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2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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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屈村縣 |
영어의미역 | Gulchon-heon Administrative District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김해영 |
[정의]
삼국 시대부터 고려 전기까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신라 시대의 주·군·현은 각각의 영역에 속한 여러 촌락을 직접 지배하는 한편, 주·군과 현 사이에는 영속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굴촌현(屈村縣)은 신라의 영역에 속하는 독자적인 행정상의 단위로서 중앙에서 파견된 하급 지방관인 소수(少守)나 현령이 다스렸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진주목 고적조에 굴촌폐현은 “주의 서쪽 50리에 있는데, 신라 때 본주에 예속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잡지(雜志) 강주(康州)조에 “강주[현 진주]에는 가수현(嘉壽縣)과 굴촌현 두 영현(領縣)이 있는데, 가수현은 본래 가주화현(加主火縣)을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쳤고 굴촌현은 미상(未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이후 편찬된 『진양지(晉陽誌)』의 각리(各里)조에 운곡리(雲谷里)에 대하여 “옛적에는 굴촌이라 일컬었으며, 주의 서쪽 55리에 있다. 동쪽은 수곡이요, 남쪽은 동곡(桐谷)이며, 서쪽은 전두(田頭)요, 북쪽은 종화(宗化)다. 동서가 20리, 남북이 7리, 속방이 다섯이다”라고 하였다.
[내용]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각읍 고적조에 기록된 폐현, 향, 부곡 등은 고려 왕조를 거쳐 조선 시대에 이르면 행정 단위로서의 기능이 소멸되어 고적으로 남겨진 곳이다. 굴촌폐현은 진주목의 고적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어 전하는 곳으로, 진주목 고적조의 다른 폐현이나 향·부곡·소 등과 달리 일찍이 고려 초기에 진주목의 직촌으로 편입되었던 곳으로 보인다.
[변천]
굴촌현은 신라 때만 하더라도 지금의 하동군 옥종면 일대에 있던 고을로 하급의 지방관인 소수 혹은 현령이 다스렸다. 통일 신라 후 강주가 전국 9주의 하나가 되면서 가수현과 더불어 진주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전기 진주목 계내의 군현 가운데 신라 굴촌현에 연혁이 연결되는 고을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굴촌현은 고려 현종 이전에 이미 진주목의 직촌으로 흡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폐현이 된 굴촌은 조선 시대에 이르러 진주목 서면의 운곡리로 되었다가 1906년 하동군에 귀속되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인접한 가서면·종화면과 합쳐져 가종면이 되었다. 가종면은 1928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인접한 옥종면에 통합되어 현재에 이르게 된다.
[의의와 평가]
굴촌현은 신라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행정상 독자적인 구역이었으나, 통일 신라 이후 고려 초기에 걸쳐 이루어진 군·현의 개편 과정에서 진주목의 영역 확대와 더불어 직촌으로 편입되어 『신증동국여지승람』 진주목 고적조에 폐현의 하나로 기록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