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0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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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曉蟾津江-鄭栻- |
영어의미역 | At Seomjingang River of the Down |
이칭/별칭 | 「새벽 섬진강에서」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석기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68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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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746년 |
배경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
성격 | 한시|서정시|유선시 |
작가 | 정식(鄭栻)[1683~1746] |
[정의]
조선 후기 명암 정식이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섬진강의 새벽 풍경을 노래한 한시.
[개설]
「효섬진강(曉蟾津江)」은 『명암집(明庵集)』 권3에 수록되어 있다. 정식(鄭栻)[1683~1746]은 전국의 명승을 두루 유람하며 수많은 시를 지었는데, 「효섬진강」은 지리산[1,915m] 쌍계사(雙磎寺) 방면을 유람하고서 배를 타고 내려올 때의 새벽 풍경을 노래한 것이다.
정식의 자는 경보(敬甫), 호는 명암(明庵),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1565~1624]의 아우 정문익(鄭文益)이 정식의 증조부인데, 이때부터 경상남도 진주에 정착하였다. 정식은 족형인 정구(鄭構)에게서 배웠다.
명나라가 망한 세상에 살면서 송나라 호전(胡銓)이 지은 「척화소(斥和疏)」를 읽고서 비분강개하여, 과거시험에 응하지 않고 명암이라 자호(自號)하고는 가족을 이끌고 지리산 덕산으로 들어가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살았다. 금나라와의 화친을 반대하고 북쪽의 잃어버린 땅을 수복해야 한다고 주장한 주희(朱熹)[1130~1200]와, 한(漢)나라 옛 땅을 수복하고자 하였던 제갈량(諸葛亮)[181~234]의 정신을 본받는 것을 목표로 하여 대명의리를 정신적 기반으로 삼았다.
[구성]
칠언 절구의 구성법에 맞게 쓴 한시이다. 제1구와 제2구에서는 하동군 화개에서 배를 타고 섬진강을 내려오면서 눈에 보이는 풍경, 즉 날이 새어 새벽이 다해 가는데 깊이 잠든 새벽 어촌 마을, 그리고 서리 내린 모래톱 위에 앉아 있는 쇠잔한 해오라기 등 늦가을 강변의 정경을 그려 냈다. 제3구에서는 눈과 귀로 보고 느끼는 정서를 그려 냈는데, 노 젓는 소리가 선미의 물결을 따라 뒤로 멀리 사라진다는 표현 속에 배는 앞으로 미끄러지고 소리는 뒤로 멀어지는 정취를 묘하게 표현하였다.
마지막 제4구에서는 시인의 정신적 경지를 드러내고 있는데, 백운산 위에 뜬 달이 강에 가득 비치니 차갑다고 표현하여 늦가을 새벽 강물의 찬 느낌을 더하고 있다. 차가움과 밝음이 곧 작가의 정서이다.
[내용]
어촌적적효광란(漁村寂寂曉光闌)[어촌은 잠들어 적막하고 새벽빛은 다해 가는데]
상중사주로몽잔(霜重沙洲鷺夢殘)[된서리 내린 모래톱엔 해오라기 꿈이 쇠잔하네]
이알도성천흔거(咿戛棹聲穿痕去)[삐걱삐걱 노 젓는 소리 물결 따라 떠가고]
백운산월만강한(白雲山月滿江寒)[백운산 위에 뜬 달 강 가득 비쳐 차갑구나]
[특징]
제1구에 ‘난(闌)’, 제2구에 ‘잔(殘)’, 제4구에 ‘한(寒)’의 운자를 썼다.
[의의와 평가]
「효섬진강」을 통하여 18세기에 대명의리를 지키며 재야에 은거한 유학자가 늦가을 새벽에 배를 타고 섬진강을 내려오면서 느낀 정서를 엿볼 수 있다. 조선 시대 유선시(遊仙詩) 또는 기행시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