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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614
한자 李鉉宥妻宋氏行蹟碑
영어의미역 Monument to the Filial Piety of Yi Hyeonyu's Wife Song Clan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병천리 116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용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병천리 116 지도보기
성격 효열비
관련 인물 은진 송씨 송용순(宋龍順)|최인찬(崔寅巑)
크기(높이, 너비, 두께) 135㎝[높이]|50㎝[너비]|20㎝[두께]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병천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효열부 은진 송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건립 경위]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연로한 시부모를 모신 은진 송씨(恩津宋氏)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

[위치]

이현유 처 송씨 행적비(李鉉宥妻宋氏行蹟碑)하동군 옥종면 병천리 116번지 원해마을 지방도 사거리 옆에 있다.

[형태]

비석의 전체는 화강암이며, 팔각지붕의 덮개와 받침대가 있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135㎝, 너비 50㎝, 두께 20㎝이다.

[금석문]

비의 정면에는 ‘효열부 은진 송씨 행적비(孝烈婦恩津宋氏行蹟碑)’라 되어 있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상의 도(道)가 변한 이래로 윤리가 쇠퇴하여 효열(孝烈)이 사라진 지 오래이다. 이 암담한 때를 당하여 몸소 효열을 실천한 이가 있으니, 곧 경상남도 진양 운곡 이씨 가문의 부인인 송용순(宋龍順)이 그분이다. 부인은 을묘년에 송규용(宋奎用)의 장녀로 산청군 옥천면에서 태어나 천품이 정순(貞順)하고 재예(才藝) 또한 출중하여 규방의 교훈을 습득하였다.

17세에 운곡의 명문 재령 이씨 이현유(李鉉宥)에게 출가하여 남편을 공경함은 물론 시아버지 이성노(李星老) 옹과 시어머니 진양 정씨(晉陽鄭氏)를 지성으로 받들었다. 봉제사(奉祭祀)와 접빈객(接賓客)에게 모범이 되므로 시댁과 마을 사람들이 감복하였다. 일제의 학정이 혹심하여 가세 또한 기울어지고 시어머니마저 병들어 누웠다. 침식을 잊고 간호한 보람도 없이 시어머니가 49세로 세상을 떠나자 홀아비가 된 시아버지 봉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강보에 싸인 아들을 키우면서 일본으로 돈 벌러 간 남편의 건강을 빌었으나, 남편이 일본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접하게 되었다. 부인은 남편의 뒤를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시아버지의 간절한 위로의 말에 마음을 바꿨다.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길쌈하여 집안을 일으키고 시아버지와 아들을 위해 생을 바쳤다. 그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다.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의 삭녕(朔寧) 최인찬(崔寅巑)이 글을 지었다.

[의의와 평가]

효열부 은진 송씨 행적비는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시부모를 모신 은진 송씨의 효열을 기린 비석으로 가족 간의 윤리가 쇠퇴한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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