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9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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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沙里上平堂山祭 |
영어의미역 | Sacrificial Rite to a Tutelary Deity in Pyeongsa-ri, Sangpyeong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상평마을 |
집필자 | 김성채 |
의례 장소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상평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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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마을 신앙|당산제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1월 1일 |
신당/신체 | 들돌|푸조나무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상평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평사리 상평 당산제는 정월 초하루에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상평마을에 있는 들돌[할배당산]과 위민정(慰民亭)의 푸조나무[할매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상평마을은 박경리(朴景利)[1926~2008]의 대하소설인 『토지』의 배경 무대로 유명하다. 지리산과 섬진강, 악양들판 등이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답다. 특히 마을 앞에 펼쳐진 악양 들판은 풍성한 이미지로 토지의 배경이 되었다. 현재 소설 속 최참판댁이 재현되어 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SBS 대하드라마 「토지」 촬영 세트장을 리모델링한 초가 마을이 있다. 마을 안길이 최참판댁으로 이어지면서 주변에는 상가가 들어서 있고, 마을 안쪽으로는 돌담이 남아 있는 등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상평마을은 진양 강씨가 가장 먼저 입향하였다고 하며, 다음으로 한산 이씨가 입향하였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 진양 강씨 재실인 ‘사모재(思募齋)’와 한산 이씨 ‘동산재(東山齋)’가 위치한다. 또한 이웃 마을 주민들은 상평마을을 ‘강씨들의 마을’로 이야기 하며, 마을 입구 진양 강씨 충정공파의 25세 강여주(姜汝柱)의 묘비에 ‘진양강씨세거동’이라 기록되어 있다. 인구는 70여 가구에 120여 명 정도이다. 마을 주민 대부분의 연령대는 60~70대로 노령화되어 있으며, 남성[40%]보다 여성[60%]이 많다.
[연원 및 변천]
평사리 상평 당산제의 연원은 잘 알 수 없으나 당산나무인 푸조나무의 수령이 500여 년이라는 점으로 볼 때 마을이 생겨났을 때부터 지낸 것으로 보인다. 마을 사람들이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제관은 ‘콧대장승’이라는 분이며, 그 다음으로 제관을 한 사람은 한때 새마을 지도자였던 안일선의 외조부인 서봉래이다. 서봉래는 마을 회의를 통해 제관으로 선출된 이후 약 20년간 계속해서 당제를 모셔 왔다고 한다.
이후 서봉래가 연로하여 더 이상 제의를 모실 수 없게 되자 마을 회의를 거쳐서 김성수가 당산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김성수는 벅구를 두드리며 경을 외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무속인이다. 김성수가 사망하자 마을에서는 마을 인근에 위치한 한산사 주지에게 부탁하여 2년 정도 당산제를 지냈다. 그 다음 1988년 이쌍석이 이장이 되어서 4년간 당산제를 지냈으며, 1992년부터 마을 이장이 제관으로 고정되어 마을에 대사[마을 초상 등]가 없는 한 당산제를 모시고 있다.
원래 정월 초하룻날 자시에 지내던 것을 이쌍석 이장이 당산제를 모실 때 집안의 제사 날짜와 겹치는 관계로 마을 회의를 거쳐 정월 초닷새로 정하고, 지내는 시간도 자정이 아니라 오전 11시로 변경하였다. 제물도 더 많이 차렸다고 한다. 이것은 더 많은 정성을 보이면 마을이 더 잘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라 한다. 당산제를 마치고 나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마을 회관에 모여 음복하였다. 그 전에는 제물을 조금 마련하여 당산제를 지내고 나서 제관만 음복하였다.
2003년쯤부터 다시 정월 초하루 자시에 당산제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당시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있어 혹 낮에 당산제를 지냈기 때문인가 싶어 시간을 변경했다 한다. 2005년에는 마을에 초상이 나서 이학수 이장이 마을 위친계[상여계] 총무로 초상집에 다녀 올 수밖에 없어 운수업을 하는 전 새마을 지도자였던 안일선이 당산제를 지냈다. 이후에는 당산제를 모시는 이장은 초상집이나 출산한 집, 심지어 주민의 생일날 잔치하는 데도 가지 않는 등 금기를 지키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마을 당산은 마을 뒤와 앞에 위치한다. 마을 뒤를 ‘할배당산’이라 하고, 마을 앞을 ‘할매당산’이라고 한다. 처음에 할배당산은 느티나무 고목나무였으나 고사되고 나서 그 자리에 있던 ‘들돌’에 금줄을 치고 주변으로 금줄에 대나무를 꽂아 신체를 표현하였다. 할매당산은 수령이 500년 정도 된 위민정의 푸조나무이다. 푸조나무 앞에 제단을 설치하고 제물을 차려 놓으며, 푸조나무에 금줄을 치고 금줄에 대나무를 꽂아 세운다. 특히 할매당산에는 푸조나무에 실로 북어를 매어 당산제를 지낸다.
과거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당산제는 할배당산과 할매당산 주위에 대나무를 12개씩 꽂아 놓고 금줄을 쳤다. 대나무를 12개 꽂는 이유는 1년 12달을 상징하며, 12달 동안 아무 탈 없기를 바라는 뜻이라고 한다. 현재는 할배당산 주위에 6개, 할매당산 6개, 총 12개의 대나무를 꽂아 지낸다. 소지는 할배당산과 할매당산에서 각각 올리는데, 가구별 또는 성씨별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마을 전체로 총 6개를 올린다.
[절차]
당산제를 모시기 3일 전부터 제관 집과 당산에 왼새끼로 금줄을 친다. 금줄에는 한지를 한 뼘 정도 크기로 잘라 중간 중간에 꼽는다. 당산제를 지내기 전까지 제관은 초상집이나 집밖 출입을 금하는 등 몸을 정갈하게 하며, 당산제를 지내고 나서도 최소 삼일 동안은 금기를 지킨다. 당산제에 사용되는 제비는 마을 기금을 사용한다. 과거에는 마을에서 쌀을 닷 말 제공하였다. 근래에 들어서는 현금 5만 원을 제관에게 주었다. 현재는 10만 원을 주는데, 이 돈으로 제물을 장만하고 부족한 경우는 정성을 보태는 마음으로 제관이 부담한다. 동네에 사용되는 기금은 마을 동답 2,645㎡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사용한다.
당산제를 지내는 당일에는 황토를 제관의 집과 당산에 뿌리고, 저녁에는 당산에 올라 황토 물 한 바가지와 솔가지를 가져가서 부정 치기를 한다. 제물은 모두 제관 집에서 정성껏 준비한다. 제물은 술[막걸리]과 대추, 밤, 사과, 배, 곶감 등의 과실과 도라지, 고사리, 시금치, 콩나물 등 나물을 준비하여 올리고, 유과, 북어나 문어[혹은 오징어]포, 그리고 메밥과 탕국을 올렸다. 탕국은 무, 홍합 말린 것, 두부, 새우 말린 것 등을 사용하여 끓인다.
당산제의 제물은 한지를 깔고 진설한다. 제물 진설은 당산을 기준으로 첫째 줄에 메와 탕, 그 옆에 수저를 올린다. 그 앞으로 술잔을 올리고, 셋째 줄에 나물을 올리고, 넷째 줄에 과일과 포, 돼지머리를 올리며, 마지막 줄에 초와 향을 차린다. 할배당산과 할매당산의 제물은 같고, 진설도 대동소이하다.
당산제는 먼저 할배당산에 올리고, 다음에 할매당산에 지낸다. 진행은 일반 기제사와 형식이 비슷하다. 할배당산에서 당산제를 마치면 간단하게 그 자리에서 음복을 한다. 그리고 집에서 할매당산에 올릴 제물을 챙겨 할매당산으로 옮긴다. 할매당산의 당산제를 마치면, 다시 그 자리에서 간단하게 음복한다. 제를 마치면 소지를 올리며, 메와 탕, 나물, 과일 등 제물을 한지에 싸서 당산의 들돌 밑[할배당산]이나 구덩이를 파고 묻는다. 이렇게 해서 당산제를 모두 마친다.
[축문]
대부분의 경우 축문을 작성하지 않고 입으로 축을 외웠다. 축의 내용은 대부분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2004년 이학수 이장은 필자가 당산제에 참관하여 현장 조사를 실시하게 됨에 따라 한글 축문을 지었다. 축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구한 세월 동안 우리 마을을 지켜 주신 영험하신 당산 할아버지께 고합니다. 갑신년 새해를 맞이하여 마을 사람들을 대표해서 간소하지만 정성을 다하여 제물을 마련하여 올리는 것이오니 부디 흠향하시옵고, 올 한 해에도 마을 사람들 그리고 마을을 떠나 있는 가족, 친지들까지 몸 건강하게 지낼 수 있고, 하는 사업 성취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오며, 특히나 최참판댁 건립 토지 촬영으로 우리 마을을 널리 알리고 소득이 창출되어 보다 잘 사는 마을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며, 조용한 마을에 각종 공사로 하여금 어수선한 마을 분위기를 잠재워 주시고,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기 좋은 마을이 될 수 있도록 굽어 살펴 주십시오.”
[부대 행사]
별다른 부대 행사는 없다. 당산제를 마치면 간단하게 그 자리에서 음복하는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