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하동문화대전 > 하동향토문화백과 > 삶의 내력(역사) > 근현대 >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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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이후 경상남도 하동 지역의 역사. 현대란 역사학의 시대 구분 가운데 사상(思想)이나 그 밖의 것이 현재와 같다고 생각되는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기를 의미한다. 1945년 광복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경험하였다. 미국과 소련의 분할 점령으로 인한 분단, 6·25 전쟁, 자본주의의 발전, 민주화 운동 등을 경험하는 역사 속에서 성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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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하여 경상남도 하동군을 포함한 한국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6·25 사변이라고도 하며, 국제적으로는 한국전쟁(韓國戰爭)[Korean War, 일부에서는 Korean Civil War라고 주장하기도 함]이라고 한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조인되었고, 현재까지 휴전선에 의해 남북이 분단된 채 휴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195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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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태평양 전쟁 패전을 계기로 경상남도 하동군을 포함한 대한민국 전역이 일제의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난 일.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여 우리 민족의 당면 과제는 자주적 민족 국가 수립을 통한 일제 잔재의 청산과 봉건적 유제의 철폐에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자주적 민족 국가를 건설함으로써 외세에 의한 종속을 탈피하고, 친일파와 민족 반역자를 숙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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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미군정의 양곡 배급 정책의 실패에 맞서기 위해 대구에서 일어난 민중 항쟁이 경상남도 하동군을 비롯하여 전국으로 확산된 사건. 1946년 4월의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 계통 정당, 사회단체에 대한 미군정의 탄압과 함께 조선공산당은 1946년 5월 미소공동위원회가 휴회된 이후 정판사 사건[1946년 5월 조선공산당이 일으킨 지폐 위조 사건] 등으로 미군정의 집중적인 탄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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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6월 좌익 인물들을 전향시켜 별도로 관리하기 위해 경상남도 하동군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국민보도연맹을 조직한 사건. 국민보도연맹[약칭 보도연맹 혹은 보련]은 이승만(李承晩) 정권이 정권 유지를 위해 고안해낸 좌익 포섭 단체였다. 조직 결성의 대외적 명목은 “개선의 여지가 있는 좌익 세력에게 전향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었지만 이승만 정권이 보련을 만든 진정한 목적은 좌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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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등에서 해방 후 치안 유지를 위해 활동했던 우익 청년 단체. 일제의 패망에 따른 행정 공백과 해방 후 좌우익 간의 격렬한 대립 속에서 군대와 경찰력이 부족한 가운데, 치안 유지 및 좌익 세력과의 투쟁에 청년 단체의 역할이 컸다. 9월 1일 이상경·여재규 등이 주축이 되어 대동청년회를 조직하였다. 회원 83명이 참여하여 군민을 대상으로 민중 계몽 운동을 전개하며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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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활동한 우익 청년 단체.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1945년 10월 결성된 이승만(李承晩) 중심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김구(金九) 중심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중앙위원회가 1946년 2월에 통합하여 조직된 국민운동 단체다. 모스크바 삼상 회담에서 결정된 신탁 통치안에 반대하는 반탁 운동과 좌익 운동 봉쇄 등을 주요 활동으로 하였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청년연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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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경상남도 하동에서 활동한 우익 여성 단체. 독립촉성애국부인회는 우익 여성단체인 독립촉성부인단과 한국애국부인회가 통합하여 1946년 4월 5일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산하 단체로 발족하였다. 독립촉성애국부인회는 반탁과 좌익 운동 반대, 단정 수립 지지 등과 관련된 활동을 전개하였다. 미군정의 좌익 조직 탄압과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하동군지부의 결성에 힘입어 황학성·이상격·이보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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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50년 6·25 전쟁 때까지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활동했던 공산 비정규군. 빨치산이란 여수·순천 사건의 잔류 반란 세력과 탄압을 받은 좌파 인사들, 6·25 전쟁 후 인민군 잔류 세력이 지리산 등에 입산하여 전개한 공산 게릴라를 이른다. 빨치산이 빨갱이로 통용되는 경우가 있으나 빨치산은 러시아어 파르티잔(partizan), 곧 노동자나 농민들로 조직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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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경상남도 하동군 지역에서 조직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하동 지역 지부. 8·15 해방과 더불어 일제가 물러가자 자주적 민족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움직임이 분출되었다. 일제 강점기 말에 결성된 건국동맹을 기반으로 8월 15일 당일 밤부터 서울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지방에서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산하 조직이 8월 말까지 이미 145개가 설립되었으며 치안대 지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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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0월 19일 남조선국방경비대 소속 제14연대가 전라남도 여수와 순천에서 반란을 일으켜 경상남도 하동군 등에 영향을 미친 사건. 여수·순천 사건은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5·10 총선거에 반대하는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 명령을 받은 국방 경비대 소속 14연대가 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여수와 순천 지역을 점령한 사건이다. 흔히 여순 반란 사건이라고 불렀으나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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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었던 우익 청년 단체. 대한청년단은 대동청년단, 조선민족청년단, 조선청년동맹, 국민회청년단, 대한독립청년단, 서북청년회 등이 대동단결의 뜻을 모아 조직한 단체이다. 총재에 이승만, 최고 위원에 장택상(張澤相)·지청천(池靑天)·전진한(錢鎭漢)·노태준(盧泰俊)·서상천(徐相天)·유진산(柳珍山)·강낙원(姜樂遠)·신성모(申性模) 등이 추대되었다. 대한청년단은 문화·계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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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 설치된 민간 행정 기구.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조선인민공화국으로 재편되자 지방의 건국준비위원회 지부도 인민위원회로 개편되었으며 일시적이지만 관공서를 접수하여 실제 행정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건국준비위원회 경남도지부도 1945년 10월 5일 경남도 인민위원회로 개편되었으며 경상남도 각 지역에서도 인민위원회가 결성되었다. 당시 경상남도에는 1도 3시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