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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도로 보는 하동의 옛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805
한자 古地圖-河東-
영어의미역 Old Road of Hadong with the Map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종혁

[개설]

1770년(영조 46)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1712~1781]은 조선의 간선 도로망을 여섯 개의 대로로 구분한 바 있다. 여섯 대로의 출발점은 모두 한성이고, 종착점은 조선반도의 각 극지에 있는 주요 도회이다. 제1로는 개성과 평양을 경유한 후 의주까지 이어지는 의주로이고, 제2로는 원산과 함흥을 경유한 후 경흥 서수라까지 이어지는 경흥로이며, 제3로는 원주와 강릉을 경유한 후 평해[현 울진군 평해읍]까지 이어지는 평해로이다. 제4로는 충주와 대구를 경유한 후 동래까지 이어지는 동래로, 제5로는 수원과 나주를 경유한 후 해남까지 이어지는 해남로, 이어서 해로로 제주까지 이어지는 제주로, 제6로는 양천과 김포를 지나 강화까지 이어지는 강화로이다.

위의 6대로 가운데 각 대로는 여러 지선을 갖고 있었는데, 일부 중요한 분기로가 후대에 대로로 승격하면서 6대로 체제는 19세기 초반 7대로, 중반 9대로, 후반에는 10대로 체제로 변화하였다. 6대로에서 9대로 체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제주로의 삼례역에서 남원-운봉-산청-단성-진주-사천을 경유하여 통영까지 이어지는 통영별로가 대로로 승격하였다.

남원에서는 다시 순천을 경유하여 전라좌수영[여수]까지 이어지는 분기로가 있었으며, 여기에 압록원에서 하동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들어 있었다. 이 분기로는 하동을 지나 남해까지 이어진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 나타난 이 분기로는 ‘압록원(鴨綠院)-구례(求禮)[30리]-석주고진(石柱古鎭)[25리]-용왕연(龍王淵)[5리]-쌍계(雙溪)[10리]-평사역(平沙驛)[10리]-화개동(花開洞)[10리]-진답리(陳沓里)[15리]-하동(河東)[15리]-범조현(範鳥峴)[20리]-노량진(露梁津)[40리]-남해(南海)[40리]’로서, 이중 쌍계에서부터 범조현까지가 하동의 영역에 속한다. 압록원에서 용왕연까지는 구례에 속하고, 노량진은 북안의 곤양과 남안의 남해를 잇는 나루이다.

[전근대 도로망의 중심 축]

경상남도 서쪽 끝에 위치한 하동은 전라남도의 광양·구례와 접한다. 두 도의 접경선이 되는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과 장수군 경계에 있는 팔공산에서 발원하는데, 팔공산에서 이어지는 지리산과 이후 계속되는 낙남정맥이 하동군에서는 섬진강에 임박해 있기 때문에 하천 연안에는 눈에 띌 만큼 인상적인 들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하동은 섬진강의 하류 유역에 속하지만 악양면하동읍 일대의 소규모 충적지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지역이 산지로 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하동의 중심 도로축은 고도가 낮고 기복의 변화가 미약한 섬진강 연안을 따라, 즉 섬진강 유로 방향과 평행하게 나 있다. 이러한 형상은 전근대는 물론 오늘날에도 변화가 없다. 이 길은 현재 국도 19호선[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으로 계승되었다. 1750~176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지도(朝鮮地圖)』(규 16030)의 ‘하동부’를 그린 지도에 이 중심 도로가 붉은색으로 잘 표시되어 있다.

[18세기 하동의 도로망]

1. 『해동지도(海東地圖)』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나타난 하동의 도로망

『여지도서』 ‘보유’ 편에 수록된 하동군 읍지도에는 하동의 도로망이 적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구례에서 내려오는 도로망이 중심축이 되고, 이로부터 동쪽 방향 진주 쪽 낙남정맥을 향해 올라가는 지선 도로망이 하동 전체 도로망의 형상이 된다. 중심 도로의 북쪽에서부터 주요 지선을 소개하면, 화개면 탑리에서 분기하여 쌍계사를 잇는 도로, 악양면 개치마을에서 분기하여 불일암을 잇는 도로, 읍내에서 횡천을 건너 팔조면-동면으로 이어지는 도로, 마지막으로 고현면에서 신선소를 지나 곤양 쪽으로 빠지는 도로 등 모두 네 개의 노선이 표시되었다.

첫 번째 지선은 오늘날 화개면의 중심 도로가 되는 지방도 1023호선, 두 번째 지선은 오늘날 악양면의 중심 도로가 되는 지방도 1003호선, 세 번째 지선은 오늘날 적량면양보면·진교면으로 이어지는 도로로 국도 2호선 및 지방도 1003호선, 네 번째 지선은 오늘날 고전면 일대의 지방 도로로 계승되었다. 이 도로망은 『해동지도』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한편 『여지도서』 본문 중 ‘도로’ 조에는 다음과 같이 하동군의 도로망이 기술되어 있다.

“관아에서 동쪽으로 우치(牛峙)까지 7리이며, 우치에서 공월치(公月峙)까지 10리이고, 공월치에서 황령(黃嶺)까지 15리이며, 황령에서 진주와의 경계까지 5리이다. 남쪽으로 갈록치(渴鹿峙)까지 25리이며, 갈록치에서 곤양과의 경계까지 15리이다. 서쪽으로 화개(花開)까지 40리이며 화개에서 전라도 구례와의 경계까지 5리이다. 북쪽으로 지리산까지 70리이다. 서울까지 957리인데 아흐레 한나절 가는 거리이다. 동북쪽으로 감영까지 330리인데, 사흘 한나절 가는 거리이다. 동쪽으로 병영까지 100리인데, 하루 가는 거리이다. 동쪽으로 통영까지 190리인데, 이틀 가는 거리이다[自官門東距牛峙七里 自牛峙至公月峙十里 自公月峙至黃嶺十五里 自黃嶺至晉州界五里 南距渴鹿峙二十五里 自渴鹿峙至昆陽界十五里 西距花開四十里 自花開至全羅道求禮界五里 北距智異山七十里 距京九百五十七里九日半程 東北距監營三百三十里三日半程 東距統營一百九十里二日程].”

2. 『비변사인 방안지도(備邊司印 方眼地圖)』「영남 지도」(奎12154)에 나타난 하동의 도로망

18세기 중반인 1745~1760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비변사인 방안지도』에는 당시 하동의 주요 도로망이 좀 더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위에서 언급된 간선 도로와 지선 도로가 도로망의 기본축이 되고 있는 점은 같지만 각 지선 도로에서 분기하는 2차 지선 도로가 표시된 점은 다르다. 이 지도는 18세기 군현도 가운데 도로망이 가장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2차 지선은 각 면의 중심지와 평사역·횡보역·마전역·진부진(津夫津)·선소(船所)·해창(海倉)·통창(統倉) 등의 주요 군사·교통 시설뿐 아니라 주요 산봉, 봉산, 사찰, 서원 등으로 이어졌다. 도로의 선은 적색, 청색, 황색으로 달리 채색되어 도로의 등급을 구분한 시도가 엿보인다. 적색은 간선 도로 선을, 청색은 그 지선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19세기 하동의 도로망]

1. 『대동여지도 (大東輿地圖)』[1861]에 나타난 하동의 도로망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대동여지도』에도 하동의 도로망은 구례에서 남해로 이어지는 남북축의 도로선이 중심이 되고 있으며, 평사역에서 진주로 이어지는 길, 전라도 광양에서 섬진강을 건너 하동 읍내와 횡보역을 경유한 후 진주로 이어지는 길, 하동 고읍에서 금오산 북록을 넘어 곤양으로 이어지는 길이 주요 도로망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는 18세기 상황과 다르지 않다.

2. 『구한말 한반도 지형도』[1890년대]에 나타난 하동의 도로망

19세기 말에는 일본 육군 참모본부 간첩대에 의해 「1:50,000 지형도」가 처음 제작되었다. 이 지형도에는 도로가 상위 등급부터 ‘도로(道路)’, ‘연로(聯路)’, ‘간로(間路)’, ‘소로(小路)’로 구분되었는데, 도로는 두 개의 실선으로, 연로는 하나의 실선과 하나의 점선으로, 간로는 두 개의 점선으로, 소로는 하나의 점선으로 표시되었다.

하동에는 ‘도로’가 하나 있었으며, 구례에서 내려와 하동 읍내까지 이어지는 것은 18세기 상황과 동일하다. 이후 ‘도로’는 남해 쪽으로 이어지지 않고 동쪽으로 꺾여 진주를 향한다. 위에서 언급한 『여지도서』 도로 조에 우치와 황령을 넘어 진주로 이어지는 첫 번째 동로(東路)가 이와 같다. 이 길은 오늘날 적량면-횡천면-북천면을 관통하는 국도 2호선으로 계승되었다. 한편 남해로 이어지는 남북 방향의 중심 도로 가운데 하동 읍내 남쪽의 노량진으로 이어지는 노선은 두 번째 등급인 ‘연로’로 표시되어 여전히 하동의 주요 도로망을 구성하고 있었다.

[1910년대 신작로를 정비하다]

조선총독부는 1917년까지 제1기 치도 사업 계획(治道事業計劃)을 완료하고 제2기 치도 사업을 애초 계획한 1922년을 넘어 1938년까지 진행하였다. 일제는 1911년에 경유지 및 시·종점 지역의 중요도에 따라 도로에 등급을 매기고 노폭과 노면, 노변 시설 등에 대한 규칙을 제정했는데, 등급이 가장 높은 1등 도로는 국가 차원의 간선 도로망이었고, 차하의 2등 도로는 지역 내 중심 도로망으로 구축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작성된 「1:50,000 지형도」에는 도로망이 1등 도로, 2등 도로, 달로(達路), 연로(聯路), 간로(間路), 소로(小路)로 구분되어 있다. 1918년에 발행된 지형도에 보면, 하동에는 1등 도로가 없고 2등 도로가 최상위 도로였으며 군내 대부분의 주요 도로망은 달로 및 연로 수준이었다.

1. 2등 도로

1918년에 작성된 「1:50,000 지형도」에 근거하면, 하동의 2등 도로는 전근대에 구례-하동-남해를 잇는 남북 방향과 달리 광양에서 하동을 거쳐 진주로 이어지는 오늘날 국도 2호선의 동서 방향 노선이다. 조선 시대 도로망 구축의 기조가 한성을 중심으로 한 방사형 도로라면 일제 강점기 치도 사업에서의 기본 도로망은 남북축과 동서축을 직교형으로 엮는 것이었음이 하동 도로망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구한말 한반도 지형도』에서 ‘도로’로 표시된 길이 1910년대에 2등 도로로 개수된 것이다.

2등 도로는 하동 읍내에서 우치를 넘어 적량면 동산리에서 황천강 연안을 따라 올라가다가 당시 내횡천면 횡천리에 이른다. 이후는 18세기 『여지도서』에 언급된 황령을 넘는 경로와 달리 여의리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북천면 방화리까지 남록을 따라 우회한 후 곤양천의 지류인 북천천을 따라 동진하다가 사천시 곤명면을 경유하여 진주로 들어간다.

2. 달로

전통 시대 하동군 제1로였던 구례-하동-남해 노선은 1910년대 달로급 도로였다. 구례에서 하동 읍내까지는 섬진강 연안을 따라 내려오고, 고전면 신월리범아리 사이에서 갈록치를 넘는다. 범아리에서 현 금남면[당시 남면] 덕천리까지는 조진을 경유하는 것이 당시 달로의 노선이었으나 지금 이 도로는 마을길로 전락했고, 대신 범아리에서 약간 서서남 방향의 대덕리로 빠져 국도 19호선과 연결되어 남해까지 이어진다.

국도 19호선금남중고등학교 부근에서 옛 달로를 계승하여 노량리까지 이어진다. 이밖에 진교면 진교리와 고전면 고전리 사이의 길[지방도 1003호선]과 진교리에서 금남면 노량리[지방도 1002호선]까지의 길이 달로였다. 고전면 고전리-진교면 진교리-금남면 노량리 노선이 하동 남부 지역에서 환상(環狀)으로 도로망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달로는 오늘날 대체로 지방도로 계승되었고, 일부 국도가 되기도 하였다. 달로의 차하 등급인 연로 역시 대부분 지방도로 정비되었는데, 드물게는 국도로 성장한 경우도 있다. 하동의 연로 가운데 국도가 된 노선은 횡천면 횡천리에서 청암면옥종면으로 올라가는 국도 59호선[전라남도 광양시 태인동~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송현리]이다. 이로써 횡천면 횡천리는 일제 강점기에 하동 읍내 다음으로 중요한 교통 요지로 성장하여 오늘에 이른다.

3. 연로

전통 시대 섬진강 연안의 중심 도로축에서 분기하는 지역 내 주요 도로망은 일제 강점기에 모두 연로로 표시되어 있다. 도보 시대에 실제 지역민들의 이용률이 가장 높은 도로로 생각된다. 북쪽의 첫 번째 연로는 화개면 탑리에서 상류 쪽으로 쌍계사를 지나 범왕리 칠불사대성리 의신마을까지 이어진다. 대성리로 이어지는 길이 오늘날 지방도 1023호선이다. 지금은 쌍계사 입구까지 화개천 동안에도 지방도 1014호선이 열렸다. 의신마을로 이어진 길은 벽소령을 넘어 함양군 마천면으로 연결되어 있다.

악양면 일대에 놓여 있는 두 번째 연로는 악양천 곡저를 따라 상류 쪽으로 올라가 회남치 너머 청암면 묵계리로 접어들고[지방도 1014호선], 다시 묵계치를 넘어 산청군 시천면으로 연결되어 있다. 묵계리에는 지방도 1014호선이 교차하는데, 상류 쪽으로 청학동 마을과 내원치를 넘어 쌍계사로 이어지고, 하류 쪽으로는 횡천을 따라 내려가다가 횡천리에서 2등 도로[현 국도 2호선]와 만난다.

묵계리에서는 동쪽으로 뻗은 연로가 하나 더 있는데, 옥종면 회신리에서 전술한 국도 59호선과 만나고 계속 동진하면 진주로 이어진다. 옥종면[당시 옥동면] 일대는 남강 연안의 충적지가 비교적 넓게 형성되어 있어서 일찍이 도로망이 발달한 지역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연로들이 사방으로 나 있었는데, 동쪽은 진주로, 남쪽은 북천면으로 이어졌다. 북천면 옥정리에서 남북 방향의 연로[지방도 1005호선]는 2등 도로와 만나고, 더 내려가 양보면고전면으로 이어졌다.

고전면 고하리 일대는 1704년까지 하동의 읍치였다. 따라서 이 시기 이전에 하동의 도로망은 고전면이 중심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이 지역에는 달로와 연로가 잘 발달해 있었다. 전술했듯 범아리-진교리-노량리를 잇는 도로가 일찍이 달로로 정비되었고, 북쪽에 동서 도로축을 구성한 2등 도로와 연결되는 도로가 연로 상태로 이용되고 있었다.

[현황]

현재 하동 군내의 도로망은 읍내와 횡천면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도로 등급만으로 보면 남해고속도로, 국도 2호선, 국도 19호선, 국도 59호선, 그리고 다수의 지방도가 분포하고 있다. 하동의 중심 도로축은 하동 읍내에서 교차하는 국도 19호선국도 2호선이고, 국도 59호선이 옥종면횡천면을 남북으로 관통하면서 전체적으로 ‘K’ 자 형태를 띠고 있다. 지방도는 낙남정맥의 산세가 그나마 약간 수그러지는 남해안 연안의 고전면, 양보면, 진교면, 북천면, 그리고 남강의 지류인 덕천강 유역의 옥종면섬진강 유역의 화개면, 악양면, 적량면에서보다 도로망이 더 조밀하게 분포되어 있다.

지방도 1023호선은 화개면의 중심 도로 기능을 수행하면서 지리산 벽소령까지 연결되어 있고, 지방도 1003호선은 악양면·청암면·양보면·고전면·진교면 일대를 환상으로 연결하는 하동군 내 최장의 지방도이다. 이밖에 지방도 1005호선이 하동군 동부의 옥종면북천면을 잇는다. 각 지방도는 기본적으로 섬진강 또는 남해안으로 유입되는 하천의 유로 방향과 일치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대체로 남북 방향으로 나 있다. 따라서 하동군의 지방도는 동서로 뻗은 국도 2호선 및 남해안고속도로와 접속되어 해안까지 닿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지리산 자락을 넘어 진주·산청·함안군과 연결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시계열적으로 재구성된 도로망은 지역 내 취락의 확산, 인구의 성장과 이동, 상품 유통과 상업의 발달 등을 포함하여 향토 문화의 전반적인 동력학적 관계를 살피는 데 매우 긴요하게 기능할 수 있는 기초 정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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