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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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하홍도의 문집.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중원(重遠), 호는 겸재(謙齋)이다. 인조반정 이후 남명학파(南冥學派)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인조반정 이후 벼슬에 추천을 받았으나 사퇴하고 깊은 산속에 머물며 정자를 지어 영귀대(詠歸臺)라 하고 학문에 힘썼다. 남명(南冥) 조식(曺植) 사후에 남명학파가 약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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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확인된 전근대에 간행되거나 필사된 서책 유형의 사료. 고서의 개념은 그 분류 시점을 어디로 하는가에 따라 상당한 인식의 차이를 드러낸다. 한국고서동우회에서는 고서의 기준 시점을 1959년 이전에 출판된 책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인쇄문화사에서는 1910년을 기준으로 직접 쓰고 베끼고 목판을 새기고 활자로 찍어낸 모든 책으로 보고 있다. 고서는 내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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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에 있는 개항기 정기(鄭夔)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실. 귀후재(歸厚齋)는 이 고장에 처음으로 입향한 정기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지었다. 정기의 자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율리(栗里)이다. 영일 정씨(迎日鄭氏)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예이며, 젊어서부터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문하에서 배웠다. 겸재가 왕에게 사은소(謝恩疏)를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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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에 있는 개항기 정기(鄭夔)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실. 귀후재(歸厚齋)는 이 고장에 처음으로 입향한 정기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지었다. 정기의 자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율리(栗里)이다. 영일 정씨(迎日鄭氏)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예이며, 젊어서부터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문하에서 배웠다. 겸재가 왕에게 사은소(謝恩疏)를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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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증조할아버지는 봉산군수를 역임한 백암(白巖) 김대명(金大鳴)[1536~1603]이며, 할아버지는 김용익(金龍翼)이다. 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을 지낸 김충립(金忠立)이며, 어머니는 예조참판을 역임한 지족당(知足堂) 박명부(朴明榑)[1571~1639]의 딸인 밀양 박씨(密陽朴氏)다.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처는 익찬(翊贊)을 지낸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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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대집(大集), 호는 주담(珠潭). 고조할아버지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 백암(白巖) 김대명(金大鳴)[1536~1603]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용익(金龍翼)이며, 할아버지는 김충립(金忠立)이다. 아버지는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문인 삼함재(三緘齋) 김명겸(金命兼)[1635~1689]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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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의 열녀. 본관은 진양(晉陽).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진문(河晉文)이다. 남편은 박이한(朴而翰)으로,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박이한 처 진양 하씨는 시집간 지 한 달 만에 남편 박이한이 독사에 물려 죽자, 독사가 나타난 곳으로 가서 슬피 울며 이틀을 기다려 독사를 잡아 물어서 씹어 죽이고는 시신을 입관한 뒤에 목을 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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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나 사적(事蹟)을 기념하기 위해서 돌·금속·도기·나무 등에 글을 새겨 세워놓은 경상남도 하동군의 여러 기념물. 비는 재료에 따라 석비(石碑)·목비(木碑)·철비(鐵碑) 등으로 분류된다. 비는 흔히 비석이라고 하듯이 현존하는 기념물 형태의 비는 거의 모두 석비이다. 석비는 형태에 따라 비(碑)[위가 네모난 형태]와 갈(碣)[위가 둥근 형태]로 나눌 수 있으나 총칭하여 비갈(碑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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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안계리에 걸쳐 있는 산. 본디 이름은 가사산(佳士山)인데, 산의 형상이 아름다운 선비의 모습을 닮았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출신으로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학풍을 이어받은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가 이 산기슭에 모한재(慕寒齋)를 지어 제자들을 가르친 이후 사림산(士林山)이라고 불렀다. 사림산[573.8m]~흰덤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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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김명겸의 시문집. 김명겸(金命兼)[1635~1689]의 호는 삼함재이다. 겸재 하홍도의 문인이며, 남명 문인 백암 김대명의 증손이다. 아들 주담(珠潭) 김성운(金聖運)[1673~1730]과 함께 대를 이어 남명학파를 주도하였다. 김명겸의 6세손 김익규(金翊奎)의 발문에 의하면, 김익규가 가전되어 오던 난고를 그 손자 김정주(金廷柱)로 하여금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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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학자 하철의 실기(實紀). 하철(河澈)[1635-1704]의 호는 설창(雪牕)이다. 겸재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아우 낙와(樂窩) 하홍달(河弘達)의 아들로, 하홍도의 학문을 이어 17세기 후반 경상남도 하동 지역의 학계를 주도하였던 인물이다. 후손 하재도(河載圖)의 발문에 의하면, 원래 4책의 유고 및 만시와 제문, 행장 등이 종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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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안계리(安溪里)라는 명칭은 안계마을에서 유래되었다. 예전에 안계(安鷄)라고 불렀는데, 풍수지리상 닭이 알[마을 앞 똥뫼]을 품고 있는 형국이므로 일컬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뒤에 안계(安溪)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종화면 안계동(安溪洞)이 가종면 안계리가 되었고, 1929년 옥종면 안계리로 통합·개편되었다. 서쪽으로 사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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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 있는 수령 약 400년의 보호수. 은행나무는 흔히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중국이 원산지이며, 중국에서 불교와 유교가 전해져 올 때 함께 들어 왔다고 전해진다. 은행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암수 딴 몸이다. 높이 20~30m에 이르며, 5월경에 지름 3㎜ 내외의 아주 작은 꽃이 피므로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수꽃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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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행정 구역. 옥동면(玉東面)의 ‘옥’자와 가종면(加宗面)의 ‘종’자를 따서 옥종면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운곡면(雲谷面)의 청룡동(靑龍洞)·양구동(良邱洞)·병천동(屛川洞)·원해동(遠海洞)·신촌동(新村洞), 종화면(宗化面)의 종화동(宗化洞)·안계동(安溪洞)·문암동(文巖洞)·대정동(大井洞)·월횡동(月橫洞), 가서면(加西面)의 중태동(中台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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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지역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1. 16세기 하동군의 유학자를 출생 시기별로 살펴보면 우선 가장 앞선 시기의 인물로 지족당(知足堂) 조지서(趙之瑞)[1454~1504]를 들 수 있다. 조지서는 연산군(燕山君)이 세자로 있을 때 스승의 직책을 맡아 엄격하게 지도하다가 미움을 사게 되어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조지서는 연산군이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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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경상남도 하동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아직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규모가 작은 속읍(屬邑)이 적지 않게 존재하였다. 태종 대에는 이런 고을들을 두세 개씩 통합하여 수령을 파견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동현과 남해현은 이미 수령이 파견되어 있는 고을이었지만, 1414년(태종 14) 8월 두 고을을 합쳐 하남현(河南縣)으로 개칭하였다가 이듬해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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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의 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산해(山海)·방장산인(方丈山人)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생원 조안습(曺安習)이고, 할아버지는 봉사(奉事) 조영(曺永)[1428~1511]이며, 아버지는 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 조언형(曺彦亨)[1469~1526]이다. 증조할머니는 강성 문씨(江城文氏)로 삼우당(三憂堂) 문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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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이루어지는 신앙 행위의 총칭. 종교는 신 또는 진리로 표현되는 절대적인 존재자를 숭배하며 근본적이라 믿는 것을 확고한 신념으로 받아들인다. 한국의 종교는 고대 무속 신앙으로부터 출발하여, 삼국 시대에는 유교, 불교, 도교가 수용되었으며 고려 시대에는 불교가 국교였을 정도로 크게 성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유교가 국교가 되었으며, 조선 후기에 서양의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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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종화리에 있던 조선 후기의 서원. 종천서원(宗川書院)은 본래 하동군 옥종면 종화리에 있었는데, 훼철된 후에 안계리 안계마을에 있는 모한재(慕寒齋)에 서원의 현판이 옮겨져 걸려 있다. 매년 음력 3월 10일 모한재에서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석채례(釋菜禮)를 지내며, 목판을 비롯하여 미수(眉叟) 허목(許穆)과 남구만(南九萬)의 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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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종화리라는 명칭은 자연마을인 종화마을에서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 종화면이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종화면 종화동(宗化洞)과 가서면 원계동(元溪洞) 일부가 가종면 종화리가 되었고, 1929년 옥종면 종화리로 개편되었다. 서쪽으로 정개산(鼎蓋山)을 등지고, 정개산에서 발원한 종화천(宗化川)이 동쪽으로 흐르다가 덕천강으로 흘러든다.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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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공진·하진·하성 등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흔히 진양 하씨가 익숙하지만 근래에 들어 진주 하씨(晉州河氏)로 칭하는 경우가 많다. 진주의 토성이자 명문인 진양 하씨는 서로 간의 세계가 밝혀지지 않은 하공진(河拱辰)·하진(河珍)·하성(河誠) 세 계열이 이어져 오고 있다. 고려 초·중기 이전의 선계가 확인되고 있지 않다. 물론 진양 하씨가 시조를 달리한다는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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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청언(淸彦), 호는 국헌(菊軒)이다. 사직(司直)을 지낸 하진(河珍)의 후손으로, 고조할아버지는 낙와(樂窩) 하홍달(河弘達)[1603~1651]이다. 하홍달은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아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설창(雪牕) 하철(河澈)[1635~1704]이며, 할아버지는 선전관청선전관 하덕원(河德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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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윤여(潤汝), 호는 월촌(月村).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1377~1438]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하진희(河晉熙)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하의일(河義一)이며, 할아버지는 하덕광(河德廣)이다. 아버지는 하석흥(河錫興)이고, 어머니는 강주우(姜周祐)의 딸 진양 강씨(晉陽姜氏)이다. 전처는 윤택귀(尹宅龜)의 딸 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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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관부(寬夫), 호는 괴와(愧窩)·괴전와(愧全窩). 증조할아버지는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이고, 할아버지는 하영(河泳)이며, 아버지는 하덕장(河德長)이다. 모두 학문과 행실이 뛰어났다. 어머니는 김세중(金世重)의 딸인 선산 김씨(善山金氏)이다. 전처는 조봉세(趙奉世)의 딸인 파산 조씨(巴山趙氏)이며, 후처는 강시흥(姜始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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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진숙(晉叔), 호는 한계(寒溪). 사직(司直)을 지낸 하진(河珍)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낙와(樂窩) 하홍달(河弘達)[1603~1651]이고, 하홍달은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아우이다. 할아버지는 설창(雪牕) 하철(河澈)[1635~1704]이며, 아버지는 사헌부지평에 증직된 양정재(養正齋)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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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하덕망(河德望)[1664~1743]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어머니가 병들어 위독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여 소생시킨 일도 있다. 부모의 상을 모두 마친 후, 과거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참된 학문에 매진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연못을 파서 연꽃을 심고 그 곁에 정자를 지어 ‘광영정(光影亭)’이라 하였고, 서재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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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도경(道卿). 사직(司直)을 지낸 하진(河珍)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에 증직된 하광국(河光國)이며, 할아버지는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증직된 낙와(樂窩) 하홍달(河弘達)[1603~1651]이다. 하홍달은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아우이다. 아버지는 사헌부 대사헌(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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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하홍도(河弘度)를 기리는 사당. 모한재(慕寒齋)는 겸재(謙齋) 하홍도[1593~1666]가 학문을 갈고 닦으며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며,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을 비롯한 당대의 유학자들과 교류하던 곳이기도 하다. 겸재 하홍도는 벼슬을 단념하고 재야에서 공부하며 실천하였던 당대의 대표적인 유학자 중 한 사람이며,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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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진주에서 이름난 마을을 꼽을 때 “첫 번째가 안계(安溪)요, 두 번째가 원당(元堂)이요, 세 번째가 사월(沙月)이다.”라고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지금의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안계마을이 진주목(晉州牧)에 속했기 때문에 진주의 으뜸가는 명촌(名村)으로 일컬어졌던 것이다. 안계마을이 그런 명성을 얻은 것은 풍경이 수려하고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된 곳이기 때문이다. 『옥종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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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와 학맥에 관해 서술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간적 범위를 어디까지로 제한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유학자의 정의를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가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므로 위의 두 가지 범위와 기준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하동의 유학자를 규정하였다. 첫째, 시간적 범위는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은 조선의 건국으로부터 그 운명이 다하는 시점인 개항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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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자도(子導). 호는 담헌(澹軒). 낙와(樂窩) 하홍달(河弘達)[1603~1651]과 설창(雪牕) 하철(河澈)[1635~1704]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하재원(河在源)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하상호(河相灝)이며, 할아버지는 니곡(尼谷) 하응로(河應魯)[1848~1916]이다. 아버지는 사와(士窩) 하재도(河載圖)[1869~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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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학부(學夫), 호는 니곡(尼谷), 초명은 하성로(河性魯). 하홍도(河弘度)의 동생인 하홍달(河弘達)의 8세손이다. 고조할아버지 하달성(河達聖)은 호가 국헌(菊軒)인데, 성품이 강개하고 절개가 있어 종천서원의 치욕을 설욕했다. 증조할아버지는 하석봉(河錫鳳)이고, 할아버지는 하재원(河在源)이다. 아버지는 하상호(河相灝)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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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희문(羲文), 호는 사와(士窩). 사직(司直)을 지낸 하진(河珍)의 후손이다.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동생 낙와(樂窩) 하홍달(河弘達)[1603~1651]의 9세손이며, 설창(雪牕) 하철(河澈)[1635~1704]의 8세손이다. 5대조 국헌(菊軒) 하달성(河達聖)[1734~1791]은 ‘종천서원 원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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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백응(伯應), 호는 설창(雪牕)이다. 고려 시대 사직(司直)을 지낸 하진(河珍)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참봉(參奉) 하철부(河哲夫)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봉직랑(奉直郞) 하무제(河無際)이며, 할아버지는 사헌부집의에 증직된 하광국(河光國)이다. 아버지는 낙와(樂窩) 하홍달(河弘達)[1603~1651]이며, 어머니는 유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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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치원(致遠), 호는 낙와(樂窩)이다. 진양 하씨의 시조는 고려 시대 사직(司直)을 지낸 하진(河珍)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9세를 내려와 하즙(河楫)이 현달하여 진주부원군에 봉해졌는데, 시호는 원정(元正)이다. 11대조는 하윤원(河允源)으로 역시 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10대조는 하자종(河自宗)으로 호는 목옹(木翁)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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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학자. 하홍도(河弘度)의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중원(重遠), 호는 겸재(謙齋)로 진양 하씨이다. 진양 하씨의 시조는 고려 시대 사직(司直)을 지낸 하진(河珍)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9세를 내려와 하즙(河楫)이 현달하여 진주부원군에 봉해졌는데, 시호는 원정(元正)이다. 11대조는 하윤원(河允源)으로 역시 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10대조는 하자종(河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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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하홍도(河弘度)의 행적을 기리는 비. 세칭(世稱) ‘남명 선생 후 일인자’라고 불렸던 겸재(謙齋) 하홍도는 1593년(선조 26) 지금의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서 태어났다. 거처하는 곳에 ‘겸재(謙齋)’라고 스스로 호를 지어 벽 위에 글씨로 써두고 겸괘도(謙卦圖)와 그와 관련한 해설을 그림으로 그려 아래에 붙였다. 하홍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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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에 있는 김성일(金誠一)의 유허지. 학봉(鶴峰) 김성일[1538~1593]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1592년 4월 11일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임명되었다. 전쟁이 터지자 초유사(招諭使)가 되어 흩어진 관병을 수습하고 경상도 일대의 의병을 일으키는 데 진력하였다. 이어 경상우도관찰사로 임명되자, 왜군의 호남 진출로가 되는 진주성 방어 전략을 지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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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및 주변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변(子變), 호는 조은(釣隱), 초명은 한몽인(韓夢寅)이다. 고조할아버지는 한성판관을 지낸 한사무(韓士武)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돈암(遯庵) 한승리(韓承利)이며, 할아버지는 성균관사성을 지낸 한여철(韓汝哲)이다.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참여한 한계(韓誡)이며, 어머니는 현감 허주(許鑄)의 딸 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