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4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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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絳先生墓-神道碑 |
영어의미역 | The Grave and Memorial Stone of Yun G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17-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신대광 |
성격 | 묘|신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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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조선 후기[묘]|1709년[신도비] |
관련인물 | 윤강 |
높이 | 270㎝[비신]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17-2 |
소유자 | 파평윤씨 문중 |
문화재 지정번호 | 안산시 향토유적 제15호 |
문화재 지정일 | 1991년 11월 2일 |
[정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윤강의 묘와 신도비.
[개설]
윤강[1597~1667]의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준(子駿), 호는 무곡(無谷)이다. 공조참의 윤민헌(尹民獻)의 아들이다. 1624년(인조 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예문관에서 여러 관직을 역임한 뒤 1626년 검열이 되었다. 효종 때 대사간으로 있다가 한때는 충원현감(忠原縣監)으로 나갔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이조참판·대사헌·도승지를 지내고, 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657년(효종 8)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고, 1659년 효종의 상을 당하였을 때 예조판서로서 빈·장양도감(殯葬兩都監)의 제조(提調)를 겸하여 힘껏 주선한 공으로 숭정대부·판의금부사에 오르고 이조판서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내용]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 면허시험장에서 선부동 쪽으로 계속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우산리마을이 나오는데 그 마을 안쪽인 선부동 17-2번지에 있다. 윤강 선생 묘는 새롭게 정비된 것이나, 원래의 석물로는 상석과 망주석과 묘표가 있다. 신도비는 윤강이 별세한 후 1680년(숙종 6)에 송시열이 비문을 지은 것을 1709년(숙종 35)에 아들 윤지인이 글을 써서 세웠다. 비개(碑蓋) 181×108×87㎝, 비신 270×111×48㎝, 기대 186×126×59㎝의 규모이다. 비신의 높이가 270㎝에 달하는 큰 규모에 속한다. 비개는 팔작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다. 전액(篆額)에 ‘증영의정행이조판서윤공신도비명(贈領議政行吏曹判書尹公神道碑銘)’이라고 쓰여 있다.
윤강 선생 묘 및 신도비는1991년 11월 2일 안산시 향토유적 제15호로 지정되었다. 2009년 현재 파평윤씨 문중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 비의 오른쪽 하단부 일부가 파괴되어 콘크리트로 붙여 놓았으나, 현재는 안전을 위해 보강 시설을 해놓은 상태이다. 비의 원문과 번역문이 『시흥금석총람』에 있으며, 비문 탁본이 안산문화원에 소장되어 있다. 윤강 선생의 성품과 관직 수행, 가족 관계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