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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좌 처 광산 김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210
한자 金慶佐妻光山金氏
영어의미역 Gim gyeongjwa's Wife Gwangsan Gim Clan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대덕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권난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추모 시기/일시 1875년 12월연표보기
거주|이주지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대덕리 지도보기
정려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대덕리 지도보기
성격 열녀
성별
본관 광산

[정의]

조선 후기와 개항기 하동의 열녀.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남편은 김경좌(金慶佐)로,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활동 사항]

김경좌광산 김씨는 18세에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대덕리로 시집을 왔다. 효심으로 시부모를 정성껏 모시고 남편에게는 유순했으며 동서 간에는 우애롭게 지냈다. 1871년(고종 8) 봄에 남편이 병에 걸리자 하인을 시키지 않고 몸소 약을 달이고 죽을 쑤어 간병하고, 낫기를 기원하며 한 달 동안 잠 한 숨 자지 않고 방도를 구하러 다녔다. 남편이 위독해져 기절하자 손가락에 피를 내어 입으로 흘려 넣어 며칠간 목숨을 연명하게 했다.

그러다 남편이 죽자 슬픔에 못 이겨 피를 토하면서 형색이 파리해질 정도로 곡하고 기절하는 등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집안사람들이 억지로 먹게 하여 겨우 장례를 치르는 당일까지 버티었다. 장례일 아침 시어머니께 절하고는, 시동생과 세 아들에게 “어머니 봉양을 부탁한다. 나는 지아비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하고는 먹지 않다가 며칠 뒤 50세의 나이로 운명하였다.

[상훈과 추모]

1875년(고종 12) 12월 고종의 명으로 하동군 고전면 대덕리에 정려를 세웠다. 열녀비의 앞면에 ‘김해 김공 경좌 처 열녀 광산 김씨지비(金海金公慶佐妻烈女光山金氏之碑)’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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