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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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仁 |
영어음역 | Jeongi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전병철 |
[정의]
고려 후기 하동 출신의 관인(官人).
[가계]
본관은 하동(河東). 할아버지는 정공윤(鄭公允)으로, 중봉대부 영북등처행중서성 참지정사 상호군(中奉大夫嶺北等處行中書省叅知政事上護軍)에 증직되고, 추후 영양군공(榮陽郡公)에 봉작되었다. 아버지는 정성량(鄭性良)으로 자선대부 하남강북등처 행중서성좌승 상호군(資善大夫河南江北等處行中書省左丞上護軍)에 증직되고, 추후 영양군공(榮陽郡公)에 봉작되었다. 어머니 포씨(匏氏)는 영양군부인(榮陽郡夫人)에 봉작되었다.
부인 이씨(李氏)는 한국태부인(韓國太夫人)에 봉작되었으며, 그 사이에 아들 5형제가 있다. 맏이는 정윤화(鄭允和)로 벼슬이 정윤(正尹)에 이르렀으며, 둘째 아들은 정윤기(鄭允琦)로 호군(護軍)을 지냈다. 셋째 아들 정독만달(鄭禿滿達)의 시호는 휘정공(徽政公)이다. 넷째 아들은 부좌(夫佐)이니 벼슬이 판내부시사에 이르렀고, 다섯째 아들은 정모(鄭某)라고 하는데 벼슬하지 않았다.
정인(鄭仁)의 셋째 아들 휘정공은 1300년(충렬왕 26) 나이 11세 때 내시로 충렬왕을 따라 원에 가서는 그대로 성종과 인종을 섬겼다. 광록대부 휘정사 연경사(光祿大夫徽政使延慶使)를 거쳐 제조장알사사(提調掌謁司事)가 되었다. 이 아들로 인해 3대가 추증되었다.
[상훈과 추모]
1333년(충숙왕 복위2) 12월 12일 79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는데, 그 다음 해에 숭록대부 요양등처 행중서성 평장정사주국(崇祿大夫遼陽等處行中書省平章政事柱國)에 증직되었고, 추후 한국공(韓國公)으로 봉작되었다. 1345년(충목왕 1) 휘정공이 사당을 건립하였으며, 가정(稼亭) 이곡(李穀)이 기문(記文)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