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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543
한자 六祖頂相塔殿
영어의미역 Yukjojeongsang stupa hall
이칭/별칭 금당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곽승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860년연표보기
문화재 지정 일시 1974. 12. 28.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지도보기
성격 건축물|금당
양식 다포계 팔작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쌍계사
관리자 쌍계사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125호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에 지어진 것을 중건한 조선 후기의 건축물.

[개설]

쌍계사(雙磎寺)는 통일 신라 시대인 722년(성덕왕 21) 대비 화상(大悲和尙)삼법 화상(三法和尙)이 세운 사찰로, 처음에는 옥천사라 불렀다. 뒤에 정강왕(定康王)[재위 886~887]이 절 주변의 지형을 보고 2개의 계곡이 만난다고 하여 쌍계사로 고쳐 불렀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소실된 것을 벽암 대사가 1632년(인조 10)경에 터를 옮겨 새로 지었다. 육조 정상 탑전(六祖頂相塔殿)도 비슷한 시기에 중창되어 이후 두 차례 중수하였다.

[위치]

쌍계사 경내 금당 영역의 중심 부분에 위치한다.

[변천]

육조 정상 탑전쌍계사 내에 있는 전각으로, 중국 불교 선종 6조인 혜능 대사(慧能大師)의 정상, 즉 두개골을 봉안하고 있는 건물이다. 처음 삼법 화상이 정상을 가져왔을 때는 전각을 조성하지 않았지만, 통일 신라 때 진감 선사(眞鑑禪師)가 중창을 하면서 건물을 세워 육조 영당(六祖影堂)이라 이름 하였다. 후에 금당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정확한 사유는 전하지 않는다.

임진왜란 때 쌍계사가 불에 타 1630년(인조 8) 벽암 대사가 중창하면서 새로 대웅전 영역을 조성하였다. 이때 진감 선사 당시에 조성되었던 금당 영역도 함께 조성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청학루(靑鶴樓)가 1675년(숙종 1) 인계 대사(印戒大師)에 의해 중수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기록에 따르면 육조 정상 탑전은 1860년(철종 11) 순월 선사(順月禪師)가 다시 중수하였고, 승려 고산이 1977년에 다시 수리하였다.

육조 정상이 처음 전래된 때에는 중국인들이 다시 가지고 갈까 염려하여 돌함에 넣어 흙으로 덮고 불전을 지어 숨겼다. 이로 인하여 예배하고 공양하려는 사람들이 그 진용(眞容)을 밝게 볼 수 없었다. 이에 용담 선사(龍潭禪師)가 김홍조와 박경수의 희사를 받아 이듬해 봄에 7층 석탑을 세워 놓았는데, 이후부터 육조 정상 석탑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탑은 당시 주변에 있던 목압사(木鴨寺) 터의 석탑을 용담선사가 옮겨 온 것이라고도 전한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의 건물로, 화려하게 단청(丹靑)되어 있다. 천장은 중앙부 쪽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층단형이며, 물반자로, 건물 중앙의 육조 정상 석탑 상부를 닫집[불좌 위에 만들어 다는 모형 집]으로 장식하여 전체적으로 장엄한 느낌을 준다. 건물의 정면과 좌우에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기둥은 자연석 주춧돌에 세웠는데, 배흘림이 미약하고 귀솟음과 안쏠림이 적은 편이다. 기둥 사이에는 공간포(空間包)가 각 1구씩 배치되어 있다. 포작(包作)은 밖으로는 2출목(出目), 안으로는 3출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목 간격은 일반적인 다포계 건물의 법식을 따르고 있다. 수서[垂舌] 상부에는 봉황 머리 대신 연꽃무늬의 운공 장식을 베풀었다. 전면에 걸려 있는 현판은 조선 시대의 명필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글씨로 모각본이며, 진본은 쌍계사 경내에 있는 성보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현황]

2011년 현재 육조 정상 탑전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쌍계사이다.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되었다. 육조 정상 탑전은 금당으로도 불리며, 현재의 모습은 1979년에 중수된 단층의 목조 기와집이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에 중수한 뒤 육조 정상 탑전 정면에 걸어 놓은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서 의미가 있다. 또한 육조 정상 탑전은 내부에 독특한 석탑을 봉안한 금당으로, 조선 시대 다포계 팔작집의 구조 및 평면 형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추당(秋堂) 혜근(惠勤)의 「육조정상방광론(六祖頂相放光論)」에 따르면, 육조 정상 석탑은 인적 없는 밤중이면 자주 빛을 발하여 하늘을 환하게 밝혔는데, 1913년 계축년 2월 초파일에는 갑자기 탑전에서 빛이 솟아 나와 사람들이 놀랐다고 한다. 이후에 현대에 들어와서도 1976년과 1978년, 1980년 세 차례의 방광(放光)이 있었다고 전한다. 더욱 1988년 8월에는 커다란 붉은 불빛이 솟아 나와 주위 40㎞[약 100여 리]가 대낮처럼 밝았는데, 인근 주민들이 사찰에 불이 난 줄 알고 올라왔다가 방광한 것임을 알고 환희하며 찬탄하였다고 한다. 이 같은 방광의 영험이 전하는 육조 정상 석탑은 쌍계사의 위상을 잘 알려 준다. 쌍계사가 하동 지역 불교 신앙을 선도하는 중심 도량임을 알려 주는 것으로서 그 사상적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