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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찬」[박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064
한자 雙磎寺讚-朴祥-
영어의미역 Praising the Ssanggyesa Templ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최석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474년연표보기
저자 몰년 시기/일시 1530년연표보기
배경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지도보기
성격 한시|서정시|유선시|칠언 율시
작가 박상(朴祥)[1474~1530]

[정의]

조선 전기 눌재 박상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쌍계사청학동을 유람하며 읊은 한시.

[개설]

「쌍계사찬(雙磎寺讚)」박상(朴祥)[1474~1530]의 문집 『눌재집(訥齋集)』에 수록되어 있지 않고 성여신(成汝信)이 지은 『진양지(晉陽志)』 불우(佛宇) 쌍계사조(雙磎寺條)에 수록되어 전한다. 박상이 하동의 쌍계사(雙磎寺)청학동 방면을 유람하며 노래한 시로 제목은 알 수가 없다. 내용상으로 볼 때, 쌍계사의 아름다운 경관을 찬양하기 때문에 후인들이 「쌍계사찬」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박상의 자는 창세(昌世), 호는 눌재(訥齋), 본관은 충주(忠州)이다. 1496년(연산군 2) 진사가 되고 1501년(연산군 7)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교서관정자가 된 뒤, 승문원검교·병조좌랑 등을 지냈다. 1506년(연산군 12) 사간원헌납으로 있으면서 종친을 중용하는 것에 반대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하옥되었다. 그 뒤 담양부사 등 지방관을 지냈다.

1515년(중종 10) 순창군수 김정(金淨)[1486~1521]과 함께 상소해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단경왕후(端敬王后) 신씨(愼氏)의 복위를 주장하였다. 또한 박원종(朴元宗)[1467~1510] 등의 죄를 바로 잡으라고 청하다가 중종의 노여움을 사 유배되었다. 1516년(중종 11) 방면되어 순천부사·충주목사·나주목사 등을 지냈는데, 당국자의 미움을 사 1529년(중종 24) 병으로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뒤에 청백리(淸白吏)로 녹선되었으며, 성현(成俔)[1439~1504], 신광한(申光漢)[1484~1555], 황정욱(黃廷彧)[1532~1607] 등과 함께 서거정(徐居正)[1420~1488] 이후 4대가로 칭송되었다. 저술로 『눌재집』이 있으며, 전라남도 광주의 월봉서원(月峰書院)에 제향되었다. 박상은 송시(宋詩)를 배격하고 당시(唐詩)를 추종한 문인으로 삼당시인(三唐詩人)[조선 중기 백광훈(白光勳)[1537~1582], 최경창(崔慶昌)[1539~1583], 이달(李達)[1539~1612] 등 세 시인에게 영향을 주었다.

[구성]

칠언 율시의 구성법에 맞추어 쓴 전형적인 근체시이다. 제1구는 두보(杜甫)[712~770]의 시의 ‘방장삼한외(方丈三韓外)’를 말하는 듯하며, 제2구에서는 쌍계사의 형승이 최고라고 찬사를 보내고 있다. 제3구와 제4구에서는 청학동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소리를 듣고,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雙磎寺眞鑑禪師大空塔碑)최치원(崔致遠)[857~915] 글씨를 보면서 신선 세계에 들어온 기쁨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신선 세계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신선의 풍도를 흠모하면서 자신이 이 산을 유람할 채비를 다 하였기 때문에 마음껏 놀아보겠다는 희망을 노래하였다.

[내용]

방장삼한문천하(方丈三韓聞天下)[방장산이 삼한에 있다는 것 천하에 알려졌고]

쌍계형승우무다(雙磎形勝又無多)[쌍계사 빼어난 경관 이보다 나은 곳 없으리]

학동층파경벽력(鶴洞層波驚霹靂)[청학동서 쏟아지는 물 벽력을 치듯 요란하고]

석문사자무교타(石門四字舞蛟鼉)[석문의 네 글자는 교룡이 춤을 추는 듯하네]

일발건곤장자재(一鉢乾坤長自在)[바리때 하나로 사는 세상 영원히 자유로운데]

만산풍월소경과(滿山風月小經過)[청풍명월 가득한 이 산을 지나는 이 적구나]

포말청혜오이구(布襪靑鞋吾已具)[베버선에 푸른 가죽신을 내 이미 준비하고서]

유애요조고두타(幽崖窈窕叩頭陀)[그윽한 절벽 깊숙한 곳으로 가 산승을 찾네]

[의의와 평가]

「쌍계사찬」박상의 문집에 남아 있지 않고 『진양지』에만 전하고 있어 박상의 칠언 율시 한 수를 발굴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당시풍을 지향한 박상의 자유로운 시적 상상력과 구속받지 않고 정신적 자유를 누리고 싶어 하는 작가 의식을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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