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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608
한자 王旨煥孝行碑
영어의미역 Monument to the Filial Piety of Wang Jihwan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신성리 928-2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박용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신성리 928-2 지도보기
성격 효행비
관련 인물 왕지환(王旨煥)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너비, 두께) 150㎝[높이]|50㎝[너비]|22㎝[두께]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신성리에 있는 개항기 효자 왕지환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개설]

왕지환(王旨煥)의 초명은 왕지흥(王旨興)이고, 자는 군은(君恩), 호는 신암(信庵)이다.

[건립 경위]

왕지환의 효행 사실을 고을 사람들이 관청에 올려 관청에서 기특하게 여겼으나, 시절이 바뀌어 표창을 못하였다. 이에 왕지환이 세상을 떠난 지 40년 만에 왕지환 효행비(王旨煥孝行碑)를 세워 귀감을 삼고자 하였다.

[위치]

왕지환 효행비하동군 악양면 신성리 928-2번지 상두마을 어귀 지방도 4호선 변에 있다.

[형태]

팔각지붕의 덮개와 받침대가 있으며, 비석의 전체는 화강암이다. 비석의 내면에 원형의 화강암 기둥이 있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150㎝, 너비 50㎝, 두께 22㎝이다.

[금석문]

비의 정면에는 ‘효자 신암왕공 실적비(孝子信庵王公實蹟碑)’라 되어 있다. 비문에 보이는 효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왕지환은 평소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을 뿐 아니라 집에 불이 나 어머니가 옷가지와 양식을 끌어내다가 연기에 질식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구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저녁으로 성묘하기를 죽을 때까지 하였다. 아들이 묘 옆에 여막을 만들어 드려 아버지의 효행을 도왔다.

[의의와 평가]

부모의 생시는 물론 사후에도 효를 극진히 행한 왕지환의 효행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3.01.08 항목명 수정 <변경 전> 왕자환(王者煥) <변경 후> 왕지환(王旨煥)
이용자 의견
관** 디지털하동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1.08
왕** 관리자님 감사합니다.
알려주신 이메일로 관련 자료(사진 4장)를 전송하였습니다.
부족한 부문이 있으면 저 이메일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2013.01.07
관** 디지털하동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문 촬영분과 왕씨 족보 사진을 (pek0209@aks.ac.kr)로 보내주시면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1.07
왕** 관리자님 말씀대로 "내가 쓰는 백과"로 오자에 대한 자료를 올리려고 하니 회원으로
가입해야 하는데 지금은 개편 관계로 회원가입이 불가능 합니다.
관리자님의 이메일을 알려주시면 관련 이미지를 전송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12.26
관** 디지털하동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문 촬영분과 왕씨 족보 사진을 내가 쓰는 백과로 올려주시면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12.18
왕** 王者煥(왕자환)이 아닙니다.
王旨煥(왕지환)입니다.
필요하시면 비문 촬영분과 왕씨 족보 사진을 올릴수 있습니다
201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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