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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151
한자 朴致和
영어음역 Park Chi Hwa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 944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숙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0년 7월 11일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19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947년 7월 5일연표보기
추모 시기/일시 2007년 8월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 944 지도보기
묘소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하동 3·1 운동의 효시는 1919년 3월 13일 하동시장에서 전개된 독립만세 사건이다. 하동군 양보면 출신으로 양보일신학교 교사로 있던 정세기(鄭世基)[1984~1981]와 정성기(鄭成基), 정윤기(鄭潤基)의 주도로 시작된 이날의 시위는 군민들의 큰 관심과 호응을 얻어 하동군 각지에 큰 자극을 주었다.

하동 지역에서는 그 해 5월에도 하동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대한 독립 만세’라고 쓴 삐라 수십 장과 미농지 크기의 태극기에 ‘독립 만세’라 기입하여 적량면 동산리로부터 하동읍에 이르는 가로변 가로수에 붙여 대중들의 봉기를 호소하는 사건이 있었다. 또한 5월 3일 하동보통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정에서 축구 시간을 이용해 교내 시위를 전개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황급히 달려온 일본 경찰이 이를 제지하려 하자 학생들이 일제히 이들에게 조롱과 욕설을 퍼붓고 그들의 교외 철수를 요구하고 더욱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활동 사항]

적량면장으로 재직하던 박치화(朴致和)는 1919년 3월 14일 돌연 사표를 내던졌다. 그리고 3월 18일 하동읍내 장터로 나가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대한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나서 독립 만세를 크게 외쳤다. 박치화의 돌발적인 행동을 바라보던 군중들은 곧바로 무리를 지어 가담했고, 황학성(黃學成) 등의 주도로 읍민들과 상인들이 모두 참여했다.

이날 낭독된 「대한독립선언서」가 1986년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 박치화의 옛집 천장에서 발견되었고, 원본은 현재 충청남도 천안시의 독립기념관에 진열되어 있다. 「대한독립선언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황천(皇天)이 주시고 신명(神明)이 도우사 세계 평화의 회의가 창개(刱開)됨을 반(伴)하야 민족 자결의 여론(輿論)이 병기(幷起)하는 차(此) 호시운(好時運)이 내(來)하얏도다. 오호(嗚呼)라, 십개(十個) 성상(星霜)을 타(他)의 기반하(羈絆下)에서 인통신음(忍痛呻吟)하던 우리 대한 동포여! 확호(確乎)한 정(精)을 여(勵)하여 신속히 수(手)를 착(着)하라. 시(時)가 내(來)하고 운(運)이 복(復)하얏네. 주저치 말며 관망치 말고 우리의 사업을 우리의 심력(心力)으로 자결단행(自決斷行)합시다. 아(我)의 심기설봉(心機舌鋒)은 타(他)의 장창거포(長鎗巨砲)보다 우승(優勝)하니 일심단체(一心團體)로 광복지(光復地)로 병향(幷向)합시다. 최후의 일인(一人)과 최후의 일각(一刻)까지 폭동과 난거(亂擧)는 행(行)치 말고 인도(人道)와 정의(正義)로 독립문으로 전진합시다. 오희(於戱)라, 대한 광복과 동양 친목과 세계 평화가 금일로부터 실현되얏소. 분기(奮起)하고 맹진(猛進)하라, 우리 반만년 신성한 역사와 삼천리 금수(錦繡)의 강토를 유(有)한 우리 동포여! 단군 개국 사천이백오십이년이월십칠일 박치화(朴致和) 정낙영(鄭洛榮) 정인영(鄭寅永) 이성우(李聲雨) 이범호(李範鎬) 박종원(朴宗源) 이병홍(李炳鴻) 정희근(鄭禧根) 김응탁(金應鐸) 이보순(李輔淳) 황학성(黃學成) 김두순(金斗淳)”

「대한독립선언서」는 지방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하동 군민들의 독립 의지와 저항 의식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박치화는 현장에서 일본 경찰에 포박당해 구금되었고, 부산지방법원을 거쳐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아 복역하였다.

[묘소]

전북 김제시에서 1947년 7월 5일 사망했고, 2009년 7월 20일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부인 엄재현과 함께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공적을 기리어 정부에서는 2007년 8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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