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이경인 효행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609
한자 李慶仁孝行碑
영어의미역 Monument to the Filial Piety of Yi Gyeongin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590-24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박용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76년연표보기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831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590-24 지도보기
성격 효행비
관련 인물 이경인(李慶仁)|김황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너비, 두께) 125㎝[높이]|40㎝[너비]|17㎝[두께]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있는 효자 이경인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건립 경위]

이경인(李慶仁)은 1831년(순조 31) 43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1844년(헌종 10) 그의 효행을 기리려는 집안사람들과 고을 사람들이 나라에 효자비를 건립해 줄 것을 청원하였다. 1876년(고종 13) 나라의 허락이 내리자 후손 및 고을 사람들이 비를 건립하였다.

[형태]

이경인 효행비(李慶仁孝行碑)는 위가 뾰족하고 아래는 네모진 규형(圭形)으로 화강암이다. 팔자형의 비석 덮개가 있으며 높이 125㎝, 너비 40㎝, 두께 17㎝이다.

[금석문]

비의 정면에는 ‘효자 전주 이공경인 실행비(孝子全州李公慶仁實行碑)’라 되어 있다. 비문은 김황이 썼는데, 효자의 행적이 드러나 있다. 이경인은 아버지가 병이 들자 마당에 제단을 쌓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하늘에 빌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시묘를 살려고 하였으나, 어머니의 나이가 많아 곁을 떠날 수 없었다. 이에 3년간 비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 통곡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효자가 다니는 길을 닦아 주어 ‘효자길’이라 하고 그 효성을 위로하였다.

[의의와 평가]

동네 사람들이 길을 닦아 줄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던 이경인의 효행 사례는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