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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원 효행 상서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940
한자 秋成元孝行上書文
영어의미역 Memorial on Filial Piety by Chu Seongwo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추경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858년연표보기
문화재 지정 일시 1997년 12월 31일연표보기
성격 고문서
관련 인물 추성원
용도 공문서
발급자 하동군수|경상도관찰사|통영수군절도사|예조
수급자 추성원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41호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의 효자 추성원(秋成元)의 효행에 대한 표창 상서문 및 이에 대한 답서.

[제작 발급 경위]

추성원은 고려 충렬왕 때 민부상서 예문관 대제학과 국학교수 재임 중 『명심보감(明心寶鑑)』을 지은 추적(秋適)의 18세손이며, 조선 임진년의 공신이며, 명나라 무강자사 추수경(秋水鏡), 증직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의 9세손이며, 순조 때의 효자이다. 1850년(헌종 15) 2월 13세 때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였다. 부모님이 이름 모를 병으로 고생하자 온갖 약초를 구하여 드렸으나 효험이 없었다. 어느 날 하얀 옷을 입은 노인이 꿈에 나타나 “부모의 병에는 인육이 최고니라”라고 말하였다. 추성원은 바로 그날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아버지 추민중의 병환을 위해 시탕해 드리니, 곧 병이 회복되었다. 그 후 어머니 창원 황씨가 병을 얻어 신음 중이므로 손가락을 끊어 피를 입으로 넣어 주니 원기를 되찾고 병에 차도가 생겨 회복되었다.

이와 같이 두 차례나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희생한 13세 소년의 효행은 급속히 소문이 퍼져 영남 지역에 널리 회자되었다. 이때 민정을 살피던 암행어사가 박대순·허용·정광문·유춘경·이기원·정엽·문예순·최필형 등 지역 유생 11명에게 확인해 상서문을 꾸미게 하였다. 그런 다음 ‘부모를 위해 희생하고 효행함은 만고에 드문 일’이라고 친필로 쓰고 암행어사 마패로 도장을 찍었다.

이후 추성원의 효행에 포상하라는 상서가 줄을 이었다. 1851년(철종 2)에도 유생들이 하동군수에게 13세 효자와 그 자손에게 잡역을 면제해 달라고 요청하여 군수가 친필로 확인하고 승낙해 주었다. 1858년(철종 9) 곤양 유학 강재위·이지희·정길과·이무기·정익두·신원태 등 31명의 유생들이 마침 지방을 순회하던 암행어사에게 13세 효자 추성원의 효행을 기록한 상서문을 올렸다. 암행어사가 친필로 ‘어린 소년의 효행이 탁월하여 포상을 내리니 관할 군수께 가서 쌀 2말과 육고기 등을 받아 가라’고 답신을 써주고, 마패로 확인 도장을 찍어 주었다.

1860년(철종 11)에도 곤양 유학 강재위·이지희·정길과 등이 경상도관찰사 조병준 등에게 효행 사실을 밝히고 상서하여 답장을 받았다. 1861년 12월에 다시 추씨 종친들이 앞장서서 통영의 수군통제사에게 효행 사실을 기록한 상서문을 올려 답장을 받았다. 이 같은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서울의 예조에서 암행어사를 시켜 효행 사실을 확인한 후 추성원에게 동몽교관 벼슬을 내렸다. 그 후 조정 대신 민경호(閔京鎬), 판서 박기양(朴箕陽) 등의 재가를 받아 하동군 금남면 궁항리 남편에 효행 정문을 세우게 되었으며, 비문은 하동청년회관의 건립 동지이며, 남일물산의 지배인이었던 전택노(全宅魯)가 지었다.

[형태]

추성원 효행 상서문은 닥나무로 만든 옛 조선종이에 기록한 상서문으로 모두 5매이다. 가로 59.1㎝, 세로 97.1㎝이며, 붓글씨로 기재해 관청[암행어사, 관찰사, 수군통제사, 군수]에 올린 문서에 답을 받은 형식이다. 암행어사가 친필로 확인하고 마패로 도장을 찍었고 관찰사와 군수도 친필로 확인하고 직인을 찍어 답신을 보낸 형식이다.

[구성/내용]

추성원 효행 상서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곤양 유학 강재위·이지희·정길과 등은 암행어사[관찰사, 군수]께 목욕재계하고 백번 절하며 삼가 글을 올리나이다. 수의각하님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살과 손가락을 끊어 부모님께 드리는 일은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13세 소년이 부모님의 병환에 온갖 약초를 구하기 위해 동서남북 산을 헤매고 다니다가 효험이 없게 되었을 때 마침 하얀 옷을 입은 노인이 현몽하여 부모님의 병환에는 인육이 최고라는 말을 들었고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부모님 병을 낫게 하려고 손가락과 대퇴부 살을 끊었다는 고사을 듣고 곧 실천하여 효행을 다하였으니 가히 효행의 극치가 아니겠습니까. 나라의 근본이 충효에 있음인데 멀리 떨어진 바닷가 인근에서도 이 같은 효행이 있으니 널리 포상을 위해 상서문을 올리나이다…….”

이에 암행어사가 상서문 아래에 “어린 소년의 효행이 특이하고 심히 가상스럽다. 이에 포상을 확인한다”라고 답을 쓰고 마패로 확인 도장을 찍었다. 또 백미와 황육을 상으로 내린다고 기록하였다. 이 같은 추성원의 효행은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하동군지』 등에도 기록되었으며, 정성훈·박기양·민경호 등 판서급 유사들이 내린 포상완의문[표창장]이 전한다. 추성원 효행 상서문은 1997년 12월 31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41호로 지정된 이후 은행 대여 금고에 보관중이다.

[의의와 평가]

추성원 효행 상서문은 13세 소년이 부모님의 병환을 위해 자신의 피와 살을 바친 효행으로 경상도관찰사·암행어사·수군통제사·군수에게 올린 상서문과 이에 대한 답신으로 윤리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고 개탄하는 이 시대에 올바른 효행 문화의 정책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문서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도의적인 인성 계발과 청소년 교육에 크게 기여하는 수범적 사례로 도덕적인 규범을 새롭게 세우는 일에 기여할 것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