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A020104
지역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 29번지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신대광

화정동 너빌 마을에 들어서서 중간쯤 올라가면 마을 회관이 나오며, 다시 그곳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집들과 산이 만나는 야트막한 언덕이 나오는데, 그곳에 서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 옆에 오정각이 있다.

오정각(五旌閣)은 마을 주민들에게 오랫동안 정신적인 큰 힘이 되어 왔다.

화정동 29번지에 있는 오정각김녕김씨 가문의 충신과 효자를 기려 세워진 정각으로, 안산 지역의 대표적인 정각으로도 알려져 있다. 원래 정문(旌門)은 국가에서 풍속을 권장하기 위해 충신과 효자·열녀가 사는 마을 입구나 집 문 앞에 세우는 붉은 문을 일컫는데, 오정각도 여기에 해당된다.

오정각에는 1456년(세조 2) 단종복위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실패하여 사육신과 함께 참형 당한 충의공 김문기(金文起)와 그의 아들 김현석(金玄錫)의 충신정문(忠臣旌門)과 손자인 김충주(金忠柱), 증손자 김경남(金景南), 현손(玄孫)인 김약전(金約前)의 효자정문이 각각 봉안되어 있다.

오정각 자리는 원래 1851년 진사 김처영(金處榮)을 비롯한 안산의 유림(儒林)이 세덕사(世德祠)를 세워 김문기의 충절과 효행을 기렸던 곳이다.

그 후 화정동 김녕김씨 가문의 충효가 김충주의 아들 김경남(金景南)과 손자 김약전(金約前) 이후까지 이어졌음을 알고 임금이 사액(賜額)하여 대를 이은 이 집안의 충효를 기념하였다.

오정각 건물은 1870년(고종 7)에 건립한 것으로 전한다.

당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김문기의 영정은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 718번지에 거주하는 그의 후손 김진두(金鎭斗)가 보존하고 있으며, 현재 오정각에 모셔져 있는 영정은 최근에 그려진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이 오정각의 훼손이 심해지자 1968년 새로이 보수를 하였고, 1976년 단청을 입혔으며 1981년에는 당시 시흥군에서 정화사업을 실시하여 단장을 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오정각 입구에는 1983년에 세운 오정각중수기념비가 있다.

비석의 앞면에는 ‘오정각중수기념비’라 새겼고, 뒷면과 양쪽 옆면에는 김문기 등 5대의 행적, 관직, 덕망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대문을 들어서 바로 보이는 정각은 초익공(初翼工) 양식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로 세웠으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가운데 칸 처마 밑에 ‘오정각(五旌閣)’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한 칸 안쪽으로 들어가면 다시 ‘오세충효(五世忠孝)’라는 현판이 보인다. 건물 안에는 김문기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그 옆으로 5대 정문이 서 있다. 이 건물은 지난 1983년 9월 19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

지금도 마을 주민들이 소장하고 있는 김녕김씨 충의공파 족보에 보면 세덕사 건립과 오정각에 대한 기록이 소상히 적혀 있다.

[정보제공]

  • •  김연권(남, 1929년생, 화정동 거주, 화정동 전 통장)
  • •  김광권(남, 1931년생, 화정동 거주, 화정동 전 통장)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