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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청계사 『대방광불화엄경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30004
한자 河東淸溪寺大方廣佛華嚴經疏
분야 종교/불교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길 67-182[안계리 801-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종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635년연표보기 - 하동 청계사 『대방광불화엄경소』 간행
문화재 지정 일시 2014년 3월 20일연표보기 - 하동 청계사 『대방광불화엄경소』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54호로 지정
소장처 청계사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길 67-182[안계리 801-1]
간행처 쌍계사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운수리 208]
성격 불경
편자 징관(澄觀)
권책 119권 40책
행자 6행 15자
규격 15.8㎝[반곽 가로]|20.9㎝[반곽 세로]
어미 대흑구|상하 내향 흑어미
권수제 大方廣佛華嚴經䟽
판심제 華嚴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54호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청수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경.

[개설]

『대방광불화엄경소』는 당(唐)나라의 승려 징관(澄觀)[738~839]이 소(疏)하고 송나라 정원(淨源)이 주해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799년 승려 범수(梵修)가 들여왔으나 어느 시기에 유실되었다. 고려 시대 대각 국사 의천(義天)이 1087년(선종 4) 송(宋)나라에서 다시 들여왔다. 이때 유입된 『대방광불화엄경소』는 징관의 해설에 송의 정원이 다시 주해한 120권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유통되는 『화엄경소』는 이 판본을 모본으로 하고 있다. 하동 청계사 『대방광불화엄경소』는 2014년 3월 20일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54호로 지정되었다.

[형태/서지]

119권 40책의 목판본이다. 표지 서명은 ‘華嚴經(화엄경)’, 권수제(卷首題)는 ‘大方廣佛華嚴經䟽(대방광불화엄경소)’, 판심제는 ‘華嚴(화엄)’이다. 제책의 형태는 오침안선장본(五針眼線裝本)이며 판식은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의 크기는 가로 15.8㎝, 세로 20.9㎝이다. 계선이 있고[有界], 6행 15자로 배열되어 있다. 판심은 대흑구(大黑口)에, 상하 내향 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이며, 종이의 지질은 닥종이이다. 본문에는 약체 구결(口訣) 표시가 묵서로 쓰여 있다.

권1의 본문 각장마다 하단에 ‘근민(仅閔)’, ‘응조(應照)’, ‘조순(祖淳)’, ‘성견(性見)’, ‘조대춘양주(曺大春兩主)’ 등 약 36명의 시주자가 기록되어 있으며, 권2의 본문에도 약 41명의 시주자가 확인된다. 이처럼 40책 전체의 본문 하단에서 시주자들의 이름이 확인된다.

권2의 권말에 “숭정 팔년 사월일 계진인(崇禎八年四月日戒眞印)”이라는 간기가 있어 1635년(인조 13) 송광사에서 중각하여 간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권6의 권말에 “가정 삼십오년 병진 유월일 황해도 서흥지 숭덕산 귀진사 개판(嘉靖三十五年丙辰六月日黃海道瑞興地嵩德山歸眞寺開板)”이라는 간기가 있어 1556년(명종 11) 귀진사에서 개판하였음을 알 수 있다.

권38의 권말에 “가정 삼십구년 경신 맹추일 황해도 문화지 구월산 월출암 개간 서흥지 귀진사 유판(嘉靖三十九年庚申孟秋日黃海道文化地九月山月出庵開刊瑞興地歸眞寺留板)”의 기록으로, 1560년(명종 15) 황해도 구월산 월출암에서 귀진사판으로 개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권47의 권말에 “가정 사십년 신유 맹추일 황해도 서흥지 고덕산 귀진사 유판(嘉靖四十年辛酉孟秋日黃海道瑞興地高德山歸眞寺留板)”이라는 간기가 있어 1561년 귀진사본으로 간행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권50도 권말에 “가정 사십년 신유 팔월일 황해도 서흥지 고덕산 귀진사 간판(嘉靖四十年辛酉八月日黃海道瑞興地高德山歸眞寺刊板)”이라는 기록이 있어 1561년(명종 16) 귀진사 간판으로 확인된다.

권54의 권말에 “가정 사십일년 임술 정월 십팔일(靖四十一年壬戌正月十八日)”이라는 간기가 있어 1562년(명종 17) 간행본으로 확인되며, 권96의 권말에 “가정 사십 일년 임술 칠월일 황해도 서흥지 고덕산 귀진사 개판(嘉靖四十一年壬戌七月日黃海道瑞興地高德山歸眞寺開板)”이라는 기록이 있어 1562년(명종 17) 황해도 귀진사에서 개판하였음을 알 수 있다.

권120의 권말에 “가정 사십삼년 갑자 춘필 황해도 서흥지 고덕산 귀진사 개판(嘉靖四十三年甲子春畢黃海道瑞興地高德山歸進寺開板)”이라는 간기가 있어 1564년(명종 19) 황해도 귀진사에서 개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구성/내용]

하동 청계사 『대방광불화엄경소』 의 가장 큰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권6, 권14, 권38, 권47, 권50, 권96, 권120’의 권말에 간행 기록이 각각 확인되어, 이들 38책은 임진왜란 이전 시기인 귀진사 판본[1556~1564]임을 알 수 있다.

둘째, 귀진사 개판본이 없는 2책[제1책 권1~2. 제4책 권10 등]은 1635년 순천 송광사에서 중각된 판본으로 확인된다. 즉 임진왜란 때 황해도 귀진사가 소실될 당시에 『대방광불화엄경소』의 목판도 함께 소실되었고, 임진왜란 이후인 1635년 순천 송광사에서 중간된 책으로 귀진사 판본의 결본(缺本)을 보완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송광사 판본은 ‘화엄변상도 3판’과 ‘표지 만다라’의 예술성이 빼어나다고 평가된다.

셋째, 각 권의 권말에는 간행록 이외에도 간행 참여자인 시주자와 간자(刊字), 화주(化主)들이 많이 확인된다. 권6의 권말에도 ‘천월(天月)’을 비롯한 약 101명의 시주자와 ‘정환(晶还)’을 비롯한 4명의 간자와 화주 ‘현수(玄秀)’가 확인된다. 권10은 ‘해일(海日)’을 포함한 시주자가 6명으로 확인되며, 권12, 권14, 권38, 권47, 권54, 권96에도 많은 시주자와 간자 등의 명단이 확인된다.

[의의와 평가]

『대방광불화엄경소』는 우리나라에서는 화엄종의 근본 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 사상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하동 청계사 『대방광불화엄경소』와 동일한 간본인 1635년 중각한 송광사 판본은 고려 대학교 도서관과 연세 대학교 도서관 등에서 확인된다. 하동 청계사 『대방광불화엄경소』 귀진사 판본은 ‘1556년부터 1564년까지’, 송광사 판본은 ‘1635년’이라는 명확한 간행 기록을 확인할 수 있으며 각 권의 권말 사항에 엄청나게 많은 시주자의 명단을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록들이 남아 있다. 또한 인쇄 및 보관 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학술적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 문화재청(http://www.ch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