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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253
한자 平沙驛
영어의미역 Pyongsa Station
이칭/별칭 고소역(古蘇驛)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근대/개항기
집필자 박용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폐지 시기/일시 1895년연표보기

[정의]

고려 시대부터 1895년까지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제정 경위 및 목적]

역참(驛站)은 육로의 운송을 담당하는 교통 기관으로서 중앙과 지방 관서 간의 공문서 전달, 어사와 관리의 왕래 및 숙박, 관물(官物)의 수송을 돕기 위한 기관으로 설치되었다. 평사역(平沙驛)은 경상남도 서부 지역과 수도를 연결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병지에는 산남도(山南道) 소속 역으로 되어 있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사근도(沙斤道) 소속으로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진주목에 속해 있다가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북쪽으로 40리에 있는데 진주로부터 와서 소속되었다”고 되어 있다.

『하동부읍지(河東府邑誌)』에는 “부의 서쪽 30리에 있고 동쪽 횡포역(橫浦驛)과의 거리는 50리이고 서쪽 전라도 구례의 잔수역(潺樹驛)은 70리이다. 중마(中馬)는 1필이고 복마(卜馬)[짐 싣는 말]는 4필이며 역리(驛吏)는 20명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동지』에는 “군의 서쪽 30리에 있다. 역리가 20명이요, 중마가 1필이며 하마(下馬)가 4필이다”라 되어 있다.

[내용]

넓이 19만 8347㎡ 규모로 일명 고소역(古蘇驛)이라고도 하였다. 고려 때 사근도에 속하였고, 고려 산남도 28역 중의 하나이었다. 1660년(현종 1)경 20호 87명이 살았다.

[변천]

평사역은 고려 시대에 처음 설치된 것으로 보이며, 고려의 22개 역도 중 경상남도 서부 지역에 해당하는 산남도에 악양의 역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경상 우도의 사근도에 속하였으며, 처음에는 진주 관내에 있다가 뒤에 하동 관내가 되었다. 하동의 역으로는 평사역 외에 율원역(栗原驛), 마전역(馬田驛), 횡포역이 있어 경상남도 서부의 도로망을 형성하였다. 평사역은 1895년(고종 32)까지 계속 역으로서 구실을 하였으나, 말 및 역리의 수를 볼 때 작은 규모의 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역참은 전근대 시대 교통과 통신을 담당하던 중요한 시설이었다. 이런 시설이 악양면 평사리에 있었다는 사실은 이 지역이 당시 지리적 측면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음을 말해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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