일시 1675년연표보기
중수|중창 시기/일시 1695년연표보기
중수|중창 시기/일시 1735년연표보기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64년연표보기
중수|중창 시기/일시 1975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지도보기
성격 사찰
창건자 삼법 화상
전화 055-883-1901
홈페이지 지리산 쌍계사(http://www.ssanggyesa.net)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

[개설]

신라 시대 의상(義湘) 대사의 제자인 승려 삼법(三法)대비(大悲)·선백과 함께 당 육조(六祖) 혜능(慧能)의 정상(頂相)[머리뼈]을 모시고 신라로 돌아와서, 봉안한 뒤 조그만 암자를 세우고 정진하다가 입적(入寂)하였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폐사되었는데, 그 뒤에 진감 선사(眞鑑國師) 혜소(慧昭)가 이 장소를 찾아서 절을 세운 것이 지금의 지리산 쌍계사 금당(金堂)이다.

[건립 경위 및 변천]

1. 육조의 정상을 모시고 온 삼법 화상

삼법 화상의 출생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661년(문무왕 1)경에 태어나 739년(효성왕 3)에 입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676년(문무왕 16)에 의상 대사의 제자가 되어 구족계를 받았으며, 너무도 총명하여 경장(經藏)과 율장(律藏)을 통달하였다. 당시 당나라에는 육조 혜능이 크게 선풍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혜능을 찾아가서 도(道)를 묻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714년(성덕왕 13)에 혜능이 입적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애통해 하였다.

6년이 지난 뒤 삼법 화상은 금마[지금의 익산] 미륵사의 규창이 당에서 가지고 온 혜능 대사의 『법보단경(法寶壇經)』을 보게 되었다. 그 내용 가운데 “내가 입적한 뒤 5~6년 지나서 한 사람이 내 머리를 가지러 올 것이다.”라는 대목을 읽다가 삼법은 내가 마땅히 힘써 도모하여 우리나라에 만대의 복밭을 지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이에 김유신의 부인이었던 법정(法淨) 비구니에게 금 2만 냥을 빌려 상선을 타고 당으로 가서 홍주의 개원사(開元寺)에 머물렀다. 그곳에는 신라 백율사의 승려 대비와 선백이 있었는데, 두 사람이 친하여 의논하던 중 이 절에 기거하던 장정만에게 금 2만 냥을 주고 육조 혜능의 정상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 뒤 귀국하여 법정 비구니가 머무는 영묘사(靈妙寺)에서 날마다 육조 혜능의 정상에 공양을 올렸다. 그러던 중 꿈에 한 승려가 나타나서 자신이 인연한 터가 지리산 아래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이니 그곳으로 자리를 옮기도록 명하였다. 이에 삼법 화상대비와 함께 눈 덮인 지리산을 헤매던 중 12월인데도 따뜻하기가 봄과 같고 칡꽃이 만발한 곳을 발견하였다. 이곳에 돌을 쪼아서 함을 만들고 육조 혜능의 정상을 깊이 봉안한 뒤 조그마한 암자를 세웠으며, 선정(禪定)을 닦기에 힘썼다. 18년 동안 이곳에서 수행하다가 739년 7월 12일 목욕하고 『법보단경』을 염송하다가 앉아서 입적하였다.

이와 같이 지리산 쌍계사의 창건은 삼법 화상육조 혜능의 정상을 안치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때는 난야(蘭若)[절]라는 조그만 수행처에 불과하였으며, 실제의 가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신라 말 진감 선사 혜소에 의해서이다.

2. 진감 선사 혜소지리산 쌍계사 창건

쌍계사 대웅전 앞마당 가운데 서 있는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에 따르면, 진감 선사 혜소는 전주 금마(金馬)[지금의 익산] 사람으로 774년(혜공왕 10)에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최창원으로 재가신도이면서 출가한 스님과 같이 수행하였다. 어머니 고씨가 어느 날 잠깐 낮잠이 들었는데 꿈에 한 인도 승려가 찾아와 “내가 어머니의 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고는 유리 항아리를 주고 갔으며, 그 후 잉태하여 태어났다고 한다.

진감 선사는 태어나면서 울지 않았으며, 7~8세가 되어 아이들과 놀 때는 언제나 나뭇잎을 살라 향을 삼고 꽃을 따서 공양을 올리는가 하면, 때로는 서쪽을 향해 꿇어 앉아 해가 저물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처럼 어릴 때부터 불교에 관심이 많았으나, 효성이 지극하여 생선 장수를 하며 가족을 봉양하는 데 힘썼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31세 되던 804년(애장왕 5)에 세공사(歲貢使)에게 청하여 뱃사공이 되어서 당으로 갔다. 창주로 가서 신감(神鑑) 선사를 만나니, 신감 선사는 “반갑다, 이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기쁘게 다시 만났구나.”라고 하면서 그를 맞아 주었다. 다시 37세에 숭산(崇山) 소림사(少林寺)의 유리 계단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으니, 어머니가 꾼 꿈과 일치하였다.

계(戒)를 받고 나서 경전을 배웠는데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았을 정도로 영리하였다. 그때 우리나라에서 건너온 도의 선사(道義禪師)[가지산문 제1조]를 알게 되었으며, 821년(헌덕왕 13) 도의 선사가 귀국한 뒤에도 진감 선사는 종남산에 들어가서 소나무 열매를 먹으며 3년간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를 닦았다. 그 후 3년 동안 저자 거리에 나와 짚신을 삼아서 널리 보시하다가 57세가 된 830년(흥덕왕 5)에 드디어 귀국하니 흥덕왕이 매우 기뻐하였다.

진감 선사는 귀국하여 처음에 상주 노악산(露岳山) 장백사(長栢寺)에 주석하였는데, 찾아오는 이가 구름같이 많은 터라 이곳을 떠나 좋은 경계를 찾아 남령의 강주(康州) 지리산에 이르렀다. 지금의 국사암 터에 자리 잡고, 선문(禪門)을 열어 선을 전파하면서 마땅한 가람 터를 찾던 중 어느 날 호랑이가 길을 인도하여 평탄한 곳으로 나아가니, 이곳이 바로 삼법 화상이 남긴 절터였다. 이 터에 절을 짓고 대나무 통으로 물을 끌어와 집 둘레 사방에 물을 대어 ‘옥천사(玉泉寺)’라 이름 붙였으며, 곧 쌍계사의 중창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민애왕이 왕의 자리에 올라 불교에 깊이 의탁하였는데, 진감 선사를 친견하고자 여러 차례 청하였으나 “부지런히 선정(禪定)에 힘쓰는 것이 본분”이라며 끝내 나가지 않았다. 육조 혜능의 영당을 세우고 채색 단청하여 널리 중생 제도에 이바지하였다. 850년(문성왕 12) 정월 9일 이른 아침, 문인들에게 “만법이 모두 공(空)하니 내가 장차 가려고 한다. 한마음으로 근본을 삼아 힘써 노력하라. 탑을 만들어 육체를 보존하지 말고 명을 새겨 행적을 기록하지도 말라.”는 말을 마치고 앉아서 입적하였다.

이후 헌강왕이 즉위하여 옥천사에 와 보니 이웃 산에도 옥천사라는 절이 있으므로 백성들이 미혹할까 봐 염려하였다. 그러다가 그 절터를 보니 동구에 두 시냇물이 마주 대하고 있어 ‘쌍계사’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이때부터 진감선사가 창건한 옥천사는 쌍계사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3. 지리산 쌍계사 중수와 문화재 등록

1466년(세조 12)에 선비 대사의 팔상전(八相殿) 중수, 1506년(중종 1) 진주목사 한사개의 중수에 이어 1543년(중종 38) 운수승 혜수(慧修)가 중창하여 대웅전과 금당과 동서방장(東西方丈)을 지어 낙성하였다. 1549년(명종 4) 서산 대사(西山大師)의 중수가 이어졌으며, 1628(인조 6)~1644년(인조 22)에 벽암 각성(碧巖覺性), 소요 태능(逍遙太能) 등이 지금의 자리에 별도로 중창하였다.

그 뒤 1675년(숙종 1)에 승려 인계가, 1695년(숙종 21)에 승려 백암(栢庵) 성총(性聰)이, 1735년(영조 11년)에 승려 법훈(法熏)이 중수하였으며, 1864년(고종 1) 봄에 승려 담월(澹月)과 용담(龍潭)의 원력(願力)으로 육조 정상 탑전의 칠층 보탑을 건립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전각이나 불상 등의 개·보수가 계속되었고, 1975년을 전후하여 고산혜원(杲山慧元)에 의해 현재의 모든 중수가 이루어졌다.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1호로 등록되었다.

[활동 사항]

지리산 쌍계사는 조계종 25개 본사 중 하나로 제 13교구 본사이다.경상남도 하동, 사천, 고성, 거제, 통영 등 서부 경남 일원의 60여 사찰이 소속되어 있다. 강원(講院)에는 30명의 학인(學人)이 수업을 하고 있으며, 선원(禪院)에는 안거 철마다 17명 가량의 선승(禪僧)이 정진하고 있다. 주지는 경담 성조이다.

지리산 쌍계사에서는 대한불교조계종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이신 조실(祖室)[사찰의 최고 어른] 고산혜원 대종사를 모시고 매월 정기 보름 법회를 열고 있으며, 법회를 전후로 49재, 천도재 등의 기도 의식이 행해지고 있다. 또 매년 3월 5일~7일까지 대종사와 함께 보살계 수계 법회를 봉행하고, 매년 여름 일반인을 대상으로 3~4회의 수련 법회를 열고 있다. 쌍계사는 템플스테이 지정 사찰로서 언제나 누구든 참여하여 사찰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황(조직, 시설 현황 포함)]

지리산 쌍계사육조의 정상을 모신 금당 영역과 대웅전 영역의 두 공간으로 구분되는 독특한 가람 구성을 이루고 있다. 금당 영역은 남북의 축선을, 대웅전 영역은 동서의 축선을 갖게 되어 두 영역이 서로 교차하는 가람 배치가 형성되어 있다. 이것은 터가 좁다는 지리적 조건에 의한 것이다. 금당 영역은 국사암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경사가 급하여 가람 조성을 하단 중단 상단으로 구성하고 있다. 배경이 되는 산봉우리는 지리산의 주봉인 토끼봉·형제봉이며, 대웅전 영역은 삼신산을 주산으로 하여 동에서 서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산지 가람을 형성하기에 알맞은 형세이다. 현존 당우로는 금당 영역에 육조 정상 탑전과 동방장(東方丈), 서방장(西方丈), 팔상전(八相殿), 영모전(靈慕殿)과 그밖에 요사채와 청학루(靑鶴樓)가 있다. 대웅전 영역에는 쌍계사 일주문, 쌍계사 금강문, 쌍계사 천왕문, 팔영루(八詠樓), 쌍계사 대웅전, 쌍계사 명부전, 쌍계사 나한전, 화엄전(華嚴殿), 삼성각(三聖閣), 금강계단(金剛戒壇), 쌍계사 적묵당쌍계사 설선당,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 마애불 등이 있다. 또 대웅전 앞에 석등이 있다. 그 밖에 많은 유물들이 2001년에 지어진 성보전(聖寶殿)[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현재는 모두 국보와 보물등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관련 문화재]

지리산 쌍계사에는 현재 국보 1점, 보물 12점, 지방 지정 문화재 22점 총 29점의 문화재가 있다. 금당 영역에는 육조 정상 탑전[금당]과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125호], 쌍계사 청학루[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5호], 쌍계사 팔상전[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87호]이 있다.

대웅전 영역에는 쌍계사 일주문[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86호], 쌍계사 금강문[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127호], 쌍계사 천왕문[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126호], 하동 쌍계사 사천왕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13호], 쌍계사 팔영루[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74호], 쌍계사 대웅전[보물 제500호], 쌍계사 목조삼세불좌상·사보살입상[보물 제1378호], 쌍계사 명부전[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123호], 쌍계사 나한전[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124호], 쌍계사 적묵당[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46호], 쌍계사 설선당[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53호], 쌍계사 진감선사대공영탑비[국보 제47호], 쌍계사 석등[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28호], 쌍계사 마애불[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48호]이 있다.

성보전 및 그 밖의 곳에 있는 문화재로는 지리산 쌍계사 동종[보물 제1701호], 하동 쌍계사 괘불도[보물 제1695호], 쌍계사 팔상전 영산회상도[보물 제925호], 쌍계사 대웅전 삼세불탱[보물 제1364호], 쌍계사 팔상전 팔상탱[보물 제1365호], 「쌍계사 국사암 아미타후불탱」[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86호], 「쌍계사 팔상전 신중탱」[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85호], 「쌍계사 삼장보살탱」[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84호], 「하동 쌍계사 감로왕도」[보물 제 1696호], 쌍계사 부도[보물 제380호], 쌍계사 소장 불경책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85호],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경상남도 기념물 제61호]가 있다.

2021년 2월 17일 쌍계사에 소장되어 있는 선원제전집도서 목판[보물 제2111호], 원돈성불론ㆍ간화결의론 합각 목판[보물 제2112호],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목판[보물 제2113호] 등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2022년 11월 11일 지리산 쌍계사와 불일폭포 일원 (智異山 雙磎寺와 佛日瀑布 一圓)은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1.03.09 현행화 보물 6점 → 보물 12점
2021.03.09 현행화 신규 보물로 지정된 유물 3점 내용 추가 → 2021년 2월 17일 쌍계사에 소장되어 있는 선원제전집도서 목판[보물 제2111호], 원돈성불론ㆍ간화결의론 합각 목판[보물 제2112호],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목판[보물 제2113호] 등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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