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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751
한자 白蓮里陶窯址
영어의미역 Kiln Site of Baengnyeon-r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백련리 사기마을 산16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조선/조선
집필자 박용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4년 12월 28일연표보기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2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백련리 사기마을 산16 지도보기
성격 요지|가마터
면적 7,456㎡
소유자 이성규
관리자 이성규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24호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백련리 사기마을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와 조선 시대 토기와 자기를 굽던 가마터.

[개설]

백련리 도요지(白蓮里陶窯址)는 16~17세기 조선 자기의 본류인 분청과 상감, 철화백자를 굽던 곳이다. 출토되는 그릇의 종류는 대접·접시·사발·병·항아리·장군·잔 등으로 다양하며, 주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그릇을 굽던 곳으로 보고 있다. 바탕흙은 회색이며, 모래 같은 불순물들이 많이 섞여 있다. 도자기들은 거칠고 어두운 회청색을 띠고 있으며 유약을 두껍게 칠한 것이 대부분이나, 산청군 단성면 운리에서 출토되는 것과 같이 양질의 바탕흙을 써서 제작한 것도 있다.

백련리 도요지가 위치한 하동군 진교면 백련리 사기마을은 1984년부터 개발에 박차를 가하여 전통 향요를 재현하고 있으며, 현재도 요업(窯業)이 성행하고 있다. 1994년 지역 문화의 전통과 맥을 잇는 시범 문화 마을로 지정되었으며, 2002년 장승업(張承業)의 삶을 다룬 영화 「취화선」의 촬영 장소로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건립 경위]

백련리 도요지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그릇들을 생산하였던 곳이므로 민간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 주변의 도공들이 가마터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기 가마터는 조선 시대의 것이며, 토기 가마터는 통일 신라 시대의 것이다.

[위치]

하동군 진교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1003호선을 따라 하동 쪽으로 1.3㎞쯤 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직진하면 백련리 사기마을이 보인다. 백련리 도요지하동군 진교면 백련리 사기마을과 마을 뒷산의 해발 30~40m의 경사면에 있다. 1호 요는 마을 내에 있고, 2호 요는 1호 요 건너편 북쪽의 약 200m 지점에 있다. 4개의 요지(窯址) 가운데 1개는 통일 신라 시대의 토기 요지이며, 3개는 조선 시대의 가마라고 알려져 있다.

[현황]

2011년 현재 백련리 도요지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이성규이다.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4호로 지정되었다. 백련리 도요지새미골 도요지라고 불리며, 면적은 7,456㎡이다.

1985년 발굴 조사를 통하여 백련리 도요지의 성격이 대체로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1호 요에서는 대접·접시·바래기·마상배(馬上杯) 형태의 그릇 등이 출토되었다. 접시는 굽다리가 높고 죽절(竹節) 굽이며, 다른 종류의 굽다리는 대부분 높고 단면이 사다리꼴이다. 마상배는 산청군 단성면 운리의 ‘운리계’ 바탕흙으로 빚어 굽 밑에 내화토(耐火土)로 빚은 눈을 받쳐서 구웠는데, 발색은 어두우나 미세한 빙열(氷裂)이 있다.

1호 요의 그릇은 대부분 바탕흙에 불순물이 많고, 깎아 낸 굽의 언저리가 거칠고 유약이 몰려서 매화피처럼 된 것이며, 굽다리 윗부분의 몸체를 수평에 가깝게 도려내서 굽다리 주변을 미끈하고 힘 있게 처리한 것도 있다. 일본에서는 매화피같이 굽다리 주변에 유약이 몰리고 미끈하게 생긴 굽을 정호다완 계열에 넣고 있다.

2호 요에는 대접·접시·바래기·항아리 형태의 그릇 등 사발형보다는 대접형이 많고, 1호 요에는 없는 도려낸 굽이 있다. 1호 요와는 달리 매화피처럼 된 것이 드물고, 기형도 바탕흙이 거칠고 발색이 암회청색인 것과 ‘운리계’의 발색이 백색인 것이 있다. 대체로 바탕흙에 철분이 함유되어 티 같은 점이 많으며, 굽다리가 높고 크다. 굽다리의 단면은 사다리꼴로서 사질 내하토로 빚은 눈을 5개 받쳐서 구웠다.

[의의와 평가]

백련리 도요지에서 적지 않게 발견되는 막사발 조각의 특징들이 현재 일본의 국보 찻잔 이도다완의 특징과 비슷하므로, 그 기원지로 추정되는 가마터일 것으로 본다. 창원 두둥리 가마터와 함께 임진왜란 때 우리 도공들을 납치하여 생산한 정호다완의 기원을 밝히는 데 중요한 유적이며, 한국과 일본의 도자기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