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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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㳣 |
영어음역 | Gang Ro |
이칭/별칭 | 기중(期中),표운(豹雲),정은(貞隱),익헌공(翼憲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진각 |
[정의]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기중(期中), 호는 표운(豹雲)·정은(貞隱). 증조부는 표암(豹庵) 강세황(姜世晃), 할아버지는 강빈(姜儐), 아버지는 현감 강이구(姜彛九), 어머니는 남리익(南履益)의 딸이다. 강세황 이후 후손들이 안산에 우거하였다.
[활동사항]
강로는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태어났다. 1837년(헌종 3) 진사시를 거쳐 1848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50년(철종 1) 정자, 수찬을 거쳐 홍문관응교를 역임하였으며, 1857년 사간원 대사간이 되었다. 고종 즉위 후 동래부사를 지냈는데 치적이 있어 특별히 그대로 유임되었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로 피폐해진 강화도에 위유사(慰諭使)로 다녀온 뒤 대사성, 이조참판을 거쳐 1867년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71년 병조판서를 거쳐 이듬해에는 좌의정에 이르렀다. 1873년 대원군을 탄핵한 최익현(崔益鉉)의 처벌을 주장하였다가 고종이 친정하게 되면서 우의정 한계원(韓啓源)과 함께 파직당하였다가 곧 중추부사가 되었다.
1878년 중추부사로서 효휘전(孝徽殿)의 참례(參禮)에 불참한 죄로 직산(稷山)에 중도부처(中途付處)[지정 장소를 떠나지 못하도록 하는 유형(流刑)의 일종]되었다가 평안도 중화부(中和府)에 찬배(竄配)되었으나 곧 서용되었다. 이듬해 일본의 인천항 개항 요구에 반대하였으며, 판중추부사로 치사하여 봉조하(奉朝賀)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1883년 대원군파로 몰려 임오군란 때 난도와 작당하였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경상남도 안의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풀려 나와 1886년 사면되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익헌(翼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