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1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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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堂寺老僧 |
영어의미역 | An Old Priest of Wondangsa Templ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계형 |
성격 | 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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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김진표 |
창작연도/발표연도 | 조선 후기 |
[정의]
조선 후기 경기도 안산 출신의 김진표가 지은 한시.
[개설]
김진표(金震標)[1614~1671]의 자호(自號)는 동애(東厓), 오애(梧厓), 동리(東籬) 등으로 사용되었다. 김진호의 증조부 김여물(金汝岉)[1548~1592]은 임진왜란 당시 충주의 탄금대 전투에서 전사하였으며, 조부는 인조반정의 1등 원훈(元勳)으로 대제학과 영의정을 지낸 북저(北渚) 김류이다.
아버지 김경징(金慶徵)[1598~1637] 역시 인조반정의 원훈으로 공신의 반열에 오른 뒤에 한성부판윤에 올랐지만, 병자호란 당시 강도검찰사(江都檢察使)에 임명되어 강화부성에 들어가 청나라 군대와 전투를 치렀으나, 도저히 이길 가망성이 없자 이를 지키지 못하고 도주하고 말았다.
그 뒤 강화도는 청나라에 함락되었고, 그곳에 피신해 있던 김진표의 조모 진주유씨와 서증조모(庶曾祖母) 평산신씨, 어머니 고령박씨, 아내인 진주정씨 등 4대 고부(姑婦)가 한꺼번에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 뒤 김진표는 40세란 늦은 나이로 대과에 장원하고 단 3년 만에 당상관인 공조참의까지 올랐으나, 돈령부도정을 끝으로 59세의 생애를 마감하였다. 김진표는 수천 편의 주옥 같은 시를 썼다는 기록이 있지만, 아깝게도 전해지는 유고(遺稿)는 없고, 2수의 작품만이 김득신의 문집과 시화에 각각 전해지고 있다.
[내용]
음병노승동폐전(吟病老僧冬閉殿)[병들어 신음하는 늙은 스님 한겨울 법당문을 닫았고]
멱시고객야등루(覓詩孤客夜登樓)[시를 읊조리는 외로운 길손 늦은 밤 누각에 오르네]
[의의와 평가]
칠언율시인 「원당사 노승」의 마지막 절구 이하는 떨어져 나가 찾을 길이 없다. 원당사는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 수리산 자락에 있던 안산 최고의 고찰(古刹)이다. 안산 사람들의 도량(道場)으로, 시인·묵객들의 안식처로서 대단히 중요한 곳이었으나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