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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613
한자 白樂訓妻孫氏紀蹟碑
영어의미역 Monument to the Filial Piety of Bak Nakhun's Wife Son Cla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 988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용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 988 지도보기
성격 효열비
관련 인물 밀양 손씨(密陽孫氏)|백낙훈(白樂訓)|윤재구(尹再求)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너비, 두께) 155㎝[높이]|50㎝[너비]|24㎝[두께]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에 있는 효열부 밀양 손씨를 기리는 비.

[건립 경위]

밀양 손씨(密陽孫氏)는 남편의 병간호를 극진하게 하고, 남편이 세상을 뜬 후에는 절개를 지키며 길쌈을 하여 시부모를 봉양하였다. 사림이 효열부(孝烈婦) 상을 드높이기 위해 포상하고, 이를 기리는 비를 세웠다.

[형태]

백낙훈 처 손씨 기적비(白樂訓妻孫氏紀蹟碑)는 팔각지붕의 덮개와 받침대가 있으며, 비석의 전체는 화강암이다. 비석의 내면에 원형의 화강암 기둥이 있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155㎝, 너비 50㎝, 두께 24㎝이다.

[금석문]

비의 정면에는 ‘효열부 유인 밀양손씨 기적비(孝烈婦孺人密陽孫氏紀蹟碑)’라 되어 있다. 비문의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효열부 밀양 손씨는 어려서 부모의 명을 어기는 일이 없어 효녀라 하였다. 나이 들어 백낙훈(白樂訓)과 혼인하였는데, 남편이 중병에 걸려 낫지 않았다. 손씨는 병의 증상을 알고자 변을 맛보며 자기가 그 고통을 대신하기를 하늘에 빌었다. 남편의 병이 위급해지자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입에 흘려 넣어 며칠을 더 연명하게 하였다. 그러나 끝내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3년 동안 대문 밖을 나서지 않고, 입을 다물어 이[齒]를 보이는 일이 없었다.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기며 길쌈을 하여 시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을 길렀다.

효도는 백 가지 행동의 원천이요, 열행은 여자는 어려서 부모를 따라야 하고 출가하면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으면 자식을 따르는 것이 그중 하나이다. 한 사람이 한 가지도 지키기 어려운데 두 가지를 겸하였으니, 향리가 효열이라 칭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사림이 이에 표창하고 비를 세웠다. 해평 윤씨(海平尹氏) 윤재구(尹再求)가 비문을 지었다.

[의의와 평가]

부모에 대한 효도와 남편에 대한 열행을 행한 밀양 손씨의 행적은 당대뿐 아니라 가족의 붕괴가 가속화되는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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