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7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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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聲發 |
영어음역 | Gim Seongbal |
이칭/별칭 | 정이,반성재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명우 |
[정의]
조선 후기의 효자.
[가계]
본관은 안산(安山). 자는 정이(正而)이며, 호는 반성재(反省齋). 아버지는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지내고 좌승지에 증직된 김찬(金讚)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이다. 효자 김성대(金聲大)의 동생이자 김성옥(金聲玉)의 형이다.
[활동사항]
김성발은 어려서부터 진실되고 성실하여 행동함에 흠잡을 데가 없었다. 형과 함께 타고난 우애와 효성을 보였고, 농사에 종사하면서도 틈틈이 꿩·토끼를 사냥하여 부모를 봉양하였다. 또한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고, 철에 따라 식사와 옷가지의 따뜻하고 찬 것을 가리는 등 정성이 지극하였다. 그는 약관 시절부터 시·예(禮)를 익혔는데 특히 서예에 정통하였다. 타인과 사귐에 있어서 득실을 논하지 않았으며, 먼저 자신을 돌이켜보라는 뜻에서 반성(反省)이라 호를 삼았다.
1651년 아버지의 병환이 깊어지자 형제가 함께 밤을 새워가며 간호하였다. 아버지의 대변을 맛보아 병세를 진단하고 좋은 약을 구하여 정성껏 시중을 들었으나, 아버지는 한 달여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뒤 어머니가 병환이 위독했을 때에도 형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리는 등 정성을 다하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산막(山幕)에서 시묘하면서 향을 받들고 상복을 입은 채 밤잠도 자지 않고 슬프게 울부짖다가 묘막에서 생애를 마쳤다.
[묘소]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사직리에 있으며, 묘비문은 군수 이제원(李濟元)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