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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640
한자 廉廷一旌閭
영어의미역 Monument for Yeum Jeongil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 546-2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길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77년연표보기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9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 546-2 지도보기
성격 정려
양식 우진각 지붕 석조 건물
정면 칸수 2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에 있는 개항기 염정일(廉廷一)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여각.

[개설]

효자 염정일[1801~?]의 자는 내일(乃一)이고, 호는 청산(靑山)이다. 유명한 효자 염종환(廉宗煥)의 아들이다. 염정일이 어느 날 아버지가 아파서 의원을 찾아 가는 길에 나루에 이르렀는데, 어떤 여자가 “남쪽에서 의원을 구하면 효험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여자가 말한 대로 의원을 찾아 치료를 하였더니 효험이 있었다. 또한 아버지가 한겨울에 죽순을 먹고 싶다고 하자, 대밭에서 사흘 동안 울면서 기도한 끝에 죽순을 구해 아버지께 드린 일도 있다.

부모가 돌아가시자 6년 동안 시묘를 하였는데, 호랑이가 늘 함께 하면서 그를 지켜 주었다. 3년 뒤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사천의 와룡산 호랑이가 나타나 맹씨가 설치한 함정에 빠졌다고 하였다. 깨어나 그곳에 가 보았더니 6년 시묘 동안 함께 하였던 바로 그 호랑이였다. 염정일은 자신을 지켜 준 호랑이를 구해서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위치]

염정일 정려(廉廷一旌閭)하동군 고전면 신월리 546-2번지 신월마을에 있다.

[변천]

염정일 정려는 1877년(고종 14)에 아버지 염종환의 비와 같이 세웠다. 당시 신월마을은 팔조면에 속해 있었는데, 1916년 고전면에 편입되었다. 1920년 하동향교에서 염정일의 증손자 염태섭(廉台燮)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비를 염종환염정일 효자려 옆에 세웠다. 2009년 하동군청 문화관광과에서 여역(閭域)을 흙돌담으로 두르고 기와로 담 지붕을 덮었다.

[형태]

정면 2칸, 측면 1칸의 우진각 지붕 화강암 석조 건물이다. 정면은 한 칸마다 3개의 홍살을 세웠고, 측면과 후면은 석판으로 막았다. 여각과 홍살문을 따로 설치하지 않고 여각에 홍살문을 바로 결합한 형태다. 여각도 모형 개념에 가깝게 축소된 형태를 하고 있다. 비석의 높이는 135㎝이고, 여각은 20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여각에는 염정일을 기리는 비와 아버지 염종환의 효행을 기리는 비 두 개가 있다.

[현황]

문중에서 관리하며, 하동군청 문화관광과의 비지정 문화재 시설 사업에 따라 고전면에서 정비를 맡아한다.

[의의와 평가]

부자의 효행을 기리는 두 개의 비석을 한 여각에 세웠다. 여각 형태는 전통 양식을 빌리긴 하였으나 재질이 모두 돌로 되어 있고, 규모도 작다. 특이한 양식으로 미술사적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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