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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804
한자 河東八景
영어의미역 Eight Beautiful Scenery of Hadong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덕현

[개설]

우리나라는 예부터 한 지방의 명승, 곧 아름다운 경치를 묶어서 ‘팔경’(八景) 또는 ‘십경(十景)’이라 부르는 전통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경치가 좋다고 해도 단번에 ‘팔경’이니 ‘십경’이니 하는 명칭이 붙지는 않는다. 이는 오랜 세월 문화적 평가가 누적되고 사람들이 그 의미에 공감하면서 자연스레 붙여지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팔경이란 명칭은 원래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시대부터 명승을 모아서 시로 읊은 ‘팔경시’가 유행했고, 조선 시대에는 그림을 첨부한 ‘팔경도’가 유행하였다. 팔경을 구성하는 명승의 이름은 지명과 그 이름다움을 감상하는 내용을 결합한 것도 있고, 지명만으로 된 것도 있다.

하동 지역의 경우 조선 시대 자료인 읍지에 팔경을 시로 읊거나 팔경을 선정했다는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최근 관광이 활성화되면서 인터넷 자료에 ‘하동팔경’이란 이름이 등장하고는 있으나 그 내용이 일정하지는 않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조선 시대의 시문과 읍지, 그리고 1996년대 발간된 『하동군지』와 하동군 홈페이지를 참고하여 하동군의 경치를 대표할 만한 아름다운 장소와 전망 좋은 여덟 곳을 선정하였다.

최근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하동군의 명소는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청학동 삼성궁이다. 그러나 이들 장소는 근래에 조성된 장소로 역사가 길지 않고, 또 자연 경관이 중심이 되는 명승으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이들 장소는 별도로 팔경의 하나로 설정하지 않고 관련 경치에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하동팔경‘을 구성하고자 한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만든 하동의 지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하동군의 입지를 “산을 지고 바다에 임했다[負山枕海]”라고 하였고, 그 경치를 “한쪽 변은 넓디넓은 푸른 바다와 닿았고, 삼면은 높고 높은 푸른 산이 솟아 있다[一邊浩浩連滄海, 三面峨峨聳碧山].”고 하였다. 지리산 줄기에 삼면이 둘러싸여 있고, 그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물이 섬진강을 이루어 남해 바다와 연결되어 있는 하동의 입지 특성을 말한 것이다. 지형지세가 이러하니, 하동 경치의 아름다움은 지리산섬진강이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하동 쪽에서 지리산을 유람하면서 감상한 경치에 대하여 조선 후기 학자 허목(許穆)은, “화개동을 따라 ‘쌍계석문’을 보고, 불일폭포에 올라 청학동을 내려다보고, 폭포를 감상하다가 그 감회를 짓는다[從花開洞 觀雙谿石門 因登佛日 俯靑鶴洞 玩瀑布 感懷作]”고 하였다. 지리산 줄기와 계곡에 있는 불일폭포, 쌍계사 석문, 화개 10리 벚꽃길, 삼신봉 청학동 등을 지리산 승경으로 꼽은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악양 들판과 형제봉 능선, ‘하동포구 80리’로 표현되는 섬진강 물길, 하동 송림 백사청송(白沙靑松),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해 한려수도를 내려다보는 ‘금오산 해맞이’ 등을 ‘하동팔경’으로 부르고자 한다.

[제1경 화개동천 10리 벚꽃길]

하동팔경의 첫 번째는 화개동천(花開洞天)부터 시작한다. 화개동천하동군 화개면 탑리에 있는 ‘화개장터’에서 시작하여 쌍계사를 찾아가는 길이다. 지금은 이른바 ‘10리 벚꽃길’로 유명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화개동천으로 알려져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을 비롯한 유학자들의 산수유람 길이었다. 화개동천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쌍계사에서 흘러내리는 화개천을 따라 피어난 봄꽃을 즐기는 아름다운 길임에는 변함이 없다.

화개동천이 시작되는 ‘화개장터’는 하동과 구례, 쌍계사로 통하는 세 갈래 길목에 자리 잡아 번성했던 장터이다.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들이 채취한 더덕·도라지·두릅·고사리 등 산나물들이 화개 골짜기에서 내려오고, 구례 쪽에서는 전라도 장수들의 실·바늘·면경·가위·허리끈·주머니끈·족집게·골백분 등이 넘어왔다. 하동 길에서는 섬진강 하류의 해물 장수들이 김·미역·청각·명태·자반조기·자반고등어 등을 지고 올라와 큰 장이 섰다. 장이 서지 않는 날일지라도 유달리 맑고 시원한 막걸리와 살아서 펄떡펄떡 뛰는 물고기회를 먹을 수 있는 주막이 장터 자리에서 화개 골짜기까지 즐비하게 앉아 있어 화개장터의 명성을 높였다.

김동리(金東里)의 소설 「역마(驛馬)」의 무대가 되었고, 「화개장터」라는 노래가 유명해진 것은 봄날을 유람하는 꽃길뿐 아니라, 서민의 애환을 담은 장터가 자리했기 때문이다. 마치 꿈길과도 같은 벚꽃길은 사랑하는 청춘 남녀가 두 손을 꼭 잡고 걸으면 백년해로 한다고 하여 일명 ‘혼례길’이라고도 불린다. 정여창지리산을 유람하고 돌아가던 길에 읊었던 “부드럽게 흔들리는 시냇가 버들과 익어 가는 보리밭”으로 이루어진 계곡 풍경은 이제 하동녹차 밭으로 바뀌었고, 『어우야담(於于野談)』의 작자 유몽인(柳夢寅)이 “어린애도 흰 사슴을 몰고 아녀자도 단약(丹藥)을 만들 줄 안다.”고 칭송했던 화개골은 연중 관광객으로 붐비는 국민적 경승지가 되었다.

[제2경 쌍계 석문]

화개동천을 따라 걷다 보면 쌍계사에 도달하게 된다.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쌍계사화개동천을 약 5㎞ 올라와 신흥사 쪽에서 내려오는 화개천불일암에서 내려오는 두 줄기 물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쌍계사라는 이름도 두 시내가 만난다는 의미이다. 속세의 시비 소리를 모두 막아 버릴 듯 우렁찬 소리를 내는 시내에 걸쳐진 쌍계교를 건너 조금 올라가면 길목 좌우에 큰 바위 두 개와 나무 장승 2기가 문지기처럼 쌍계사를 지키고 있다. 바위 양쪽에 각각 ‘쌍계(雙溪)’와 ‘석문(石門)’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지팡이 끝으로 쓴 글씨라 한다.

쌍계사는 722년(성덕왕 21)에 의상대사(義湘大師)의 제자인 삼법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중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올 때 “중국 선종 불교 제6대조인 육조대사[혜능(慧能)]의 정상[머리]을 삼신산(三神山) 눈 쌓인 계곡 꽃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을 꾸고 현 쌍계사 자리에 묻고 이름을 옥천사(玉泉寺)라 하였다. 이후 그로부터 120여 년이 지난 840년(문성왕 2) 진감선사(眞鑑禪師)가 중창하여 대가람을 이루었고, 887년(정강왕 2)에 쌍계사로 개명되었다.

쌍계 석문을 지나면 ‘삼신산 쌍계사(三神山雙溪寺)’라는 현판이 걸린 화려한 다포집 일주문이 나오고, 곧바로 문수동자·보현동자[문수동자는 사자를 타고 보현동자는 코끼리를 탔다]를 모신 맞배집 금강문이 나온다. 여기서 작은 시내를 건너 좀 더 들어가면 역시 맞배집인 천왕문이 버티고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누문인 팔영루(八詠樓)와 마주친다. 팔영루를 통과하면 대웅전 영역에 들어선다.

일주문-금강문-천왕문-팔영루-대웅전이 일직선 배치를 이루면서 산비탈 경사를 이용한 낮은 층단으로 연결시켜 문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불국 세계를 한 단계씩 깊숙이 들어서는 느낌을 준다. 쌍계교를 건너 쌍계 석문을 지나 대웅전에 이르는 길은 그리 멀지 않지만, 봄이면 신록,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적막함이 모두 지리산 화개골 깊은 곳에 자리한 대가람의 정취를 전해 준다.

쌍계 석문쌍계사 경치를 노래한 수많은 시문 가운데 조선 전기의 문신 조헌(趙憲)은 “쏟아지는 시원한 시냇물이 만든 푸른 연못을 지나 천 년 전 바위에 새겨진 석문을 바라보며 소나무 숲길을 걸어 옛 가람에 들어서니 석양녘 누각이 가을날 고운 단풍에 안겨 있더라." 하였고, 조선 후기의 시인 이달(李達)은 “두 줄기 시내 안에 들어선 신라 시대 고찰에는 최치원의 비석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쌍계사를 흐르는 물은 무릉도원과 닿아 있고, 거기에 청학이 둥지를 틀고 있구나.” 하고 노래하였다.

[제3경 불일폭포]

쌍계사에서 지리산 쪽으로 올라가면 3㎞ 지점의 높이 600m 위치에 불일폭포가 자리하고 있다. 지리산 불일폭포라고도 하며 지리산 10경의 하나로 상하 2단, 높이 60m의 지리산에서 유일한 대형 폭포이다. 옆에는 고려 후기의 고승 지눌(知訥)이 수도했다는 불일암(佛日庵)이 있다.

불일폭포지리산 깊은 산중의 높은 곳에 있어 시원한 폭포를 바라보는 경치뿐 아니라 전설적 장소인 청학동(靑鶴洞)을 조망하는 장소로 인식되어 왔다. 쌍계사에서 불일폭포에 오르는 길 중간에는 최치원이 학을 부르던 곳이라는 환학대(喚鶴臺)가 있고, 불일평전을 지나 허공에 달린 듯 위험한 잔도(棧道)[절벽과 절벽 사이 사다리처럼 높이 걸쳐 놓은 다리]를 지나면 불일암에 닿는다. 불일암 앞에서 폭포를 감상하는 바위가 완폭대(玩瀑臺)이다. 완폭대에서 남으로 계곡을 내려다보면 동쪽이 청학봉이고 서쪽이 백학봉이다.

옛 시에 “흰 구름이 난간에 기대어 자고, 푸른 학이 하늘 속에 떠 있다” 하여, 깊고 아득한 골짜기에는 청학이 떠 있다고 상상한 것이다.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이곳을 전설상의 청학동으로 간주했음을 알 수 있다. 불일폭포는 암자 불일암과 서로 인접하여 옛날부터 폭포와 암자를 찾아 험한 산길을 무릅쓰고 많은 순례객과 시인·학자들이 찾는 선경(仙境)이었다. 이달은 그 깊고 조용한 정경을 “흰 구름 속에 파묻힌 산속, 만길 골짜기에 송화 가루 날리는 모습”으로 그렸고, 남명(南冥) 조식(曺植)은 “청학이 구름을 뚫고 날아오르고, 시내는 옥구슬 굴리며 속세로 흘러내리는 허물없는 선계(仙界)”라고 감탄하였다.

[제4경 악양 들판과 형제봉 능선]

불일폭포에서 악양 쪽으로 내려오면 드넓은 악양 평야가 펼쳐진다. 악양면은 중국의 명승지 악양루(岳陽樓)의 이름을 옮겨 놓은 곳이다. 지리산 계곡물이 섬진강으로 흘러들면서 보기 드물게 큰 평야를 이루었으니, 중국 양자강 중류의 악양과 동정호(洞庭湖)를 연상하여 이름 붙인 것이리라. 그래서 악양면에는 악양루섬진강을 바라보고 있고, 악양 들판 가운데는 규모는 작지만 동정호가 있다. 또 동정호의 소상팔경(瀟湘八景)의 하나인 ‘평사낙안(平沙落雁)’에서 이름을 취한 평사리도 있다. 평사리박경리(朴景利)의 대하소설 『토지(土地)』의 무대가 되어 유명해지고 소설에 등장하는 ‘최참판댁’도 지어져 관광 명소가 되었다.

중국의 악양루는 그 경치를 읊었던 두보(杜甫)와 이백(李白) 등 시인들의 시문이 유명한데. 그중에도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 서두가 빼어나다. “뛰어난 경치가 동정호에 있도다. 먼 산을 머금고 장강을 삼킨 듯 물결이 호호탕탕(浩浩蕩蕩) 넘실거리고, 그 너비는 남북으로 가로질러 끝이 없다. 아침 햇살과 저녁 어스름에 천만 가지로 기상이 변하니 이것이 악양루의 경치이다.”라고 읊은 동정호의 풍광을 사람들은 지리산과 악양 들판, 그리고 섬진강의 아침 햇살, 저녁 어스름에서 떠올렸을 것이다.

그런데 호숫가 언덕 위에 세워진 성에 다시 높은 누각 건물로 세워진 중국 악양루와는 달리 악양 들판과 섬진강, 그리고 지리산 줄기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이 나오는 곳은 악양들을 감싸고 있는 형제봉 능선이다. 악양 들판과 지리산·섬진강을 한눈에 내다보면서, 먼 산과 굽이치는 섬진강 물길이 어울리고 넓게 펼쳐진 들판에 아침과 저녁으로 나타나는 천만 가지 기상 변화에서 감동적인 경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형제봉 능선인 것이다.

형제봉[1,115m]은 지리산 줄기가 천왕봉에서 제석봉·촛대봉을 거쳐 남부 능선을 타고 내려오다가 산줄기가 섬진강으로 향하는 곳에 있다. 형제봉에서 신선대, 고소산성으로 이어진 구간은 등산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넓게 펼쳐진 악양 들판과 섬진강, 그리고 지리산 남쪽 줄기를 멀리 조망하는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 봄철에는 특히 형제봉 가득 핀 철쭉이 장관을 이룬다.

형제봉 능선이 섬진강을 만나는 험준한 비탈에 고소산성이 있다. 삼국 시대에 쌓았다고 전해지는 고소산성[사적 제151호]은 큰 산줄기를 등지고 앞은 큰 강으로 막혀 섬진강남해 바다로 통하는 뱃길을 장악하는 요충지에 건설된 산성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제 옛날 같은 전략적 의미는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졌지만, 허물어진 성벽에서 섬진강과 악양 들판을 바라보는 감회는 옛날과 다름이 없다.

[제5경 삼신봉 청학동]

형제봉의 오른편,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삼신봉 아래에는 유명한 청학동이 있다. ‘청학’은 중국 문헌에 “태평한 시절과 태평한 땅에서만 나타나고 운다.”는 전설의 새이다. 따라서 청학동은 푸른 학이 서식하는 곳으로, 예부터 도인들의 이상향을 부르는 말이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진주목 편에 “청학동지리산 속에 있다. 주에서 서쪽 147리이다.” 하고, 이인로(李仁老)가 『파한집(破閑集)』에서 “지리산에 들어와 청학동을 찾다가 마침내 이루지 못했다.”고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인로는 “청학동은 매우 좁은 입구를 통과하면 넓게 트인 옥토가 나타나서 곡식을 가꾸기에 알맞은데, 오직 청학이 서식하는 곳이기에 그렇게 부른다. 대개 옛날 속세를 피한 사람이 살던 곳으로 무너진 담이 아직 가시덤불 속에 남아 있다.”라고 하였다. 조식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불일폭포 아래를 청학동으로 보았고, 이중환(李重煥)은 『택리지(擇里志)』에서 악양의 매계(梅溪)를 청학동으로 비정하였다.

최근에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학동마을청학동으로 세상에 알려졌는데, 이 마을은 입지가 이인로가 묘사한 전설상의 깊은 골짜기와 유사하다. 6·25 전쟁 이후 외부와 단절하여 머리를 땋거나 상투를 틀고 흰 한복을 입고 서당에서 훈장에게 한문을 배우는 전통적 생활 방식을 고집하는 ‘도인촌(道人村)’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청학동으로 유명해지고 관광객이 모이게 되었다.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청학동은 높이 1,284m인 삼신봉 바로 아래에 이루어진 널찍한 골짜기에 자리 잡았다. 청학동으로 비정되던 불일암이나 매계, 그리고 세석평전에 비하여 골판이 크다. 또 횡천면에서 약 20㎞[50여 리] 계곡을 오르는 길이 험하여 심산유곡에 숨어 있다는 청학동의 이미지와 흡사하다. 청학동유불선갱정유도교(儒佛仙更定儒道敎)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6·25 전쟁 이후 모여 형성한 마을에서 비롯되었다. 최근에는 ‘삼성궁’이라는 상징적 장소가 조성되기도 했다. 삼성궁의 정식 명칭은 ‘지리산 청학선원 삼성궁(智異山靑鶴仙院三聖宮)’으로 고조선의 소도(蘇塗)를 복원하여 한민족의 성조인 환인·환웅·단군을 모신 배달민족의 성전이라 한다. 이곳을 중심으로 매년 개천 대제와 청학동 단풍제가 열린다.

삼신봉 아래 청학동은 그 역사가 아직 백 년도 되지 못하지만, 온 나라가 도시화·서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전통적 의식과 생활양식을 지키는 마을을 새롭게 만들고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설적 청학동을 현대 사회에서 재현한 사례가 되었다.

[제6경 하동포구 80리]

하동포구 80리’라 불러 온 뱃길은 하동군 금남면의 노량나루에서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가 하동읍을 거쳐 화개면까지 이어지는 섬진강 뱃길이다. “하동포구 80리에 물새가 울고, 하동포구 80리에 달이 뜹니다. 섬호정 댓돌 위에 시를 쓰는 사람은 어느 고향 떠나 온 풍류 낭인고.” 하는 노랫말까지 있어 더욱 정감 있는, 도시와 멀리 떨어진 고요한 강물 길이었다. 지금은 가까이 거대한 광양제철소가 들어서고 전국 제일의 김 맛을 자랑하던 갈사섬 일대도 매립되어 개발되고 있어 하구 쪽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오면, 영호남을 잇는 남해고속도로의 섬진교를 지나면서 동쪽으로는 금오산이 멀리 아련하고 서북쪽으로는 백운산이 구름 속에 졸고 있다. 강가로는 갈대숲이 일렁이고 신방촌 포구가 다가선다. 몇 척의 작은 배가 강물에 한가롭고 봄철이면 재첩을 캐는 아낙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강을 굽이돌면 백사장이 나타나고, 손 장군의 전설이 전해 오는 목도리가 있다. 강 가운데를 더 오르면 오른쪽으로는 절벽이 병풍처럼 서 있고 물빛은 푸르러 깊다. 왼편으로는 원래 넓은 백사장이 펼쳐졌으나 지금은 경지로 바뀌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굽어 오르면 경전선 섬진강 철교와 하동 백사청송(白沙靑松)을 대표하는 노송 숲 하동 송림이 보인다. 이곳이 유명한 하동장이 열렸던 곳이다. 섬진강 수로를 활용하여 전라도와 경상도, 그리고 산지와 바다의 물산이 교류되어 전국 5대 정기 시장의 하나로 꼽혔던 영화로운 옛날이 아련하다.

섬진교를 지나면 오룡정 옛터가 적막하고, 그 언덕 위로 섬호정이 나타난다. 바로 「하동포구 80리」 노랫말의 현장이다. 이곳에서 봄이면 두견새 울음 속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이 떨어져 휘날리고 강 건너 대숲이 바람에 일렁이면 누구나 옛 추억에 젖어든다. 이어서 두꺼비 전설의 섬진(蟾津)나루를 지나면 배꽃 향기 물씬한 배 과수 단지가 있고, 뒷산에는 밤나무로 가득한 백 리 밤골이 보인다. 다앞나루를 지나고 입석나루를 지나면 광활한 악양 평사리 들판이 눈앞에 가득하고, 지리산 형제봉·신선봉이 섬진강에 잠겨 드는 끝머리에 천 년 고성 고소성섬진강 물길을 지킨다.

다시 백사장 사이로 좁은 물길을 오르면 이제 80리길 종점 화개장터가 나타난다. 여기서 물길은 전라남도 구례로 계속되고, 또 화개동천 10리 벚꽃길로 이어진다. 최근 섬진강 80리 뱃길은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대신 국도 19호선을 따라 강변으로 거슬러 오는 드라이브 길이 인기인데, 특히 3월 매화 필 때가 유명하다.

[제7경 하동 송림 백사청송]

하동 송림하동군 하동읍 광평리 섬진강 가 백사장에 조성된 하동의 ‘읍수(邑樹)’이다. 2005년에 천연기념물 제445호로 지정되었다. 하동을 상징하는 ‘백사청송(白沙靑松)의 고장’이란 말은 이 숲에서 연유한다. 곱고 흰 모래밭에 사계절 푸른 소나무 750여 그루가 약 2만 6000㎡ 너른 면적에 노송 숲을 이루고 있다. 1745년(영조 21)에 하동부사 전천상(田天詳)이 바람과 모래를 막고 제방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섬진강 변에 심었다고 한다.

옛적에는 우리나라 많은 읍치에 수해를 방지하고 비보를 목적으로 소나무와 대나무 혹은 활엽수림을 읍수로 강변에 조성하고 엄격하게 관리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 관리가 소홀해지고 대형 인공 제방이 축조되면서 많은 도시에서 읍수는 훼손되고 사라지고 없다. 그럼에도 하동 송림은 300년 가까운 세월을 버티어 오늘날 국내 제일가는 도시 솔숲의 명성을 얻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하동의 크나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숲 안에는 궁도장과 하상정(河上亭)이 자리하고 있는데, 송림은 군내에서 열리는 각종 민속놀이와 주요 행사장으로도 이용되며, 청소년과 어린이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체육 시설과 휴양 시설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어 지역 주민들은 물론 수많은 탐방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제8경 금오산 한려수도 해맞이]

금오산하동군 금남면진교면의 경계에 있다. 국내에 금오산이 여러 곳 있지만, 하동 금오산지리산이 남쪽으로 뻗어 남해 바다를 만나 솟아오른 산이다. ‘금오(金鰲)’는 ‘금자라’를 의미한다. 남해 바다까지 달려온 백두대간이 바다를 만나서 자라처럼 물로 들어가려는 형상을 나타낸 것이다. 높이 849m의 금오산은 고려 시대부터 봉수대가 있었던 곳이다. 금오산 봉수대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다.

남해 부근에는 바다 해맞이를 하는 곳으로 사천 와룡산, 남해 금산 등 여러 곳이 있다. 많은 남해 전망대 가운데, 금오산 해맞이 전망이 특별한 것은 남해 섬들을 가운데 두고 한려해상국립공원 다도해를 사천과 광양 양쪽으로 모두 조망할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북으로 돌아서면 지리산의 주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진 모습을 볼 수 있는 남해안 최고의 바다와 산악 전망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해대교가 바로 아래에 있고 광양만에 제철소와 화력 발전소가 건립되면서 자연과 인공이 어울려 만드는 특별한 전망이 더해졌다. 수평선 너머로 태양이 서서히 올라오면서 현란하게 보였던 광양제철소와 한국남부발전 하동화력발전소의 불빛을 순식간에 무색하게 만들어 버리는 광경을 직접 확인하면 인위(人爲)의 덧없음과 대자연의 위대함을 절감하게 된다. 저녁이면 광양만에 솟은 거대한 굴뚝 위로 펼쳐지는 일몰도 눈부시다. 휘영청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강진만 저편 와룡산 능선이 은은한 달빛에 실루엣으로 드러나고 남해의 작고 큰 섬들은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듯 더 뚜렷해진다.

금오산 아래는 ‘육지의 이순신(李舜臣)’으로 불렸던 정기룡(鄭起龍)의 출생지이다. 그를 기리는 경충사(景忠祠)가 있는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금오산 등산로이다. 경충사를 지나 금오산을 오르면, 육전의 영웅 정기룡의 출생지와 해전의 영웅 이순신의 전몰지가 노량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며 역사의 우연을 생각하게 된다.

금오산 ‘해맞이공원’에 올라 노량해협의 남해대교이순신이 전몰한 관음포(觀音浦) 앞바다를 바라보면, 400여 년 전 왜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필사의 노량해전으로 임진전란을 마무리한 이순신의 호령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래서 하동 금오산 해맞이는 자연과 인공이 어울리고, 또 400여 년 전 구국의 육·해전 영웅들의 자랑스러운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장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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