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3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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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濟學 |
영어음역 | Choe Jehak |
이칭/별칭 | 중열(仲悅),습재(習齋)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아네스 |
출생 시기/일시 | 1882년 3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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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6년 4월 |
활동 시기/일시 | 1910년 |
활동 시기/일시 | 1912년 |
몰년 시기/일시 | 1961년 5월 15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3년 |
추모 시기/일시 | 1988년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추모 시기/일시 | 1993년 |
추모 시기/일시 | 2008년 |
출생지 | 전라북도 진안군 목동 |
묘소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
기념물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
기념물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 취간림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하동 지역에 은거했던 의병.
[개설]
최제학(崔濟學)은 1906년부터 최익현(崔益鉉)[1833~1906] 막하의 12의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항일 의병 활동을 하였다. 최익현은 이항로(李恒老)[1792~1868]의 문인으로 개항기의 대표적인 위정 척사론자이다.
[가계]
최제학은 1882년(고종 19) 전라북도 진안군 목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탐진(耽津). 자는 중열(仲悅), 호는 습재(習齋)이다. 1905년 을사 보호 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는데, 최제학은 최익현이 1906년 4월 전라도 태인의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참모직을 맡아서 의병을 소집하고 군비를 편성하였다. 이후 임병찬 등과 함께 최익현의 12의사 가운데 한 명으로 일본군에 체포되어 징역 4개월의 형을 받았다.
최익현이 대마도(對馬島)에서 순국하자 최제학은 부산으로 운구를 모셔다 장례를 치렀다. 1910년 한일 합병이 이루어지자 지리산을 오르내리다 하동군 청암면 학동으로 옮겨 와 은거하였다. 1912년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상하이로 향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된 후 하동경찰서에서 20일간 옥살이를 하였다. 1961년 5월 15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습재실기(習齋實記)』가 있는데, 1963년 석판본 2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최용식(崔龍植)과 구연건(具然建)이 서문을 쓰고 장인수(張仁洙)가 발문을 붙였다. 시 17수와 수필 2편, 일기 등이 실려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1988년 전라북도 삼우동에 기념비가 세워졌고, 1993년에는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묘소 앞 바위에 공적비를 세웠다. 2008년 지리산항일투쟁기념사업회에서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 취간림에 지리산 항일투사 기념탑[악양 항일투사 추모탑비]을 세웠는데, 여기에는 최제학 등 지리산 일대에서 일제와 맞서 싸운 대표적인 항일 독립투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