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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592
한자 河東烏川鄭氏旌閭閣
영어의미역 Mount of Ocheon Jeong Clan in Daegok-ri, Hadong
이칭/별칭 오천 정씨 정려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 산152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성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9년 3월 12일연표보기 - 하동 오천정씨 정려각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61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하동 오천정씨 정려각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건립 시기/일시 1507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734년연표보기
이전 시기/일시 1760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841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 산152 지도보기
성격 정려각
양식 맞배지붕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임천 조씨 지족당파 문중
관리자 임천 조씨 지족당파 문중[조한철, 조기철]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열부 오천 정씨의 정려각.

[개설]

오천 정씨(烏川鄭氏)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증손인 생원 윤관(允寬)의 딸이다. 남편인 지족(知足) 조지서(趙之瑞)[1454~1504]가 갑자사화 때 화를 당한 뒤 홀로 젖먹이 두 아이를 훌륭히 키웠다. 신주(神主)를 등에 지고 초야를 떠돌아다니면서 온갖 어렵고 험난한 일을 겪으면서도 아침저녁으로 상식(上食)을 그만두지 않고 남편의 삼년상을 마쳤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 이후 조정에서는 조지서의 관작을 추증하였다.

[위치]

하동 오천정씨 정려각(河東大谷里烏川鄭氏旌閭閣)하동군 옥종면 대곡리 동곡마을 재양곡(齋養谷)에 위치한다. 하동군 옥종면 소재지에서 사천시 곤명면 방향으로 1㎞쯤 가다 보면 우측으로 옥산서원(玉山書院)이 자리하고 있다. 옥산서원에서 좌측 도로를 따라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 동곡마을 방향으로 가다 보면 대곡리 들판이 나오는데, 들판 남서쪽 야트막한 산 둔덕에 하동 오천정씨 정려각이 자리하고 있다.

하동 오천정씨 정려각 북쪽 300m 이내에 오천 정씨의 묘소와 남편 조지서, 시부의 묘소가 있다. 「동곡정려중건기(棟谷旌閭重建記)」를 보면, 하동 오천정씨 정려각이 있는 곳에 예전에는 사천시 곤명면으로 통하는 대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변천]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숙부인 진주목사 이우오천 정씨의 절개와 의리를 갖추어 조정에 올려 1507년(중종 2) 정문(旌門)이 내려졌다. 정문은 정수역 역관 앞에 세워졌는데, 이는 1558년(명종 13)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이 지리산[1,915m]을 유람하며 남긴 「지리산기(智異山記)」에도 나와 있다.

이후 정문이 무너져 정려의 판각만 자손이 보관하다 판각마저도 썩고 글자가 흐릿해지자, 1734년(영조 10) 8세손 조명진(趙明震)이 정려각을 세우고 판액을 제작하였다. 그 내용은 「정려중건기(旌閭重建記)」를 통해 알 수 있으며, 현재 전해지는 판액은 이때 제작된 것이다.

1760년(영조 36) 9세손 조덕상(趙德常)이 현 위치로 하동 오천정씨 정려각을 옮겨 중건하였다. 정려각이 있는 곳이 너무 궁벽해 큰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가와서 예를 표하기 어려웠고, 또 정려각이 퇴락하였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동곡정려중건기」를 통해 알 수 있다. 1841년(헌종 7) 다시 후손들이 힘을 모아 정려각을 중수하였으며, 이 내용은 1845년(헌종 11) 10세손 조학점(趙學點)의 「정려중수기(旌閭重修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기둥과 도리, 포부재 등에 부식이 심하여 2010년에도 전면 해체하여 보수하였다.

[형태]

하동 오천정씨 정려각은 북쪽을 향해 자리 잡고 있으며, 주위를 담장이 감싸고 있다. 앞쪽으로 조그마한 개울이 흐르며, 주변에는 넓은 들판이 형성되어 있다. 정려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형태로, 한식 기와 목조 건축물이다. 정면과 측면이 1칸이지만 가로 2.34m×세로 2.16m로 실제 길이는 차이가 있다. 조선 시대 정려각의 형태를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으며, 규모에 비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굵은 목재를 사용하였다.

정려각 내에는 1734년(영조 10)에 제작된 판액과 「정려중건기」, 1760년(영조 36)의 「동곡정려중건기」, 1845년의 「정려중수기」 등이 목판으로 제작되어 보관되고 있다. 판액에는 “열녀 중훈대부 행홍문관응교 세자시강원보덕 증통정대부 승정원도승지 조지서 처 숙부인 오천정씨지려. 1507년(중종 2) 정묘년에 정려 내릴 것을 명하였고, 1515년(중종 10) 갑인년에 중건하였다[烈女中訓大夫行弘文館應敎世子侍講院輔德贈通政大夫承政院道承旨趙之瑞妻淑夫人烏川鄭氏之閭 中宗二秊丁卯命施閭當宁十秊甲寅重建]”라고 쓰여 있다.

[현황]

2011년 현재 하동 오천정씨 정려각은 임천 조씨(林川趙氏) 지족당파 문중 소유로 임천 조씨 지족당파 문중의 조한철과 조기철이 관리하고 있다. 2009년 3월 12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6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문화재 보호 구역은 2필지 107.46㎡이다.

[의의와 평가]

하동 오천정씨 정려각은 남편 조지서의 억울한 죽음으로 온갖 고통을 겪으면서도 절개와 의리를 잃지 않은 오천 정씨를 기리는 정려이다. 후손들이 선조의 덕을 이어받아 자자손손 물려주고자 한 문화유산으로서, 전통문화에 대한 교육적 가치가 높다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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