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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진연해군현 잉입두류 상쌍계신흥기행록」[양경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463
한자 歷盡沿海郡縣仍入頭流賞雙溪新興紀行錄-梁慶遇-
영어의미역 An Essay Written after Traveling along Yeokjin's Coastal Counties and Prefectures and Entering the Ssanggyesa and Sinheungsa Temples in Duryusan Mountain by Yang Gyeongu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정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68년연표보기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29년연표보기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618년연표보기
성격 한문학|유람록
작가 양경우(梁慶遇)[1568~1629]

[정의]

1618년 제호 양경우가 경상남도 하동군의 쌍계사불일암, 신흥사 등을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개설]

「역진연해군현 잉입두류 상쌍계신흥기행록(歷盡沿海郡縣仍入頭流賞雙溪新興紀行錄)」양경우(梁慶遇)[1568~1629]의 『제호집(霽湖集)』 권10에 수록되어 있다. 양경우는 1618년(광해군 10) 윤4월 15일부터 5월 18일까지 33일 동안 전라남도 영암의 도갑사(道甲寺), 진도의 벽파정(碧波亭), 전라남도 강진과 순천, 그리고 경상남도 하동의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였다. 하동군 악양을 기점으로 청학동을 유람한 날짜는 5월 9일부터 5월 13일까지이다.

이보다 한 달 앞서 현주(玄洲) 조찬한(趙纘韓)[1572~1631]의 형인 조위한(趙緯韓)의 주도로 청학동 유람을 약속하였었는데, 양경우는 공무에 바빠 함께 하지 못하였고, 한 달 뒤인 윤4월에 유람이 성사된 것이다. 조위한의 유람은 「유두류산록(遊頭流山錄)」이란 제목으로 문집에 전한다.

양경우의 자는 자점(子漸), 호는 제호(霽湖)·점역재(點易齋)·요정(蓼丁)·태암(泰巖)이며,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1592년(선조 25) 부친 양대박(梁大樸)[1544~1592]을 따라 아우 동애(東崖) 양형우(梁亨遇)[1574~1623]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597년(선조 30) 문과에 급제하였고, 홍문관교리와 봉상시첨정(奉常寺僉正) 등을 지냈다. 저술로 『제호집』과 『제호시화(霽湖詩話)』가 있다.

[구성]

양경우는 장성수령(長城守令)으로 있던 51살 때 전라남도 광양 땅에 공무가 있어 갔다가 인근 하동군의 지리산[1,915m]을 유람하였다. 동행은 현주 조찬한과 동생인 양형우 등이다. 일정은 장성을 출발하여 영암→진도→강진→장흥→보성→낙안→순천→광양→하동군 악양→화개 쌍계사(雙磎寺)불일암(佛日庵)→신흥동→광양을 거쳐 귀가하는 유람이었다.

[내용]

양경우의 유람 기록 중 하동 관련 기록은 악양에 도착한 후 쌍계사를 찾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들어가는 입구의 지형을 소상히 설명하고 그에 대한 감회를 섬세하게 읊어 내고 있다. 특히 쌍계사에서의 기록은 입구에 있는 ‘쌍계석문(雙磎石門)’의 네 글자 석각, 경내에 있는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雙磎寺眞鑑禪師大空塔碑), 최치원(崔致遠)[857~?]의 영정을 모신 고운영당(孤雲影堂) 등 최치원과 관련한 기록을 집중적으로 소개하였고, 나아가 최치원에 대한 극찬과 안타까움을 표출하였다.

쌍계사에서 불일암을 오르는 길은 청학동 유람 중 가장 험난한 코스로 유명하다. 양경우는 이 길을 남여(藍輿)를 타고 올랐는데, 길의 험난함과 당시 남여를 메던 인근 사찰 승려들의 모습을 소상히 표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불일암불일폭포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두고서 진정 신선의 세계라 극찬하였다.

신흥동 계곡에 대해서는 그 유래, 수려한 경관, 신흥사(新興寺) 내 건물의 내력 등을 세세히 기록하였고, 특히 노승의 의복 모습과 젊은 학승(學僧)들의 깨끗한 피부, 사찰 내에서의 행동거지 등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마치 그들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징]

유람록은 ‘유람의 동기→일정별 기록→유람의 총평’ 순으로 기록하는 것이 일반적 체재인데, 「역진연해군현 잉입두류 상쌍계신흥기행록」은 이에서 나아가 일정에 따라 일기체 형식으로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날씨나 기타 사정으로 유람이 어려울 때는 날짜와 간지(干支),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짧은 메모 형식을 통해 33일간의 긴 여정을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 관료의 유람 모습을 세세히 묘사하고 있다. 남여를 타는 모습, 산행 가이드와 남여꾼으로 활용되었던 승려의 모습, 지리산 속 사찰 내 승려들의 생활 등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기록들을 많이 담고 있다.

[의의와 평가]

당시 양경우는 지방관의 신분이었기에 「역진연해군현 잉입두류 상쌍계신흥기행록」에 나타나는 유람 또한 넉넉한 모습임을 볼 수 있다. 지나는 각 고을의 수령에게서 융숭한 대접과 여비 지원 등의 물자를 공급받는 것은 물론, 유람 도중 대접받는 향응 중에는 다른 유람록에서는 볼 수 없는 기록들도 실려 있다. 예컨대 흥양현령(興陽縣令)의 초대로 본 단옷날 전통 씨름인 각저희(角觝戱) 모습이나, 관아에 들렀을 때 당시의 군대 상황과 관련한 여러 국무(國務)를 전해 받는 모습의 기록 등을 들 수 있다.

「역진연해군현 잉입두류 상쌍계신흥기행록」지리산을 유람하였던 인물들의 현실적 기반과 지리산 유람과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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